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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김교필 / 金敎弼 [역사/근대사]
1867-194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만산(萬山)이고, 호는 화암(化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화암리(化菴里)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학원(金學遠)이며 김덕원(金德遠)으로도 불리었다. 1894년(고종 31) 갑
김교헌 / 金敎獻 [역사/근대사]
1868-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대종교인.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보화(普和).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참의·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대중계몽운동을 벌였다. 나철(羅喆)의 뒤를 이어 대종교의 제2대 교주에 취임
김교훈 / 金敎勳 [역사/근대사]
1880-1934.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학로(金學老)·김훈(金勳)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강원도와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군대에게 체포되
김구 / 金九 [역사/근대사]
1876-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1919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고, 이듬해 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지휘하였다. 1945년 11월 환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다. 1948년 남한의
김구영 / 金龜永 [역사/근대사]
1884-193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낙서(洛瑞), 호는 정사(睛沙)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출신이다. 증조부는 김사성(金思聲)이고, 조부는 김석기(金奭基)이다. 부친은 김종협(金鍾協)이다. 외조부는 천안전씨(天安全氏) 전명석(全
김국원 / 金國元 [역사/근대사]
1890-193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덕(性德), 호는 송암(松庵)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승주군(昇州郡) 별량면(別良面)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활약한 김대인(金大仁)
김귀동 / 金貴東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마산(馬山)이다. 1924년 10월 마산노동동우회 집행위원을 맡아서, 12월 마산기자단 결성 때 조선일보 마산지국 기자로서 참가하였다. 1925년 1월 마산독서회 창립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간
김규진 / 金圭鎭 [예술·체육/서예]
1868-1933년. 서화가.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무기옹(無己翁) 등 많은 별호를 썼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외숙인 이희수(李喜秀)로부터 서화의 기초와 한문을 공부하다가, 18세 되
김규철 / 金奎哲 [역사/근대사]
1881-1929.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규철(奎喆). 호는 비장(飛將). 충청북도 단양 출신. 1907년 군대해산 뒤 단양·죽령·청풍·제천·영주·예천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죽령지역에서 4백여명을 인솔하고 다섯 차례나 치열
김극수 / 金極洙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永同)이다. 동생으로 사회주의운동가 김두수(金斗洙)와 항일운동 공훈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2006년에 애족장에 추서된 김태수(金台洙)가 있다. 1921년 9월 영동청년회 학예부장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