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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 개항기
개령초등학교 / 開寧初等學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위치한 공립초등학교. 1908년에 개령군의 유지들이 지방교육 진흥을 위한 초등학교 설립을 계획하여, 1909년 4월에 사립 개진학교로 인가되었다. 초대교장에 허섭(許燮)이 취임하였으며, 수업연한 2년에 10명의 남학생이 입학하여 1911년에 제
개령현읍지 / 開寧縣邑誌 [지리/인문지리]
1890년(고종 27)에 편찬한 것으로 보이는 경상북도 금릉군 개령현(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읍지. 1책. 필사본. 장서각 도서에 있다. 이밖에도 1899년에 편찬된 『경상북도개령군읍지』 1책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진관(鎭管)·건치연혁·현명·관직·성씨·산
개령현호적대장 / 開寧縣戶籍臺帳 [사회/촌락]
1870년 경상도 개령현(현 김천시 일부)에서 조사·작성한 아포면의 호적을 정서하여 엮은 관찬서.호적대장. 1책 51매. 필사본. 끝에 개령현감과 경상도관찰사의 서명·수결(手決)이 있다.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에 유일하게 전한다.
개벽 / 開闢 [종교·철학/신종교]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바뀌는 것. 기본적으로 <주역>의 선후천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개벽의 내용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동학과 원불교 등에서 주역팔쾌를 그대로 수용한 개벽과 김일부의 정역(正易)과 같이 주역에 있는 팔괘의 위치를 변경한 새로운 역학체계에 근거한
개소경긍기 / 改所耕矜記 [경제·산업/산업]
강원도 양양군에서 군내 각 경작자의 현황을 조사, 기록한 농지대장. 8책. 필사본. 작성연대는 1902년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끝에 ‘임인 10월(壬寅十月)’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면 이름 중 군내면(郡內面 : 지금의 양양읍)은 1895년 행정구역조정 때
개천군읍지 / 价川郡邑誌 [지리/인문지리]
평안남도 개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간행한 지방지.읍지. 1책.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平安南道价川郡邑誌地圖謄本成冊(평안남도개천군읍지지도등본성책)’이라고 되어 있다.내용구성은 진관(鎭管)·방리(坊里)·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
개천군읍지 / 价川郡邑誌 [지리/인문지리]
1899년에 편찬된 평안남도 개천군 읍지. 1책.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표지에는 ‘平安南道价川郡邑誌地圖謄本成冊(평안남도개천군읍지지도등본성책)’이라고 되어 있다. 내용구성은 진관(鎭管)·방리(坊里)·도로(道路)·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성지(城池)·관직(官職)
개항 / 開港 [역사/근대사]
특정한 항구를 열어 외국선박의 출입을 허용하는 일. 조선의 개항은 근대 일본의 무력 교섭이라는 외적 계기와 더불어 민족사회 내에 자라고 있던 대외 개방의 내적 계기가 작용하여 이루어졌다. 쇄국 지양과 대외 개방의 주장은 선각자의 학문적 주장에 그쳤으나, 북학론자에서 시
개항장 / 開港場 [역사/근대사]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해 개방한 제한 지역. 외국인의 정박, 접대, 무역처로서의 기능을 발휘한 항구를 통칭한다. 근대 이후 국제조약에 따라 개방된 항구를 지칭하는 것으로, 외국인 거류지가 설정되고 감리서가 설치되었으며, 또한 외교관이 주재하고 출입외화의 관세 수입처
개항장재판소 / 開港場裁判所 [역사/근대사]
1895년에 부산, 원산, 인천 등의 개항장에 설치된 재판소. 1895년 3월 근대적인 '재판소구성법'이 공포, 그 해 5월 개항장 재판소 설치가 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감영, 유수영 및 기타 지방 관아에서 행하던 재판 사무를 폐지하고, 각 해당 재판소에서 수리,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