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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 근대사
조진탁 / 曺振鐸 [역사/근대사]
1867-192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 장날인 3월 4일을 기하여,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과 함께 강서군 사천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반석면 반육리에 있던 반석교회의 장로로서 1919년 2월 28일 평양에 갔다가
조창룡 / 趙昌龍 [역사/근대사]
1899-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順川)이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입단하였다. 1920년 김진준(金鎭俊)·장필석(張弼錫)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평안남도 성천(成川)과 황해도 신계(新溪) 등지에서 국내 조직
조청부산전선조약 / 朝淸釜山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6년 3월 인천-한성-부산간의 전선가설에 관하여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6개조의 조약. 1885년 7월에 '조청전보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은 1883년에 체결한 '조일해저전선부설조약'을 내세워 의주전선이 개통된다 하더라도 이 선을 통하여 조선이 공사간의 전보를
조청전선조약 / 朝淸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5년 7월 17일 인천-한성-의주 간의 전선 부설에 관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 전신, 전화는 근대 국가에 있어 중추신경 역할을 담당하는 근대 시설이다. 조선 정부가 인천-한성-의주-만주-봉황성에 이르는 전선을 설치해 줄 것을 국왕의 이름으로 청나라
조황 / 趙晃 [역사/근대사]
1882-1934. 항일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부터 국내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였다. 1923년 3월 황옥경부폭탄투척의거(黃鈺警部爆彈投擲義擧)에 가담하여 김시현(金始顯) 등과 더불어 붙잡혔다. 같은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 합의부에서
조훈 / 趙勳 [역사/근대사]
1886-1938. 독립운동가. 일명 덕묵(德默). 함경남도 단천 출신. 1910년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에서 이태걸(李泰杰)·김찬(金燦) 등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
종로경찰서투탄의거 / 鍾路警察署投彈義擧 [역사/근대사]
1923년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건. 1923년 1월 12일 밤 8시 10분경 종로경찰서 투탄에 성공한 김상옥은 그날 밤으로 삼파동에 있는 매부집에 은신하고 있다가 일본경찰에 포위되었다. 이 곳에서 총격전을 전개하여 형사부장 마에무라를 비롯하여
종백부 / 宗伯府 [역사/근대사]
구한말 봉상시, 종묘서, 사직서, 전생서 등의 소관사무와 각 전, 묘, 능, 원, 궁의 일을 관장하였던 관서. 궁내부, 종친부, 종백부 산하 각 사에서 종전에 응입하였던 전곡도 탁지아문으로 하여금 담당하도록 하여 전국의 재정이 일원화되었다. 그러나 전국 재정이 일원화되
종정부 / 宗正府 [역사/근대사]
구한말 왕실의 계보에 대한 직무를 맡아 보았던 관청. 1894년 1차 내정개혁의 일환으로 궁내부, 종정부, 종백부 관제안이 상정되어 돈녕부와 의빈부를 통합하여 종정부로 설치하였다. 그러나 1895년 2차 내정개혁 과정에서 종정부, 종백부는 폐지하고 소관업무를 궁내부의
종정원 / 宗正院 [역사/근대사]
구한말 왕실의 계보에 관한 업무를 맡아 보던 관청.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종친부를 종정부로 개칭하고, 종친을 대우하기 위하여 옛날과 같이 대군, 군, 영종정부사, 판종정부사, 지종정부사, 경, 도정, 정, 주부, 직장, 참봉 등의 직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