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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김문옥 / 金文玉 [종교·철학/유학]
1897년(고종 34)∼1965년. 일제강점기 공산주의자·항일운동가. 일본 고베시 공장에서 일하던 중, 1932년 일본공산당 외곽단체 전협에 가입하여, 화학노조 효고현 지부 집행부원으로 각종 항일 캠페인에 참가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32년 10월 체포되어
김문준 / 金文準 [역사/근대사]
1894-193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목우(木牛)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朝天)에서 태어났다. 1910년(융희 4) 3월 의신학교(義信學校) 보통과를 졸업하고 1912년 제주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1915년 3월 경기도 수원의 조선총
김문희 / 金文熙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문희(金文凞)이다. 본관은 해산(海山)이고, 본적은 평안북도 초산(楚山)이다. 1919년 7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내무부 소관인 국내 지방행정조직이자 국내 연락기관인 연통부(聯通府)를 국내의 각 도·군·면 단
김백능 / 金百能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명은 김충환(金忠煥)이다. 제주도 조천(朝天)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3·1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온 것을 계기로 제주도 조천(朝天)에서도 1919년 3월 21일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이 일어
김병숙특증문서 / 金炳塾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6품 승훈랑 김병숙(金炳塾)을 정3품 통정대부 규장각부제학에 특증하는 임명장. 1910년 7월 18일 순종은 83명을 특증하였다. 이때 승훈랑 김병숙은 정3품 규장각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이 문서에는 정확한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이때
김병조 / 金秉祚 [역사/근대사]
1877-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재(一齋). 1919년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상임이사·임시의정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만주에서 <한족신문>을 발행하였다. 저술로 <한국독립운동사략> 등
김병주 / 金炳周 [역사/근대사]
미상-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북도 삭주군(朔州郡)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밀리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여 3월 21일 의주(義州) 영산(永山)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긴급 출동한
김병태 / 金餠泰 [역사/근대사]
1899-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빈(金斌)·김빈(金彬)·조국동(曺國棟)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부산(釜山)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중국 상해(上海) 불조계(佛租界)이다. 1918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에
김병학 / 金炳學 [역사/근대사]
1922-1983. 항일기의 광복군. 1945년 4월 학병탈출 조직망 강화와 일본군작전 교란의 임무를 띠고 쉬저우지구 공작원으로 임명되었다. 계획이 사전에 일본헌병대에 탐지되어 몇 명만 탈출시켰고, 그뒤에도 쉬저우에 잠복하여 학병탈출공작, 적의 정보수집공작을 하였다.
김보형 / 金寶炯 [역사/근대사]
189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군자금모금 등을 맡았다. 1922년 교전 중 두 팔에 관통상을 입고 2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1927년 동흥농민회에 참여하고, 1928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