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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 正田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의 농경지 가운데 휴한 혹은 진황시키지 않고 해마다 경작하는 상경전을 지칭하는 법제적 용어. 1444년(세종 26)의 공법수세제(貢法收稅制)의 제정에 즈음한 때부터였다. 정전이야말로 국가의 전세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 대상이었기에 구체적인 규제가 필요했던 것
정절서원 / 靖節書院 [교육/교육]
대전광역시 동구 가양동에 있었던 서원. 1684년(숙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유(宋愉)·박팽년(朴彭年)·송갑조(宋甲祚)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1701년(숙종 27)에 김경여(金慶餘)와 송상민(宋尙敏), 1822년(순조 22)에 송
정정증부신구잡가 / 訂正增補新舊雜歌 [문학/고전시가]
한인석이 유흥의 장 및 일반에 유행하던 노랫말을 수록하여 1914년에 간행한 가집. 목록에서는 제일회에 「추풍감별곡」을 싣고, 제이회에서는 「자운가」, 제삼회에서는 「춘면곡」에 이어 「진정부」·「청루원별곡」 등의 순으로 싣고 있으나, 본문에서는 이러한 제일회, 제이회
정제 / 鄭梯 [종교·철학/유학]
1689년(숙종 15)∼1765년(영조 41).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정사제이다. 정만양과 정규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향시에는 여러 차례 합격하였으나 대과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오직 학문 정진에 전념하였다. 학문적으로 교유한 인물로 정중기·정간 등이 있다.
정제두 / 鄭齊斗 [종교·철학]
1649-1736.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당시 이단시하던 양명학을 고집하여 조선 양명학의 태두가 되었다. 그는 심즉리설에 입각하여 주자학의 성즉리설을 비판했다. 저서로는 <하곡집>이 있다.
정조 / 正祖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제22대 왕(1752∼1800). 재위 1777∼1800년. 1759년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요절한 효장세자의 후사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776년 즉위하자 곧 규장각을 설치하여 이로써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정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정권
정조법 / 定租法 [경제·산업/경제]
소작 계약 때 미리 일정한 수량을 정하고 추수 후 분배하는 소작관행의 한 형태. ‘도조(賭租)’, ‘도지(賭只)’, ‘지정(支定)’이라고도 한다.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부터 나타났으며, 특히 궁장토(宮庄土), 역둔토(驛屯土), 묘위전(墓位田), 사전(寺
정조사 / 正朝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원단에 명나라나 청나라에 보내던 사절 또는 그 사신. 동지사·성절사와 더불어 삼절사의 하나이다. 이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보내던 임시사절이 아니라 정례사행이었다. 이 정례사행은 원래 별도로 엄격히 지켜지다가 1645년(인조 23)부터 피차의 편의를 보아
정조실록 / 正祖實錄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 1776년 3월부터 1800년 6월까지 24년 4개월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56권 56책. 정식 이름은 ‘정종대왕실록’이다. 그러나 1899년 정종의 묘호를 정조로 추존했기 때문에 그 뒤부터 추존한 묘호에 따
정존겸 / 鄭存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94). 1750년(영조 26) 생원시에 합격, 다음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 시파로서 우의정에 발탁되고 이듬해 좌의정이 되었다. 1781년《영조실록》과 《경종수정실록》 편찬의 실록청총재관을
정존중 / 鄭存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1798).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음사로서 참봉이 되었다가 누천하여 1780년(정조 4) 광주목사로서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중용되었다. 1791년 한성부판윤에 이어 개성부유수를 거쳐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
정종 / 鄭悰 [종교·철학/유학]
?∼1461(세조 7). 조선 전기의 문신. 아버지는 충경이다. 1450년(세종 32)에 문종의 딸 경혜공주와 혼인한 뒤 영양위에 봉하여지고, 단종 초기에 형조판서가 되어 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정종대왕가상시호망단 / 定宗大王加上諡號望單 [정치·법제]
조선의 제2대 국왕인 정종에게 가상할 시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1년(숙종 7) 9월 18일 빈청에서 올린 시호 망단. 이 망단에서 의정한 가상 시호는 '의문장무(懿文莊武)'네 글자이며, 이를 종전의 시호인 '온인순효(溫仁順孝)'에 덧얹어서 단망의 형태로 올리고 숙종의
정종대왕묘호망단 / 定宗大王廟號望單 [정치·법제]
정종에 대한 묘호를 의정하기 위해 1681년(숙종 7) 9월 18일 빈청에서 올린 묘호 망단. 이 망단은 '정종(定宗)'이라는 한 가지 망만 써서 단망으로 올린 형식이다. 망단의 말미에는 승정원에서 '계(啓)'자 도장을 찍고 '강희 20년(1681) 9월 18일 계'라
정종로 / 鄭宗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1738∼1816). 이상정의 문하에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주리론적인 입장에서 성리학의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경학과 문장이 융성하여 영남 제1의 인물.” 이라는 채제공의 평으로 의금부도사에 특진되었고, 사포서별제·강령현감·함창현감에
정종명 / 鄭宗溟 [종교·철학/유학]
1565(명종 20)∼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위 증손, 할아버지는 유침, 아버지는 철이다. 어머니는 유강정의 딸이다. 형조참의 홍인걸의 사위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저작으로 『송강유고』의 부록에 실려 있는『백씨유고』가 있다.
정종명 / 鄭鍾鳴 [정치·법제/정치]
1895년(고종 32)∼미상. 여류 독립운동가·간호원. 전라남도 목포 출신. 1922년 4월 1일 동지 여자고학생상조회를 서울에서 조직, 1925년 5월에 박원희·김필애 등 20여명과 조선여성동우회를 서울에서 조직 운영하기 시작, 이들이 곧 뒷날 근우회를 조직하고 항일
정종호 / 鄭宗鎬 [종교·철학/유학]
1875년(고종 12)∼1954년. 일제 강점기 유학자. 부친 정재설과 모친 재령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노상익의 딸이다. 중부 정재기, 결혼 후에는 노상익·노상직에게 학문을 배웠다. 파리장서 사건 때 본문을 칠곡군에 있는 장석영으로부터 받아서 대구의 윤상태에
정주 / 井州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정읍 지역에 있었던 지명. 처음엔 백제의 정촌현(井村縣)있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에 정읍이라 칭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고부군(古阜郡)의 속현이었으며,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고려시대의 이 지방은 전공주도(全公州道)의 관할역
정주 / 貞州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개풍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1018년(현종 9) 개성현의 속현이 되었고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직할지가 되었으며 경기(京畿)지역이라고 칭하였다. 1108년(예종 3) 지승천부사(知昇天府事)로 바꾸고 1310년(충선왕 2) 지해풍군사(知海豊郡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