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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 / 靜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의 송산현(松山縣)이었는데, 1033년(덕종 2)에 토성을 쌓고 정주진(靜州鎭)이라 하였다. 이곳에 주민 1,000호(戶)를 옮겨 살게 하였으며, 정주방어사를 두었다. 문종 때 정주를 포함한 5개성이 성은 크고 백성이 작다 하여

  • 정주군 / 定州郡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서남부 해안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는 박천군·태천군, 서쪽으로는 선천군, 남쪽으로는 황해, 북쪽으로는 구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4°57′∼ 125°27′, 북위 39°23′∼ 39°51′에 위치하며, 면적 827.71㎢, 인구 16만 4261명(1944

  • 정주승전가 / 定州勝戰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두루마리 한글본.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소재로 읊은 전쟁가사이며, 작품 시기도 그때로 추정된다. 전체 122구이며, 4·4조의 정격 양반가사이다. 작품의 출처는 서울 지방이며, 작자는 내용으로 보아 16세 남짓한 한양의 양반집 출신으로 당시에

  • 정주시 / 定州市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남부 해안에 있는 시. 북부는 구성시와 태천군, 동부는 운전군, 서부는 곽산군과 잇닿아 있고, 남부는 황해에 면하여 있다. 인구는 20만5748명(1996년 추정)이며, 면적은 487㎢로서 도 면적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1954년 10월과 1958년 6

  • 정주평야 / 定州平野 [지리/자연지리]

    평안북도 중주군과 곽산군(옛 정주군) 일대에 펼쳐진 평야. 이 일대는 적유령산맥의 말단부로 점점 낮아져서 200∼300m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그 사이를 달천강(㺚川江)ㆍ사송강(泗松江)ㆍ동래강(東萊江) 등이 남쪽으로 흘러 황해로 들어간다. 전작으로 보리ㆍ밀ㆍ조ㆍ옥수

  • 정주향교 / 定州鄕校 [교육/교육]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성내동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21년(광해군 13)에 소실되어 1640년(인조 18) 장의(掌議) 백이원(白彝元)이 유림들과 함께 초가를 세워 공자의

  • 정준 / 鄭儁 [종교·철학/유학]

    1573년(선조 6) ~1644년(인조 22) 조선 중기 문신. 정몽주 8세손, 부친은 정응선이다. 희릉참봉과 건원릉참봉을 거쳐서 1623년(인조 1) 6월에 사재감직장을 지냈고, 1625년(인조 3) 7월에 예빈시주부를 지냈으며, 이후 돈령부판관‧종친부전부를 지냈다

  • 정중기 / 鄭重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685∼1757). 1727년(영조 3) 생원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31년 승정원주서가 되고, 이어 결성현감으로 나가 풍속을 바로잡고 《여씨향약》에 의거하여 향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사간원정언을 거쳐 1753년 사헌부지평이 되

  • 정중대 / 鄭重岱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62). 1717년 봉상시주부 겸 부정자에 임명되어 숙종에게 동서고금의 역사를 강설, 그 실력을 크게 인정받아 정자에 승진되고, 이어 박사가 되었다. 1718년 금교도찰방으로 나가 자신의 녹봉을 털어 주민들을 진휼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 정중록 / 鄭重祿 [종교·철학/유학]

    1678년(숙종 4)∼1732년(영조 8). 조선 후기 유생·효자. 증조는 정호례, 조부는 정시상이다. 부친 정석명과 모친 서중후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박기봉의 딸이다. 정규양에게서 학문을 배웠는데, 경서와《사기》공부를 즐겨하였고, 《사자소학》과《가례》를

  • 정지락 / 鄭之洛 [종교·철학/유학]

    1773년(영조 49)∼1857년(철종 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내양, 생부는 정내성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8세에 글을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8세의 나이로 조부를 따라 과거에도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문집으로 2권의《침천재유고》가 전

  • 정지용 / 鄭知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3∼?). 생원으로서 1813년(순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차례 청환직을 역임하고, 1828년에는 진전 작헌례 때 대축으로서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간으로 발탁되었고,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다시 대사간을 지낸

  • 정지집 / 鄭之鏶 [종교·철학/유학]

    1693년(숙종 19)∼1754년(영조 30). 조선 후기 유학자. 용포 이유와 청대 권상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강학과 실천을 항상 염두하면서 위기지학에 힘썼다. 문집으로 후손인 정원국과 정건모 등이 편집·간행한 4권 2책의《병촉재문

  • 정진사전 / 鄭進士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한글활자본.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여 전반부에서는 남녀주인공의 결연을, 후반부에서는 처첩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12회의 장회체로 된 작품이며 전반부와 후반부가 성격을 매우 달리하고 있다. 작품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

  • 정진한 / 鄭鎭漢 [종교·철학/유학]

    1867년(고종 4)∼1947년. 한말의 의병. 영천의병장 환직의 재종질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하여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계기로 고종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은 아들 용기에게 거의할 것을 명하였다. 정진한은 이때 정용기·이한구·손영각 등과 함께 거의계획을 세우게

  • 정진헌 / 鄭鎭憲 [종교·철학/유학]

    1834년(순조 34)∼1911년. 조선 말기 유학자. 조부는 정유곤, 부친은 정관왕, 생부는 정연광이다. 문장이 훌륭하여『훈지양선생어록』의 서문과『만회문집』의 발문을 쓰기도 하였다. 문집으로 8권 4책의『하산문집』이 전하는데 시는「고암잡영」‧「팔경」등의 자연시들과 헌

  • 정찬휘 / 鄭纘輝 [종교·철학/유학]

    1652(효종 3)∼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몽주 11대손이다. 약관으로 송시열의 문하생이 되었는데 스승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평생을 두고『대학』·『심경』·『근사록』연구에 전념함으로써 당대 독학의 선비로 알려졌다. 군자감판관, 산음현감을 역임하였다.

  • 정처사술회가 / 鄭處士述懷歌 [문학/고전시가]

    1892년(고종 29)정내기(鄭來驥)가 지은 가사. 1책. 한글 필사본. 이 작품은 울릉도를 소재로 한 가사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것으로, 섬 일주의 노정, 갖가지 형태의 바위와 크고 작은 산봉우리, 기이한 풀과 나무 등의 자연을 잘 묘사한 점과 작자의 기구한 일생을

  • 정천 / 鄭洊 [종교·철학/유학]

    1659(효종 10)∼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철 현손, 아버지는 보연이다. 외숙인 민정중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대표관직으로는 공조정랑, 금천현감을 지냈다.

  • 정철 / 鄭澈 [정치·법제/법제·행정]

    1536-1593. 조선 중기 문신 겸 시인. 당대 가사문학의 대가로서 시조의 윤선도와 함께 한국 시가사상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기대승·김인후·양응정의 문하생. 어려서 인종의 귀인인 맏누이와 계림군 유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로 인하여 궁중에 출입하였는데 이 때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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