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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영복리지석묘 / 康津永福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영복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인돌들은 규모가 큰 것은 길이 4m, 너비 3.5m, 두께 1m 정도의 뚜껑돌을 가지고 그 아래는 둥근 굄돌 4, 5개로 괴었다. 이것은 대표적인 남방식 고인돌의 예로서 그 하부구조의 굄돌 안쪽에 상자모양의
강진원 / 姜振遠 [역사/근대사]
1881-1921. 의병장. 본관은 진주. 일명 진원(震遠). 자는 형원(亨遠), 호는 성산(聖山). 전라남도 승주 출신. 유년시절에 손오병서(孫吳兵書) 등을 탐독하면서 한문을 수학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봉기한 의병진에 가담하였으나 전공을 세울만
강진지석리지석묘 / 康津支石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모두 10여기가 분포되어 있으나 그 중 1기만 국립박물관에 의해 1967년에 발굴되었다. 이 고인돌은 원래 일본인 후지다(藤田亮策)에 의해 북방식 고인돌로, 그리고 위치도 해남군 옥천면 소재로 잘못 알려져왔다.
강진해 / 姜鎭海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6-1933). 1919년 만주로 망명, 독립단체 정의부의 서란총관으로 활동했다. 1933년 한국독립군 별동대장으로서 동녕현(東寧縣) 진공작전에 참가, 일본군과 격전 끝에 전사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강진향교 / 康津鄕校 [교육/교육]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향교. 1398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1613년에는 이 지역출신 입방자(入榜者)들이 의금(義金)을 내고 군수 정인(鄭寅)의 도움을 받아 사마재(司馬齋)를 건립
강진희 / 姜璡熙 [예술·체육/회화]
1851-1919. 서화가. 본관은 진주. 호는 청운(菁雲). 1886년 일본공사접응관차(日本公使接應官差)를 거쳐, 1887년 주미공사수원(駐美公使隨員)으로 미국에 다녀온 뒤 법부주사(法部主事)를 지내고, 1905년에는 학부위원(學部委員)을 역임하였다. 1911년에 설
강찬 / 姜𧄽 [종교·철학/유학]
1849년(헌종 15)∼미상. 조선 고종 때의 문신. 세황 5세손, 기 손자, 준수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정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71년 홍문관부교리와 수찬을 거쳐 1872년에는 규장각직각이 되었다. 1883년 이후에는 예조참의·이조참의, 우
강창보 / 姜昌輔 [역사/근대사]
1902-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제주(濟州: 현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이다. 1920년대 초 서울의 청년학관에서 사회과학에 대한 공부를 마친 후, 1924년 고향 제주에서 조직한 사상단체 신인회(新人會)의 교육부 간사를 지내면
강창제 / 姜昌濟 [역사/근대사]
1898-1965.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호는 창산(蒼山). 평안북도 창성 출신. 아버지는 시홍(時洪)이다.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뒤 상해로 망명하여 1922년에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기자로 활약하였고, 1924년에는 임
강천각소하록 / 江天閣銷夏錄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심익운(沈翼雲)이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엮은 잡록(雜錄). 1책(47장). 한문필사본. 편찬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현재거사묘지(玄齋居士墓志)」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심사정(沈師正)이 죽은 뒤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자가 묘지·제문·시·서(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