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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현대 > 현 대
김동하 / 金東河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제1상륙 사단장, 해병중장, 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군인. 체육인. 함경북도 무산(茂山) 출신. 일본강점기에 유년기와 청년기를 만주에서 보냈고 1941년에는 만주 신경(新京)에 위치한 4년제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광복과 함께
김막인 / 金漠人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조선무용예술협회 현대무용부의 임원을 역임한 무용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모던댄스를 수학 후, 해방 후 서울에서 전위무용을 시도한 신흥무용가이다. 본명은 김해성(金海星)으로 부친이 목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시이미도리무용연구소에서 수학했고, 귀국 후 악극
김민자 / 金敏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최승희의 제자이며, 예그린악단의 안무가로 활동한 무용가. 1914년 서울 내수동에서 아버지 김영제(金永濟)와 어머니 유운자(柳雲子) 사이의 1남 4녀 중 셋째 딸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우경(又璟), 민자는 예명이다. 14살 때 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재학 중
김병제 / 金炳濟 [언어/언어/문자]
1905년∼1991년. 월북 국어학자. 1930년대 후반에는 배재고보의 ‘조선어’ 교사로 근무하였는데, 이 시기에 조선어학회 회원으로서 표준어 사정위원 및 ‘표준말’ 강사로 일하였다. 광복 이후 월북할 때까지는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과 국어과 지도자 및 교원 강습회
김보남 / 金寶男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아악수, 아악수장, 아악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무용가.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李王職雅樂部員養成所) 제3기생으로 입소하여 피리를 전공하였고, 후에 아악수(雅樂手)·아악수장(雅樂手長)·아악사(雅樂師)가 되었다.춤에 소질이 있어 박성재(朴聖在)·김천흥(
김선기 / 金善琪 [언어/언어/문자]
1907∼1992. 언어학자. 930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영국 런던대학에서 음성학을 전공하여 문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전임강사로 취임, 1939년 조교수, 1940년 교수가 되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함흥형무
김성배 / 金聖培 [언어/언어/문자]
1917∼1985. 국문학자. 아버지는 병우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이다. 1952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56년 같은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1961년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1973년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58∼1
김성운전 / 金成運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필사본. 조선 말기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명나라 신종조를 중심으로 김공필과 성운의 2대에 걸친 가문소설적인 성격을 띤 일종의 군담소설(軍談小說)이다. 청나라의 대두를 배경으로 설정한 흥미 위주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2대에 걸친 가문소
김성원 / 金聲遠 [과학/식물]
1906∼1998. 농학자·광복회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백농(白農). 함경남도 함흥 출신. 아버지 김용준과 어머니 이용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4년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에 입학하여 1928년에 졸업하였다. 1930
김수악 / 金壽岳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12호「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읍 출생. 아버지 김종옥은 국악애호가에 한량이었고,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권번의 가야금 선생이었다. 9세에 진주권번에 들어가 김옥민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