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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탁 / 曺振鐸 [역사/근대사]
1867-192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 장날인 3월 4일을 기하여,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과 함께 강서군 사천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반석면 반육리에 있던 반석교회의 장로로서 1919년 2월 28일 평양에 갔다가
조창 / 漕倉 [경제·산업/경제]
조세미를 경창으로 수송하기 위해 수로 연변 또는 연해안 요충지에 설치한 창고. 조창제도가 정비된 때는 일반적으로 992년(고려 성종 11)이라고 이해되었으나, 근래에는 정종 때 창설되었다고 한다. 조창의 분포를 보면, 고려 초기에 세곡 운송을 맡은 포를 모체로 하여,
조창룡 / 趙昌龍 [역사/근대사]
1899-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順川)이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입단하였다. 1920년 김진준(金鎭俊)·장필석(張弼錫)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평안남도 성천(成川)과 황해도 신계(新溪) 등지에서 국내 조직
조천가 / 朝天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이수광(李睟光)이 지은 가사. 전후 2곡으로 되어 있다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신흠(申欽)이 『상촌집(象村集)』에서 평하기를 ‘고결하고도 유려한 가사’라고 극찬하였다. 작품의 제목으로 보아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그곳의 풍물과 감회를 보고형식으
조천록 / 朝天錄 [문학/고전시가]
저자 미상의 수필·가사·소설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문집. 한장(韓裝) 1책. 궁체 국문 필사본. 수록작품은 수필·가사·소설 등으로, 「됴텬녹」·「한화희등황후」·「쇼통현뎐」·「교구련뎐」·「사시풍경녹」·「됴비연합덕의뎐」 등 6편이다.
조천비석거리 / 朝天碑石─ [지리/자연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지명.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1호. 조천은 제주에 이르는 관문이다. 이 비석거리에는 7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1. 목사채공동건휼민선정비(牧使蔡公東健憰民善政碑) : 1855년(철종 6) 8월∼1857년 6월까지 제주목사를
조천사 / 朝天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명나라에 보내는 조선의 사절 또는 그 사신의 총칭. 조천사란 천조(天朝)인 중국에 조근(朝覲)하는 사행이라는 뜻이다. 조천사는 해마다 정례사행과 임시사행으로 나누어 파견하였다. 정례사행으로는 네 번이 있었다.
조철제 / 趙哲濟 [종교·철학/신종교]
1895년(고종 32)∼1958년. 태극도 창시자. 23세 때 강일순의《태극도리》를 읽고 개안영통하였다. 1918년 무극도를 창도, 증산사상을 포교하였다. 그뒤 3년 동안 120여칸의 교당을 짓고 10만의 신도를 가지는 대교단을 이루었다. 1948년에 본부를 부산 보수
조철호 / 趙喆鎬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0∼1941). 1913년 일본육군 중앙유년학교, 사관학교를 졸업. 오산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교생을 지도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31년 김성수의 신원보증으로 입국하여 동아일보사에 근무하는 가운데
조청부산전선조약 / 朝淸釜山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6년 3월 인천-한성-부산간의 전선가설에 관하여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6개조의 조약. 1885년 7월에 '조청전보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은 1883년에 체결한 '조일해저전선부설조약'을 내세워 의주전선이 개통된다 하더라도 이 선을 통하여 조선이 공사간의 전보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정치·법제/외교]
1882년 8월 23일(음력) 조선과 청 사이에 체결된 수륙통상조약. 1882년 8월 천진에 도착한 어윤중은 이홍장, 마건충 등을 만났다. 조선과 청과의 통상조약 협상때에도 마건충은 청 정부 대표의 한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은 전문과 8개조의 본문으로
조청전선조약 / 朝淸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5년 7월 17일 인천-한성-의주 간의 전선 부설에 관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 전신, 전화는 근대 국가에 있어 중추신경 역할을 담당하는 근대 시설이다. 조선 정부가 인천-한성-의주-만주-봉황성에 이르는 전선을 설치해 줄 것을 국왕의 이름으로 청나라
조충의전 / 趙忠毅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 1책. 국문 필사본. 내용에 효종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저작 연대는 효종 이후가 분명하다. 이 작품은 민간에 유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서 구성면에서도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내
조칙 / 詔勅 [문학/한문학]
한문문체의 하나. 대개 왕의 말을 조(詔), 황후·태자의 말을 영(令)이라고 한다. 이들이 문서로 발포하는 것을 총칭하여 조령이라 한다. 고(誥)·조(詔)·영(令)·유(諭)·새서(璽書)·교(敎) 책명(策命) 등은 명칭은 비록 다르지만 모두 조령에 속한다. 우리 나라는
조침문 / 弔針文 [문학/고전산문]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고전수필.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쓴 제문(祭文)이다. 미망인 유씨의 작품으로 알려졌을 뿐 연대와 작자의 인적사항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작자는 사대부 가문의 청상과부인로 생각되는데, 그 문장실력과 고사(故事)에 능통한 점으
조탁 / 曺倬 [종교·철학/유학]
1552(명종 7)∼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문신. 한필 증손, 할아버지는 언전, 아버지는 몽정, 어머니는 홍신의 딸이다. 1599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공조참판, 한성부좌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조태구 / 趙泰耉 [종교·철학/유학]
1660(현종 1)∼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 아버지는 사석이다. 어머니는 권후의 딸이다. 태채·태억의 종형이다. 1686년 별시문과에 종제 태채와 함께 병과로 급제, 설서·문학·승지를 거쳐, 1702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조태수 / 趙泰壽 [종교·철학/유학]
1658년(효종 9) 10월 9일∼1715년(숙종 41) 6월 24일.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기, 조부는 조희보이다. 부친 조형과 모친 이장영의 딸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심권의 딸 청송심씨이다. 44세에 처음 관직에 올라 내시교관을 시작으로, 금부도
조태억 / 趙泰億 [종교·철학/유학]
1675(숙종 1)∼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이다. 아버지는 가석, 어머니는 윤이명의 딸이다. 태구·태채의 종제이다. 최석정의 문인이다. 170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지평·정언 등을 지냈다. 1707년 문과중시에
조태채 / 趙泰采 [종교·철학/유학]
1660(현종 1)∼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 아버지는 희석이다. 어머니는 백홍일의 딸이다. 태구의 종제이며, 태억의 종형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종형 태구와 함께 병과로 급제하였다. 평안감사, 좌참찬 겸 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