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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김동진 / 金東鎭 [종교·철학/유학]

    1866년(고종3년)~1952. 저자는 19세기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저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소수서원 원장을 3번이나 역임하고, 후진의 양성을 위해 도강서당을 세웠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 있다. 저자는 김흥락의 말년 제자이다. 1

  • 김동철 / 金東轍 [예술·체육/체육]

    1893-미상. 체육인. 경상남도 마산 출생. 마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기자로서 조선체육회 발기인회에 참가하였으며 조선체육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조선체육회 창립을 위하여 활약하였고, 그해 조선체육회가 창설되자 상무

  • 김동필 / 金東弼 [역사/근대사]

    1860-1944. 항일기의 애국지사. 1905년부터 일제침략을 규탄하는 상소운동을 벌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후에는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자신회’를 조직하고,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1930년 2월 신간회 집행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2년

  • 김동한 / 金東漢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무용학원인 조선예술학원을 설립한 무용가. 러시아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1921년 해삼위학생음악단이 고국 방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동년(同年) 김동한은 해삼위동포연예단을 이끌고 고국을 방문해 우리나라

  • 김동협 / 金東鋏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선소면(仙沼面)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 행위에 대한 분노로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1943년 조종희(趙

  • 김두만 / 金斗萬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2일 수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하

  • 김두봉 / 金枓奉 [정치·법제/정치]

    1889년(고종 26)∼1961?. 독립운동가·한글학자·정치가. 연안파 공산당의 지도자. 17살에 서울로 올라와 배재학교. 보명중학에서 공부하고, 한글학자 주시경 밑에서 연구한 후 각지의 한글강습회와 보성, 중앙, 휘문고보에서 가르쳤다. 192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

  • 김두우 / 金斗牛 [역사/근대사]

    1898-193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평산(平山)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비밀리에 제작하였다. 3월 31일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김예식(金禮植)·서홍균(徐洪均)·정학규(鄭學奎) 등과 함께

  • 김두찬 / 金斗燦 [역사/근대사]

    1919-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택달(金澤達)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동(江東)이다. 1936년 평양의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재학 중, 일본이 강압적으로 시행했던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주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1938년 김길순

  • 김득명 / 金得鳴 [역사/근대사]

    1923-2009.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이다.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발발시키고 군사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 징집하였다. 김득명(金得鳴)은 이때 강제 징병되어 중국 상해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속되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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