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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전소 / 鑄錢所 [경제·산업/산업]

    조선시대에 동전을 주조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4회 설치. 첫번째는 세종 초 경기도 양근군에 주전소를 설치. 두번째는 1424년(세종 6) 2월에 전라도와 경상도에 새로 주전소를 설치 별감을 파견하여 감독. 세번째는 1731년(영조 7) 7월에 흉황구제의 자

  • 주정소 / 晝停所 [정치·법제]

    조선 시대에 임금이 거둥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곳. 주로 왕이 능행을 할 때 낮에 잠시 어가를 쉬기위하여 머물렀는데, 이때 차나 죽을 먹으면 소주정소, 수라를 들면 대주정소라 했다. 정조는 현륭원에 거동하면서 용양봉저정 주정소에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용양봉저정은 현재

  • 주종명 / 鑄鐘銘 [문학/한문학]

    조선 초기에 권근(權近)이 지은 명(銘). 작자의 문집인 『양촌집(陽村集)』 권23에 「주종명병서(鑄鐘銘幷序)」라 하여 서문과 함께 실려 있고, 『동문선(東文選)』 권50에도 수록되어 있다. 명(銘)은 어떤 기물(器物)에 의미를 붙이거나, 그 기물을 통하여 송축(頌祝)

  • 주지주의 / 主知主義 [문학/현대문학]

    감각과 정서보다는 지성을 중요시하는 창작 태도 또는 그 경향. 한국에서 주지주의를 이론면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비평가는 최재서이고, 비평과 더불어 작품으로 실천한 시인은 김기림이다. 1930년대에 정지용, 이양하 등에 의하여 시작된 주지주의는 김광균, 김현승 등으로 이어

  • 주진 / 主鎭 [정치·법제/국방]

    진관편제에서 절도사가 있는 진. 주진에는 병영과 수영이 상당한 조직과 설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대개 많은 유방병과 병선이 배치되어 있었다. 조선초기 지방군사제도로서의 진관체제의 확립에 따라 주진→거진→제진의 명령계통이 확립되었는데 주진장(主鎭將)인 절도사에게는 상당한

  • 주척 / 周尺 [과학기술/과학기술]

    주나라에서 만들어 썼다는 자. 한 자 길이 약 20㎝이다. 조선 세종대에 황종척을 만들어 그 6촌 6리를 주척 1척으로 규정하면서 공식적인 척도를 얻었다. 현전하는 것 중에 1773년 서울 수표교에 표시한 것이 1척=19.5㎝, 1837년에 제작된 공주 보관의 측우기

  • 주천 / 酒泉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영월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주연현(酒淵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주천현으로 고쳐 나성군(奈城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원주목(原州牧)으로 이속하였고, 조선 중기에 현을 폐지하여 좌변면(左邊面)으로 고쳤다. 1914년

  • 주청사 / 奏請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대중국관계에서 외교관계로 보내던 비정규적인 사절 또는 그 사신. 주청의 내용을 보면, 중국측의 항의에 의한 해명, 정치적 중대사건에 대한 보고, 고명·인신의 수령 등과 같이 요청할 일이 주가 되고, 이밖에 연호 사용, 내정간섭에 대한 항의, 왜정 등의 보고,

  • 주체무용 / 主體舞踊 [예술·체육/무용]

    ‘주체문예이론’에 입각한 북한의 무용양식.무용. 주체의 창작이론에 입각해서 무용예술이 창조·확립된 1970년대 이후의 북한의 춤을 총칭하는 용어이며, 예술의 사상성과 북한식 독자성을 강조하며 사용되고 있다. 북한의 무용은 여타 예술장르와 마찬가지로 주체문예이론에 입각한

  • 주택정 / 朱宅正 [종교·철학/유학]

    1651(효종 2)∼1727(영조 3). 조선 후기의 문신. 대건 증손, 할아버지는 식맹, 아버지는 목이다. 어머니는 한여호의 딸이다. 송시열이 덕원에 유배되어 있을 즈음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순릉참봉으로 1679년(숙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가 되

