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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 洋服 [생활/의생활]
서양식으로 만든 의복. 개화기 때 서구와의 직접·간접적인 문화적 접촉을 계기로 양복을 입게되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양장은 1890년대에 등장하였으나 최초의 착용자에 관하여는 윤고라(尹高羅), 경옥당, 엄비(嚴妃) 등 의견이 분분하다. 1900년을 전후한 양복의 도입기
영암최원립장군묘출토복식유물 / 靈岩崔元立將軍墓出土服飾遺物 [생활/의생활]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서 출토된 최원립(崔元立, 1618∼1690) 장군의 의복 일괄. 2001년 7월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산111-7번지에서 탐진(耽津) 최씨 문중의 묘를 이장하던 중 출토되었다. 숙종 때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최원립의 묘에서 출토된
영조대왕의도포 / 英祖大王의道袍 [생활/의생활]
조선 후기 영조가 입던 도포. 중요민속자료 제220호. 이 도포는 1979년 파계사 원통전(圓通殿)의 관세음보살상을 개금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도포와 함께 발견된 한지 두루마리에 적힌 발원문에 의하면 1740년(영조 16) 경신(庚申) 12월에 대법당을 개금하고 불상과
옥색명주장옷 / 玉色明紬― [생활/의생활]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옥색을 띈 명주 재질의 쓰개용 장옷. 중요민속자료 제50호인 옥색 명주 장옷은 착용자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름이 달린 위치는 조선 말기 쓰개 전용의 장옷임을 말해 준다. 개화기 이후 유일한 여성의 포제(袍制)인 두루마기와 비교할 때 매우
왕복 / 王服 [생활/의생활]
왕의 정복(正服). 왕복의 종류가 뚜렷이 나타나는 조선시대의 것을 보면, 조근·봉사지복(朝覲奉祀之服)이라 하여 종묘·사직 등에 참예(參詣), 제사하고 정조(正朝)·동지·조회(朝會)·수책(受冊)·납비(納妃) 등에 착용하던 면복(冕服)이 있다. 수배신조현지복(受陪臣朝見之服
왕비복 / 王妃服 [생활/의생활]
왕비의 정복. 왕비는 왕의 신분에 준하기 때문에 왕비가 입는 옷은 제도적으로 정하여졌다. 삼국시대를 전후하여 국가의 제도가 정비되었고 의관제도(衣冠制度)도 정립되었으므로 왕비복도 그 당시부터 입혀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의 왕비복은 계(罽)·수(繡)·금(錦)·나(羅
외재이단하내외분옷 / 畏齋李端夏內外分─ [생활/의생활]
조선 중기의 문신 이단하(李端夏)와 그의 부인이 입었던 17세기 옷과 부속품 6점. 이 유물은 조선 중기 문신 이단하(李端夏: 1625∼1689)와 그의 부인이 정경부인의 신분으로 입었던 복식과 수식류 6점이다. 유물은 이단하가 좌의정 시절에 입었다고 전해지는 중치막(
운혜 / 雲鞋 [생활/의생활]
앞부리와 뒤꿈치에 구름 무늬를 새긴 여자의 마른신. 온혜(溫鞋)라고도 한다. 운혜의 기록이 처음 보이는 것은 1408년(태종 8)의 <예조상정상제 禮曹詳定喪制>이다. 이에 의하면 궁중 상복에 정비(靜妃:太宗妃))·대비·숙빈은 백사혜(白絲鞋), 공주·옹주는 백피온혜(白皮
원삼 / 圓衫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때 부녀자들이 입던 예복(禮服). 원삼이란 앞깃이 둥근 데에서 온 명칭으로 옆이 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릎을 덮어 내리는 긴 길이에 앞길은 짧고 뒷길은 길다. 앞여밈은 합임(合袵:섶이 없이 서로 맞대어진 형태)이고, 양 옆길이 절개되어 있다. 원삼은 조선
유복 / 儒服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때 유생들이 착용하던 의복. ≪태종실록≫ 11년(1411) 6월조에 의하면, 성균관 및 5부 유생은 조정의 제도에 의해 비로소 청금(靑衿)을 착용하도록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 명나라 제도를 따른 것이었다. 홍무(洪武) 24년제를 보면, 생원은 난삼(襴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