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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전 / 張碩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 작품은 우리 고전소설 가운데에서 매우 독특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의 영웅적 활약을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황후가 된 왕소저가 은혜를 갚는 형태를 띤 구출담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례를 치르는 도
장석천 / 張錫天 [역사/근대사]
1903-1935. 광주학생운동 주동자. 전라남도 완도 출신. 수원고등농림학교를 2년간 수료한 뒤 1926년 동경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4개월 만에 퇴학당하였다. 1927년 3월부터 전라청년연맹 상임위원, 전남청년연맹 위원장 등을 지냈고, 강해석(姜海錫)·박인수
장석함 / 張錫咸 [역사/근대사]
1889년(고종 26) 3월 15일∼1951년 4월 5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함경남도 함흥(咸興)이다. 1908년(융희 2) 국권회복을 위한 단지동맹회(斷指同盟會), 신민회(新民會) 등에서 활동 하였다. 중국 용정(龍井) 신촌(新村)에 영신학교(永新學
장선징 / 張善澂 [정치·법제/법제·행정]
1614(광해군 6)∼1678(숙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목천현령 일(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판서 운익(雲翼)이고,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 유(維)이며, 어머니는 김상용(金尙容)의 딸이다. 효종 비 인선왕후 (仁宣王后)의 오빠이다
장선희 / 張善禧 [역사/근대사]
1894-1970.항일기의 독립운동가. 3·1 운동이 일어나자, 대한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투옥된 애국지사들의 가족을 돕고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제2대 재무부장이 되어 전국적으로 조직을 강화하고 미국에까지 지부를 설치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하
장성 백양사 백학봉 / 長城白羊寺白鶴峰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명승. 장성 백양사 백학봉은 장성군 백암산 아래에 위치한 백양사와 백학봉 일대의 암벽 및 식생 경관이 아름다워 2008년에 명승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대한 8경의 하나로 꼽혀왔을 만큼 이름난 곳이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 숲 / 長城 白羊寺─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비자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3호. 면적 297만 5220㎡. 이곳 비자나무는 고려 고종 때 각진국사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현재 약 5,000그루가 자라고 있다. 비자나무는 주목과에 딸린 상록침엽교목이며 자웅이주(雌雄異
장성고산서원 / 長城高山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에 있는 서원. 노사(蘆沙)기정진(奇正鎭)이 1878년에 정사(精舍)를 지어 담대헌(澹對軒)이라 이름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인데 후손들이 1924년에 중건하여 1927년에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 편액을 건 곳이다. 문정공(文靖公)기정진이 주
장성댐 / 長城─ [경제·산업/산업]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용강리에 있는 황룡강의 댐. 높이 36m, 제방 길이 613m, 총저수용량은 9,000만t이다. 유역면적은 122.8㎢이며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은 687㏊로 1개군 4개읍·면 17개리에 걸쳐 있다. 영산강유역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71년 7월
장성탄전 / 長省炭田 [경제·산업/산업]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에 있는 무연탄전. 노두연장은 10m, 가행평균탄폭은 4m 정도이며, 부존심도는 -1,200ML이다. 유지갱도만 하여도 약 20만m에 달한다. 매장량 2억 6,516만 3,000t, 가채량 7,496만 1,000t이고, 대한석탄공사 산하 8개탄광의
장성필암서원 / 長城筆巖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위치한 서원. 1590년(선조 23) 호남 유림들이 김인후(金麟厚)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으며, 1662년(현종 3) 지방 유림들의 청액
장성향교 / 長城鄕校 [교육/교육]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에 있는 향교. 고려 말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394년(태조 3)북일면 오산리 교촌에 있던 향교를 복원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동현 장안리
장성호 / 長城湖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북이면·북이면·북하면에 걸쳐 있는 호수. 영산강의 지류인 황룡강 상류계에 있는 인공호수이다. 장성호는 영산강유역 종합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1976년 9월 장성읍 용강리에 높이 36m, 길이 603m의 장성댐이 건설됨으로써 등장된 저수지로 총저수용
장세용 / 張世湧 [역사/근대사]
1902-1936.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울진 출신. 1922년 재만 각 독립운동단체가 통합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하자 이에 가입, 통의부소속 독립군인 의용대(義勇隊)소대장으로 직접 항일전투에 참전하였고, 1926년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에서 동명
장소진 / 張韶鎭 [역사/근대사]
1886-1924. 독립운동가. 일명 봉래(鳳來).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4월 3일 주곡리 광장에 갔다가, 차희식(車喜植)으로부터 만세시위운동 계획을 전해듣고 적극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날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던 차희식 등은 이미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도 모두
장수광산 / 長水鑛山 [경제·산업/산업]
전라북도 장수군 계내면 금곡리에 있는 광산. 1917년에 채굴허가를 받아 채광이 시작되었는데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 때이었으며 그 때 휘수연광(輝水鉛鑛)의 값이 폭등하여 광산이 성황을 이루었다. 맥폭은 1∼3m이며, 노두의 연장은 1,100m 가량이다. 광석은 백색 석
장수바위설화 / 將帥─說話 [문학/구비문학]
옛날에 살았던 장수가 큰 바위에 흔적을 남겨 지금까지 전해온다는 설화. 대부분 증거물이 있어 전설에 속한다. 옛날에 그 고장에 힘센 장수가 살았는데 지금도 바위에 그의 발자국이나 손자국, 그가 타던 말발굽이 남아 있다거나, 또는 그가 놀던 자리가 남아 있다거나, 장수가
장수산 / 長壽山 [지리/자연지리]
황해도 재령군 장수면·화산면·용산면·하성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47m. 황해도와 함경남도 도계에서 시작하여 황해도를 동서로 달려 장산곶(長山串)에서 끝나는 멸악산맥(滅惡山脈) 중의 한 산이다. 주요 구성 암석은 원생대의 지층인 상원계(祥原系)의 규암(硅岩)이다.
장수산열두굽이 / 長壽山─ [지리/자연지리]
황해도 재령군(지금의 황해남도) 장수면 서림리에 있는 계곡. 길이 12㎞. 일명 ‘석동십이곡’이라 하며, 상부원생대의 규암이 깍이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병풍을 두른 것처럼 50∼150m 넓이의 겹겹으로 쌓인 150∼200m의 돌벼랑이 집중적으로 10리에 걸쳐 열두번 굽
장수설화 / 將帥說話 [문학/구비문학]
보통사람보다 힘이 세고 몸집이 큰 장수가 탄생하여 활동한 이야기를 다룬 설화. 「아기장수전설」·「오뉘힘내기전설」·「치마대전설(馳馬臺傳說)」·「돌들기전설」·「구국영웅전설」 등 어떠한 장수인가에 따라 다양한 설화가 있다. 지방마다 장군이 태어났다, 또는 용마가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