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22,135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검색결과
조택원 / 趙澤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민속무용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친일반민족행위자. 190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군관학교 제1기 출신으로 참령(參領)의 지위에 올라 있던 종완(鐘玩)이며, 어머니는 김금오(金琴梧)이다. 7세 때 홍원보통
조포사 / 造泡寺 [예술·체육/건축]
사찰. 조포사(造泡寺)는 능(陵)이나 원(園)에 딸려서 제향에 쓰는 두부를 맡아 만드는 사찰이다. 헌릉(獻陵)의 조포사는 용인의 봉서사(鳳棲寺)이다. 예전에는 봉헌사(奉獻寺)를 조포사로 삼았으나, 사찰이 무너지고 승려가 흩어진 탓에 봉서사를 조포사로 삼게 되었다. 광교
조학경 / 趙學經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업에 몰두한 문인이다. 검간 정의 5세손이며 조언기 아들이다. 어려서 밀암 이재 문하에서 배웠다. 깨달은 바가 있어 과거에 뜻을 접고 오로지 학문에 매진했다.《심경》‧《근사록》‧《주자서》에 공을 들였으며 문장이 날로 발전했
조학래 / 趙學來 [종교·철학/유학]
1899년(고종 36)∼1964년. 조선 말기의 문인이다. 고조부는 조성헌, 증조부는 조방규, 조부는 조용진, 부는 조창제이다. 7, 8세에 부형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 근면하고 나태하지 않아 문의를 쉽게 깨우쳤다. 이후 집안의 여러 어른들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육
조한규 / 趙翰逵 [종교·철학/유학]
1740∼181? (영조15∼순조?) 아버지 조영근과 어머니 청주 한씨사이에서 2남 1녀의 셋째로 태어났다. 각정산아래에서 성장하여 평생을 보냈으므로 호를 각정이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증조할아버지가 문충공 조태억이다. 16세 때에 형과 함께 미상에서 최수인․ 수원
조함세 / 趙咸世 [종교·철학/유학]
1607년(선조 40)∼1690년(숙종 16). 조선 중기 유학자. 부친 조형도의 5남 중 막내, 형으로 조함영‧조함희, 조함장‧조함철이 있다.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 1652년(효종 3) 증광시 생원 3등 8위로 합격, 호조판서를 역임했던 김세렴의 천거로 참봉에 올
조해 / 趙楷 [종교·철학/유학]
1639(인조 17)∼1699(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봉원, 어머니는 정시혁의 딸이다. 서인이다. 1681년(숙종 7) 천거로 공릉참봉, 경안도찰방, 예빈시직장, 의금부도사,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조헌 / 趙憲 [종교·철학/유학]
1544(중종 3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유학자·의병장. 황 증손, 할아버지는 세우, 아버지는 응지이다. 어머니는 차순달의 딸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좌랑, 보은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 선
조현례 / 朝見禮 [정치·법제]
왕비 또는 왕세자빈이 혼례를 마친후 처음으로 부왕, 모비 등 왕실의 어른을 뵙는 의식. 국혼은 납채, 납징, 고기, 책비, 친영, 동뢰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절차인 동뢰연를 마친 후 조현례를 거행하였다. 헌종 계비인 효정왕후 홍씨의 가례를 보면 동뢰연을 마친
조현명 / 趙顯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0∼1752).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분무공신 3등에 책록되고, 풍원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도승지·경상도관찰사·공조참판·부제학, 이조·병조·호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영의정에 이르렀다. 영조의 탕평책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조형 / 趙珩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79(숙종5). 조선 후기의 문신. 세찬 증손, 할아버지는 기, 아버지는 희보이다. 1626년(인조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나 파방, 163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대교를 거쳐 사국으로 옮겼다.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
조형균 / 趙衡均 [교육/교육]
1873-1948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1892년(고종 29) 정주에 교회를 세우고 신문화운동을 통하여 애국사상을 고취하였고, 1904년 이승훈(李昇薰)과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설립,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또, 남녀청년단을 조직하고, 식
조형도 / 趙亨道 [역사/조선시대사]
1567(명종 22)∼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무신. 생육신 여 5대손이다. 아버지는 지이다. 큰아버지 우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오운의 딸이다. 1583년(선조 16) 첨지 민추에게 수학했다. 1587년 정구를 사사한 뒤 3년 간 향시에 연이어 장원하였다
조형보 / 趙衡輔 [정치·법제/법제·행정]
1659년(효종 10)∼1697년(숙종 23).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풍양이다. 홍문관전한 조종경(趙宗敬)의 후손으로, 증조는 현감 풍옥헌(風玉軒) 조수륜(趙守倫)이고, 조부는 창강 정속(鄭涑)이다. 부친 현령 매창(梅窓) 정지운(鄭之耘)과 모친 승지 정면(鄭勔)
조호익 / 曺好益 [종교·철학/유학]
1545(인종 1)∼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치우 증손, 할아버지는 효연, 아버지는 윤신이다. 어머니는 장중우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저서로 『지산집』·『심경질의고오』·『가례고증』·『주역석해』 ·『역상추설』·『논위학지요』·『이기유석등변』·『
조홍시가 / 早紅枾歌 [문학/고전시가]
1601년(선조 34)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연시조. 모두 4수. 작자의 문집인 『노계집(蘆溪集)』 권3에 실려 있고, 『청구영언』·『해동가요』 등에도 전한다. 이덕형(李德馨)이 도체찰사로서 영천에 이르렀을 때에 홍시를 보내자 그 자리에서 이 시조를 지은 것이라 한다.
조홍진 홍산현감 해유문서 / 趙弘鎭 鴻山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782년(정조 6) 10월 일에 후임관이 병조에 첩정을 올렸고, 동년 10월 초9일에 공충도관찰사겸순찰사가 병조에 문서 이관, 동년 10월 일에 병조에서 호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조홍진(趙弘鎭)은 재검(載儉)의 아들로 양부는 재운(載運)이다. 1780년(
조화정부 / 造化政府 [종교·철학/신종교]
강증산(姜甑山)이 지난 세상의 잘못들을 공정하게 바로잡늗다는 증산교의 사상. 이 사상의 배경에는 사자(死者)도 생자(生者)의 일원이 된다는 선조사상과 땅에서의 다스림이 하늘의 것이라는 정치사상이 깔려 있다. 증산교도들은 조화정부가 하는 일이 앞으로 올 인존시대(人尊時代
조황 / 趙晃 [역사/근대사]
1882-1934. 항일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부터 국내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였다. 1923년 3월 황옥경부폭탄투척의거(黃鈺警部爆彈投擲義擧)에 가담하여 김시현(金始顯) 등과 더불어 붙잡혔다. 같은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 합의부에서
조훈 / 趙勳 [역사/근대사]
1886-1938. 독립운동가. 일명 덕묵(德默). 함경남도 단천 출신. 1910년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에서 이태걸(李泰杰)·김찬(金燦) 등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