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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여 / 彩轝 [생활/주생활]

    왕실에 의식이 있을 때 귀중품을 실어 옮기던 가마. <고려사절요>의 채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요여와 채여를 분간하여 사용하는 일은 예전에는 일정한 규례가 없어 의주와 등록에 서로 다른 곳이 많지만, 옥책은 요여에 싣고 금보는 채여에 싣는 것이 근래의 관례가 되어 왔다

  • 채영 / 蔡永 [역사/근대사]

    1882-192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채영(蔡英)이다. 본적은 경성부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이다. 1919년 3월 13일 중국 북간도 용정(龍井)에서 최대 규모의 만세시위인 ‘조선독립축하회(朝鮮獨立祝賀會)’가 개최된 후 조

  • 채유후 / 蔡裕後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60(현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난종 증손, 할아버지는 경선, 아버지는 충연이다. 어머니는 안사열의 딸이다. 1623년(인조 1) 개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대사헌, 대제학,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호주집≫이 있다.

  • 채응린 / 蔡應麟 [종교·철학/유학]

    1529년(중종 24)∼미상.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다의당 채귀하의 후예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인 계동 전경창에게서 학문을 전수받았다. 1555년(명종 10) 을묘 식년시 생원 1등 4위로 합격하였다. 한강 정구를 사우하여 학행과 문장이 일시에 추앙되었으며, 사림에

  • 채응만 / 蔡膺萬 [종교·철학/유학]

    1677년(숙종 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채진후, 조부는 채시상, 부친은 채성윤이다. 처부는 이현기, 동생은 채응일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시에 진사 2등 15위로 합격하였으며, 1723년(경종 3) 증광시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하였다. 지평‧

  • 채응언 / 蔡應彦 [역사/근대사]

    1879년(고종 16)∼1915년. 한말의 의병장. 평안남도 성천 출신이다. 이진룡(李鎭龍) 의병대에서 활동하였고, 1908년 황해도 안평(安平)의 일본순사주재소와 수안(遂安) 헌병분견소, 선암(仙巖) 헌병파견대를 습격하는 등 경기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 등지에

  • 채제공 / 蔡濟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0∼1799). 문과에 급제한 뒤 도승지·한성판윤·영의정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사도세자의 폐위를 막는 등 소신 있게 행동하였으며 영조와 정조의 신임을 얻어 중용되었다.《국조보감》 등을 편찬하고《번암집》을 저술하였다.

  • 채지가 / 採芝歌 [문학/고전시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작자·연대 미상의 동학가사(東學歌辭). 동학 포교가로 「남조선(南朝鮮) 뱃노래」·「초당(草堂)의 봄꿈」·「달노래」·「칠월식과(七月食苽)」·「남강철교(南江鐵橋)」·「춘산노인(春山老人) 이야기」의 6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 채지홍 / 蔡之洪 [종교·철학/유학]

    1683년(숙종 9)∼1741년(영조 17).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영용, 어머니는 유승주의 딸이다. 권상하의 문인으로 강문팔학사 중 한 사람이다. 권상하의 문하에서 수학, 동문인 한원진·윤봉구·이간·윤혼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강론하였다. 저서로는『봉암집』·『성

  • 채평윤 / 蔡彭胤 [종교·철학/유학]

    1669(현종 10)∼1731(영조 7). 조선 후기의 문신. 충연 증손, 할아버지는 진후, 아버지는 시상이다. 어머니는 권흥익의 딸이다. 1689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도승지, 대사간, 예문관제학, 병조참판,, 동지의금부사,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

  • 채표 / 採票 [생활/민속]

    꿈으로 점을 쳐서 돈내기를 하는 일종의 노름. 이 노름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옛날부터 전래된 듯하다. 이러한 도박놀이는 추수가 끝나고 동절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되면 다음해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속된다. 주로 꿈을 위주로 하는데, 동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에

  • 채필근 / 蔡弼近 [종교·철학/개신교]

    1885년(고종 22)∼1973년. 장로회 목사. 191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 졸업 후 함경북도 경흥읍 교회에서 전도사·목사로 봉직하다가 일본으로 유학하였다. 메이지학원 고등부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 1925년 숭실대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1941년 조선

  • 채헌징 / 蔡獻徵 [종교·철학/유학]

    1648(인조 26)∼1726(영조 2). 조선 후기의 문신. 천민의 증손, 할아버지는 이복, 아버지는 기종, 어머니는 순천김씨이다. 재종숙 지수에게 입양, 홍여하·이현일의 문인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조·병

  • 채형구 / 蔡荊龜 [종교·철학/유학]

    1652년(효종 3)∼1723년(경종 3). 조선 후기 유학자. 채수의 후손, 고조는 채유부, 증조는 채득호, 조부는 채극계이다. 부친 채징하와 모친 이규영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서경》·《시경》·《주역》 등의 경전을 두루 탐독하면서 학문이 크게 진전되었다. 시문집

  • 채홍국 / 蔡弘國 [종교·철학/유학]

    1534년(중종 29)∼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 의병. 채충경 후손, 부친은 채치의이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다시 중자 채경달과 함께 의병들을 인솔하고 흥덕 장등원에 진을 치고 적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이 전투에서 부자가

  • 채홍리 / 蔡弘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7∼1806). 1766년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사간원정언·부응교·승지·대사간·우승지 등을 역임했다. 외직으로 나가 강원도관찰사 재직 중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해 선정을 펼쳤다. 1806년 기로소에 들어갔다.

  • 채홍원 / 蔡弘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2∼?). 성윤의 증손, 할아버지는 응일, 아버지는 민공, 어머니는 오필운의 딸이다. 제공에게 입양되었다.1792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승지가 되었다. 정순왕후 김씨의 탄압이 거세져서 파직되어 유배당하였다. 정약용·이유수 등의 학자들

  • 채환재적가 / 蔡宦再謫歌 [문학/고전시가]

    1870년(고종 7) 채구연(蔡龜淵)이 지은 유배가사.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433행에 이르는 장편가사이다. 첫머리가 “어호 친구네야 팔자타령 드러보소 해배한지 두달 만의 두번구양 무삼일고”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1863년(철종 14)에 고석현(高奭鉉)

  • 책례도감 / 冊禮都監 [정치·법제]

    조선 시대 왕세자ㆍ왕세손ㆍ왕세제ㆍ빈궁 및 왕비 등의 책봉에 관한 의식ㆍ절차를 맡은 임시 기구. 관원으로는 도제조 1인, 제조 3인, 도청 및 낭청 6∼7인으로 구성되었다. 책례도감은 의궤를 작성하였는데, 광해군 2년(1610) 이후 조선 말기까지 저궁책례에 관한 의궤

  • 책보 / 冊寶 [정치·법제/법제·행정]

    왕과 왕비의 옥책과 보인을 일컫는 말. 왕이나 왕비에게 존호 또는 시호를 올릴 때나 왕비를 책봉할 때에는 옥책과 보인을 만들어 올렸다. 옥책은 존호와 시호를 올릴 때 그 업적을 칭송하는 글을 옥에 새겨 만든 책문이다. 보인은 시호나 존호를 새긴 도장인데 금보 또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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