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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해 / 鄭允諧 [종교·철학/유학]
1553년(명종 8)∼1618년(광해군 10). 부친은 정련, 숙부가 정탁이다. 어려서부터 문사에 능하고 예법을 지켜 월천 조목과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영달을 구하지 않았으며, 벼슬은 참봉을 지냈다. 저술에 시문집《서귀자선생유고》가 있고, 함창의 청암서원에
정은모 / 鄭殷模 [종교·철학/유학]
1870년(고종 7) 5월 15일∼1953년. 일제강점기 유학자‧독행(篤行). 자는 주현(周顯), 호는 운림(雲林), 본관은 동래(東萊), 포내리(浦內里) 출신이다. 과거에 뜻을 두었으나 혼탁해져가는 세상을 보고 집에서 효도하고 제사를 받들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
정을선전 / 鄭乙善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필사본·활자본. 이 작품은 계모형 가정소설로, 전반은 남녀 주인공들의 결연, 중반은 계모와의 갈등, 후반은 남편을 둘러싼 부인들의 쟁총(爭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의 지명과 관직명이 섞여 있는 점
정음 / 正音 [언어/언어/문자]
1934년에 창간되었던 조선어학연구회(朝鮮語學硏究會)의 기관지. 1941년에 제37호 발행으로 폐간되었다. 국어학사상 국어학 연구의 근대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헌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 1930년대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의 기관지 ≪한글≫
정음문전 / 正音文典 [언어/언어/문자]
이필수(李弼秀)가 지은 국어문법서. 『선문통해(鮮文通解)』를 개정한 수정판으로, 1923년 조선정음부활회에서 발행하였다. 1922년 6월에 펴낸 『선문통해』는 “시의에 맞추어 편의상 한자를 섞어 썼다.”고 하였는데, 이 책에서는 제목부터 한글로 바꾸어 쓰고 수정과 증보
정음종훈 / 正音宗訓 [언어/언어/문자]
권정선(權靖善)이 지은 음운학분야의 저서. 훈민정음의 제자원리 등을 원방상형설에 바탕을 두고 설명한 책이다. 대한제국 학부 국문연구소의 기록에 나타난 사본이며, 1906년의 저술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같은 연대로 기록되고 내용도 비슷한 『음경(音經)』 초고가 있는데
정음청 / 正音廳 [언어/언어·문자]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 관계 사무를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임시관서. 중종반정 뒤 이틀 뒤인 1507년 9월 4일자 ≪중중실록≫에 ‘혁언문청(革諺文廳)’이라는 기사와 1452년 11월 2일자 ≪단종실록≫에 ‘파정음청(罷正音廳)’이라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훈민정
정읍 무성서원 / 井邑武城書院 [교육/교육]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에 위치한 서원. 고려시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최치원(崔致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을 창건하여 태산사(泰山祠)라 하였고, 고려 말 쇠약해졌다가 1483년(성종 14)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
정읍가정리유적 / 井邑佳井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가정마을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우물 유구[井戶遺構]. 1969년 한해대책사업으로 들샘을 파다가 3개의 우물자리를 발견한 것인데 전주시립박물관장 전영래에 의해서 조사되었다. 이곳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의 전적지로 유명한 황토현 기슭으로서
정읍발언 / 井邑發言 [정치·법제/정치]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전라도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일.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개최된 미소공동위원회 1차회의가 결렬되고, 좌우합작운동이 전개될 무렵, 미군정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보도
정읍사 / 井邑詞 [문학/고전시가]
백제시대 때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이 노래의 가사는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조(時用鄕樂呈才條)에 「동동」·「처용가」·「정과정」 등 고려가요와 함께 실려 전하고, 『고려사』 악지 2 삼국속악조에도 「정읍사」에 관한 기록이 있다. 백제시대부터 구전해 온 민간전승
정읍향교 / 井邑鄕校 [교육/교육]
전라북도 정읍시 장명동에 있는 향교.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지금의 수성리 구미동 사정지(射亭址)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8년(인조 16) 이 지역의 유림 유황(
정의 / 旌義 [지리/인문지리]
제주도 남제주지역의 옛 지명. 본래 제주 동도(東道)였는데 1416년(태종 16) 이 중 한라산 남쪽의 토산(兎山)ㆍ호아(狐兒)ㆍ홍로(洪爐) 등을 통합하여 정의현을 신설하였다. 현의 치소는 처음에 고정의(古旌義)에 있었는데 바다에 가까워 바람이 심하고 왜구의 위험이 있
정의 / 淨義 [종교·철학/불교]
1856년(철종 7)∼1936년. 한말의 학승(學僧)이며 율사(律師). 호는 동선(東宣), 출신지는 경상북도 안동으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18세에 출가하여 보월화상(寶月和尙)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1891년 유점사‧반야암(般若庵)에서 강석(講席)을 열어 학인들
정의림 / 鄭義林 [종교·철학/유학]
1845년(헌종 11)∼1910년(융희 4). 조선 말기의 유학자. 노사 기정진에게 유학을 배웠다. 스승인 노사의 문집 간행에 관여하였으며 스승의 학설을 옹호하는 글을 남겼다. 문집으로《일신재집》이 전한다.
정의번 / 鄭宜藩 [종교·철학/유학]
1560(명종 15)∼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의병장 세아이다. 1585년(선조 1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에서 승리, 이어 경주에 진격하여 싸우다가 좌장군 박진의
정의향교 / 旌義鄕校 [교육/교육]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향교. 1416년(태종 16)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809년(순조 9)에 현감 여철영(呂哲永)이 서성내(西城內)로부터 화원동(花院洞)에 이전하였다가, 1849년(
정이품 / 正二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3등급의 품계.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의 품계인 정헌대부·자헌대부가 제정되었다. 종친계는 1443년(세종 25) 숭원대부·승헌대부가 신설되고, 의빈계는 1444년 7월 봉헌대부·통헌대부가 제정되어 ≪경국대전≫에
정익하 / 鄭益河 [역사/조선시대사]
1688년(숙종 14)∼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자겸(子謙), 호는 회와(晦窩), 본관은 영일(迎日),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1721년(경종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으로 예조참판‧도승지‧대사헌(大司憲)‧형조참판 등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
정인방 / 鄭寅芳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시집가는 날」, 「알쏭달쏭」, 「향로」 등의 작품을 발표한 무용가.전통무용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215번지 출생하였다. 언론계에 종사하던 부친 정홍조와 모친 이규승의 사이에서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들은 정치나 의학, 법학도가 되기를 바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