  • 주통 / 朱筒 [정치·법제]

    인주를 담아두는 통. 국왕과 왕비의 보인이나 왕세자와 빈의 옥인은 인주와 같이 보관하였는데 인주를 담은 통을 주통이라 하였다. 당주홍이라는 인주를 담은 주통은 짝이 되는 보통 또는 옥인통과 같은 모양과 크기로 만들었다. 주통은 다시 주록이라는 통에 넣어 보통을 넣은

  • 주한독일공사관 [정치·법제/외교]

    초기 공관은 부들러 영사 때 낙동에 건립. 1883년 이후 독일은 1914년까지 약 3년을 제외하고 대부분 영사 체제로 공관 유지. 낙동의 초기 공관은 조선정부에 임대료를 납부하는 임대공관이었다. 이후 공관은 묄렌도르프가 살던 사저인 전동의 건물로 이사하였다. 한국의

  • 주한러시아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90년 착공하여 1895년 완공. 1896년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한 뒤 1년 동안 거처로 사용. 러시아공사관은 1890년 5월 5일 건물을 착공하였다. 러시아공사관의 설계와 건축을 책임진 사람은 러시아인 건축기술사 사바찐이었다. 사바찐이 설계한 러시아공사관은 서양

  • 주한미국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3년 정동에 설립. 초대 조선 주재 미국공사는 푸트. 1883년부터 1905년까지 존속했던 미국공사관의 책임자는 13번 교체되었다. 실제 책임을 맡았던 공사는 총11명이다. 초대 푸트를 비롯하여, 파커, 딘스모어, 허드, 실, 알렌, 모건 등 7명이 정식 임명자이

  • 주한영국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4년 설립 결정. 경운궁 부근 정동 4번지 위치. 1890-1892년간 서구식으로 재건축. 공관은 파크스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1884년 5월 10일에 일단락되었다. 이후 영국 재무부가 재건축 예산 승인을 거부하여 보수만 이루저지다 1890년 재건축을 시작하

  • 주한일본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0년에 서울데 설립된 일본 외교기관으로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통감부로 이관됨. 역대 주한 공사를 역임한 사람은 초대 하나부사 요시모토, 다케조에 신이치로, 곤도 마스케, 가와키타 도시스케, 가지야마 데이스케, 오이시 마사미, 오토리 게이스케, 이노우에 가오루

  • 주한중국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2년 8월에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이후 조선에 파견된 상무위원이 주한 외교사절의 역할을 수행. 한청통상조약의 체결을 주도한 서수붕이 대한제국주재 초대 공사로 부임하였고, 하태신 증광전이 후임이었다. 1905년 일본의 통감부 설치로 중국 외교사절은 본국으

  • 주한프랑스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9년 착공하여 1896년 완공. 공사는 플랑시와 프랑댕. 1888년 플랑시는 박동에 소재한 한옥을 프랑스공사관으로 임시 사용했다. 그후 1889년 플랑시는 정동의 러시아공사관과 인접한 지역에 새로 공사관부지를 선정했다. 프랑스공사관은 1896년 바로크 양식으로 완

  • 주해어록총람 / 註解語錄總覽 [언어/언어/문자]

    어록과 이두를 모아서 설명한 책. 1권 2책. 목판본. 『어록해(語錄解)』에 『수호지』·『서유기』·『서상기』·『삼국지』 어록과 이두를 수록한 이문어록(吏文語錄)으로 되었다. 1919년 서울의 한남서림(翰南書林)에서 간행되었다. 항목배열과 설명 등이 모두 『어록해』에 따

  • 주해천자문 / 註解千字文 [언어/언어/문자]

    1752년(영조 28)에 개원사(開元寺)에서 홍성원(洪聖源)의 글씨를 판하(板下)로 하여 간행된 천자문. 홍성원(洪聖源)은 기존의『천자문』으로는 한문의 뜻풀이가 어려운 경우가 있고, 잘못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매 한자가 갖는 다수의 뜻풀이를 기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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