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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김복만 / 金福萬 [역사/근대사]

    1907-197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현경면(玄慶面)이다. 광주농업고등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광용(金匡溶)·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

  • 김복진 / 金復鎭 [예술·체육/조각]

    1901-1940. 조각가. 호는 정관(井觀). 충청북도 청원 출신. 소설가 기진(基鎭)의 형이다. 우리나라 근대조각의 개척자이다. 1920년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공하고 1925년에 졸업했다. 그뒤 서울의 모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 경성여자상업학

  • 김봉관 / 金鳳官 [역사/근대사]

    1869-1922. 독립운동가. 함경남도 갑산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군사령부에 가담하였다. 1922년 6월 홍범도(洪範圖)의 비밀대원으로서 많은 동지들과 함께 갑산경찰서 함정주재소(含井駐在所)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부장 부부를 죽이고 건물을 불태우고, 무

  • 김봉국 / 金鳳國 [역사/근대사]

    1890-1932년. 한말의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선천 출신. 1919년 평안남도 선천군의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문을 인쇄하여 배포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하였다. 손병희(孫秉熙)가 죽자 그의 독립운동노선을 계승하기 위하여, 만주에서 이종

  • 김봉규 / 金鳳奎 [역사/근대사]

    1892-1968.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월성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참여하였다. 1920년 송두환(宋斗煥)·최윤동(崔胤東)·이수영(李遂榮)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대구일대를 중심으로,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장인·부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

  • 김봉률 / 金奉律 [역사/근대사]

    1897-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이다. 해인사(海印寺)에서 학림학생(學林學生)으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후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강재호(姜在鎬)·기상섭(奇尙燮)·송복만(宋福晩

  • 김봉문 / 金奉文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1876-1930). 명창 박기홍(朴基洪)에게 판소리를 배워 민족항일기초에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기홍의 소리제를 이어 동편제 소리의 진수를 발휘했으며, 〈흥보가〉를 잘하였고 특히 ‘박타는 대목’에서 ‘박물가(博物歌)’를 잘 불렀다.

  • 김봉성 / 金鳳性 [역사/근대사]

    1901-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봉성(金鳳成)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江西)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동대문구(東大門區) 신설동(新設洞)이다. 민족대표 이승훈(李昇薰)이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펼

  • 김봉수 / 金鳳秀 [역사/근대사]

    190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奉秀). 아버지는 이형(利亨)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 생활이 곤란하여 1918년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4년 관전현 화수구(寬甸縣 華樹溝)에서 정의부(正義府)에 가입, 무장항일운동에 전력하였다. 1928년

  • 김봉식 / 金鳳植 [역사/근대사]

    1904-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영변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24년 대한통의부 독립결사대에 가입하였다. 1925년 일제기관을 파괴하고 일본경찰과 그 앞잡이들을 숙청하였고, 군자금모금 명령을 받고 동지 정문빈(鄭文彬)·김경보(金敬甫)·채무식(蔡武植)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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