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유여림 / 兪汝霖 [종교·철학/유학]
1476(성종 7)∼1538(중종 33). 조선 중기의 문신. 집 증손, 할아버지는 해, 아버지는 기창, 어머니는 구안우의 딸이다. 150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의 검열·봉교, 성균관의 전적·직강을 거쳐 단양과 한산의 군수를 지냈다. 그 뒤 홍문관직제학·
유영립 / 柳英立 [종교·철학/유학]
1623년(인조 1)∼1686년(숙종 12).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유형, 조부는 유란. 부친 유인무와 모친 광주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7형제가 있다. 부인은 홍문관교리 나이준의 딸이다. 1663년(현종 4) 식년시 병과 12위로 급제하였다. 태학관박사·장흥고주부
유옥 / 柳沃 [종교·철학/유학]
1487(성종 18)∼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면 증손, 할아버지는 인흡, 아버지는 문표, 어머니는 현맹인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사헌부장령, 의정부사인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석헌집』이 있다.
유운 / 柳雲 [종교·철학/유학]
1485(성종 16)∼1528(중종23). 조선 중기의 문신. 증조는 효반, 할아버지는 양손, 아버지는 공좌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고 1504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충청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편저로는『진수해범』 2권 2책
유운룡 / 柳雲龍 [종교·철학/유학]
1539(중종 34)∼1601(선조 34).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중영, 어머니는 김광수의 딸이다. 성룡의 형으로 이황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내자시주부, 진보현감, 풍기군수, 원주목사를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이기설이나 사칠논변은 이황의 이기이원론에 근거를
유원지 / 柳元之 [종교·철학/유학]
1598(선조 31)∼1674(현종 15). 조선 후기의 학자. 유성룡의 손자, 여의 아들, 어머니는 홍세찬의 딸이다. 할아버지 성룡과 작은아버지 진에게서 수학하였다. 황간현감, 진안현감을 역임하였다. 안동의 화천서원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졸재집』14권 7책이 있다
유응부 / 兪應孚 [종교·철학/유학]
?∼1456(세조 2). 단종을 위해 사절한 사육신의 한 사람. 일찍이 무과에 올라 1448년(세종 30) 첨지중추원사를 시작으로 평안좌도도절제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남효온이 ≪추강집≫의 <육신전>을 지으면서 단종복위의 거사 주모역은 성삼문·박팽년이고,
유의건 / 柳宜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87∼1760). 과거에 나가지 않고 화계에 서당을 짓고 경사·자집을 두루 섭렵하여, 특히 성력 및 역학에 밝아 제자가 점점 많아지자 그 집을 문회실·난실이라 이름하고, 육영과 저술에만 전념하여〈괘변의의 〉를 남겼다. 저서로는《화계집》8권이 있다
유의양 / 柳義養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8∼?). 대사간·공조참판·부총관 등을 지냈다. 집의 때 백관들의 안일함을 논핵하였다.《춘관지》·《영희전지》를 편찬,《동국문헌비고》수정,《국조오례의》를 보집하였다. 저서로《춘방지》·《춘관통고》가 있다.
유인석 / 柳麟錫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위정척사론자·의병장(1842∼1915). 이항로의 문하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존화양이사상을 익혔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때에는 개항 반대운동을 전개하였고,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항전을 개시하였다. ‘위정척사’·‘존화양이’ 정신에 입각,
유인식 / 柳寅植 [종교·철학/유학]
1865년(고종 2)∼1928년. 한말의 민족운동가·교육자. 1907년 고향에 협동학교를 창설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1911년 서간도 봉천성 유하현 신흥강습소의 민간조직인 경학사의 교무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2월에는 서울에서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가 창
유장원 / 柳長源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유관현의 아들이다. 1763년(영조 39) 사마시로 나아갔다. 풍의가 준엄하고 단정하였으며 도량이 넓었다. 덕행을 쌓고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친구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만년에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 들어가서 고인들이 전하는 학문의 뜻을 터득하였다. 저서
유장춘 / 柳長春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메이지신궁대회에서 마라톤과 10,000m 육상경기에서 우승한 체육인. 1930년대부터 육상경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특히 1,000m·5,000m·1만m 등의 장거리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다. 1934년 3월 21일 제4회 경영왕복마라톤대회에서
유재건 / 劉在建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법어』, 『겸산필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유창(劉敞)의 후손이었으나 가세가 몰락해 서리계급이 됐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시와 글에 두루 능했고 특히 서예를 잘했다. 전서(篆書)·해서(楷書)에 뛰어났다고 한다. 오
유정 / 惟政 [종교·철학/불교]
1544-1610. 조선시대의 승려. 16세에 직지사 신묵에게 출가하였다. 18세 선과에 급제하였다. 32세에 봉은사 주지가 되었으나 거절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604년에 일본으로 가서 전쟁으로 잡혀간 3천여 명의 백성을 데리고 귀
유종춘 / 柳宗春 [종교·철학/유학]
1720년(숙종 46)∼1795년(정조 19). 조선 후기 문신. 유성룡의 후손, 부친은 나옹 유운이다. 1791년(정조 15) 유성룡의 후손으로서 음직에 천거되어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 수직으로 첨지중추에까지 올랐다. 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풍은군에
유주 / 柳澍 [종교·철학/유학]
1568(선조 1)∼1639(인조 17).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중번이다. 공부를 늦게 시작하였으나, 학업을 크게 성취하여 기재라는 평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이첨과 정인홍 등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포의의 신분으로 감히 입궐
유주목 / 柳疇睦 [종교·철학/유학]
1813년(순조 13) ∼1872년(고종 9). 조선 후기 유학자·의병장. 유성룡의 후손, 증조는 유광수, 조부는 유심춘이다. 1835년(헌종 1) 한성시에, 1842년(헌종 8)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회시에 낙방한 뒤 과거를 단념하고 돌아와 계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
유중교 / 柳重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832∼1893). 김평묵과 함께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52년 이항로의 명으로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을 편수했다. 1876년에는 선공감가감역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881년 척사위정의 소론이 일어나자 김평묵과 함께 춘추의리론을
유중림 / 柳重臨 [과학기술/의약학]
조선 후기의 의관(?∼?). 유상의 후손이다. 영조 때에 태의원의약을 지냈고, 1766년(영조 42)에《증보산림경제》를 편찬하였다. 그 뒤 태의원내의가 되어 서반의 녹, 즉 군직의 녹을 받으면서 의무에 종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