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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선 > 조선 전기
대관재몽유록 / 大觀齊夢遊錄 [문학/한문학]
조선 중종 때에 심의(沈義)가 지은 한문소설. 「대관재몽유록」에서 그 특색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작품의 시점은 꿈속에서나 꿈을 깬 뒤에도 일인칭 자기 체험고백의 화자(話者)로 일관되어 있다. 몽유자는 서술자이며 작자 심의 자신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현실세계와
대광보국숭록대부 / 大匡輔國崇祿大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정1품 상계 문관의 품계. 1392년(태조 1) 7월 관제를 새로 정할 때 고려시대의 특진보국삼중대광(特進輔國三重大匡)을 계승, 개편하여 특진보국숭록대부라 하였던 것을 뒤에 대광보국숭록대부로 개칭하였다.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경장 때 관질(官秩)을
대광익회옥편 / 大廣益會玉篇 [언어/언어/문자]
중국남조(南朝)양(梁)의 학자 고야왕(顧野王)이 지은 자서(字書)『옥편(玉篇)』의 송(宋)대 중수본. 송 진종(眞宗)대에 진팽년(陳彭年) 등이 칙명을 받아 1013년(大中祥符 6)에 양고야왕의 자서인『옥편』의 주석을 줄이고 글자를 22,700여 자로 대폭 늘린 중수본이
대교 / 待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예문관과 규장각에 소속된 관직. 예문관대교는 2인으로 정8품직이었다. 1401년(태종 1) 예문춘추관을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관하면서 종래의 정8품 수찬(修撰)을 대교로 개칭하여 예문관에 속하게 한 것이다. 봉교·검열과 함께 ‘팔한림(八翰林)’으로 지칭되었고
대구 / 大邱 [지리/자연지리]
지명. 고려 인종(仁宗) 때에 현령이 두어져서 조선왕조에까지 이어왔다. 1415년(세종 1) 5월에 1,000호 이상이 되어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다가 세조(世祖) 12년 1월 관제경정(官制更定) 때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대구향교 / 大邱鄕校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향교. 1398년(태조 7)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교동(校洞)에 창건되었다. 당시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었으며, 1400년에 불타자 곧 재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어 1599년(선조 32)
대군 / 大君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자 중 정비의 몸에서 출생한 적실왕자. 처음에는 정1품 유자(有資)였으나 ≪경국대전≫에서는 무품무자로 되었다. 즉, 군왕과 정비처럼 관품과 품계가 붙지 않게 된 것이다. 조선 초기의 왕자봉작제는 충선왕제를 수용해 사용한 것이다. 세조(世祖) 3년 당시에는
대군사부 / 大君師傅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대군의 교육을 담당한 관직. 권설직(權設職)으로 품계는 종9품이다. 왕자사부(王子師傅)·왕손교부(王孫敎傅) 등과 함께 1785년(정조 9)에 편찬된 ≪대전통편≫에 새로이 법제화되었다. 사과(司果) 이하의 체아록을 받았으며, 재직임기 900일이 만료되면 6품에
대군진 / 大君陣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왕자들이 여러 가지 명목으로 무단 점령한 토지. 어린 대군의 하인들이 지방에 내려가 농민들의 땅을 대군진이라 하여 탈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농민들의 원성을 유발하는 등 물의가 야기되자, 1634년(인조 12) 사헌부에서 규제를 주청하기도 하였다.
대기치 / 大旗幟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각 군영에서 의장(儀仗) 및 군사 신호용으로 사용했던 사방 4자 이상의 대형 기치의 총칭.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명시된 대기치의 종류·규격·문양·용도 등에 따라 나누었다. 이 기치들은 또 사용 포백 재료에 따라 대단 대기치(大緞大旗幟)·면주 대기치(綿紬大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