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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원 / 掌隷院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공사노비 문서의 관리 및 노비소송을 관장하였던 관서. 고려 말부터 여러 차례 노비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1401년(태종 1)에는 노비변정도감을 혁파하고 형조도관을 설치, 1466년(세조 12) 변정원으로 개칭하였다. 이듬 해 8만여 명의 공노비를 관장한다는
장례원주본등본급홍문관선생전사전 / 掌禮院奏本謄本及弘文館先生前私電 [정치·법제]
1898년(광무 2) 11월 경효전의 신탑을 개수할 때 이안제(移安祭) 등의 거행을 위해 장례원에서 올린 주본을 등서한 등본과 홍문관의 관원에게 전달해주기 위해서 쓴 사전 전문. 문서내용은 길일을 추택한 내용, 고유제, 이안제, 환안제 등 각종 제사의 일시를 추택한 내
장로 / 長老 [종교·철학/개신교]
개신교 교회조직의 일종. 목사를 도와 교회치리를 담당하는 평신도를 말한다. 한국개신교에서는 장로교만이 해방 전부터 이 직제를 사용, 다른 교파들은 해방이후에 이 직제를 사용하였다.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치리회원이 되어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행정을 담당할 뿐 아니라
장로교 / 長老敎 [종교·철학/개신교]
개신교 교파의 일종. 장로들에 의한 정치를 통해 가시적인 통일성을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회정치유형은 회중제도와 감독제도의 중간에 해당한다. 칼빈주의를 모체로 하는 개혁교회의 한 지파이다.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장로회보 / 長老會報 [언론·출판/언론·방송]
장로회 총회사무국이 1940년 1월 24일에 국한문과 일본문을 혼용하여 9단으로 편집한 주간지. 내용으로는 권두언, 설교, 논설, 종교교육, 시국물, 공문, 교계뉴스, 전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릉배알전교 / 長陵拜謁傳敎 [정치·법제]
1797년(정조 21) 8월 15일. 정조가 장릉에 배알하고, 원종의 국구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 서원부부인과 관련된 후손, 능수호인, 주변 백성, 명세 등을 지시한 전교. 내용은 정조가 1734년(영조 10)에 영조와 함께 장릉을 행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근의 백성에게
장만 / 張晩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29(인조 7). 조선 후기의 문신. 철견의 증손, 할아버지는 계문, 아버지는 기정, 어머니는 조광침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진사 합격, 1591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승문원의 벼슬을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장만걸 / 張萬杰 [종교·철학/유학]
1654년(효종 5)∼1717년(숙종 43). 조선 후기 유학자. 장말손의 후손, 부친은 장윤병이다. 장신, 장진에게 가학으로 배웠으며, 자라서는 나은 이동표·나암 이유장을 사사하였다. 주로 예학에 몰두하여《가례익해》·《의례문답》·《비요집람》를 저술하였다. 문집으로《
장말손 / 張末孫 [종교·철학/유학]
1431(세종 13)∼1486(성종 17). 조선 전기의 문신. 순효의 증손, 할아버지는 경원, 아버지는 안량, 어머니는 고승안의 딸이다.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1463년 승문원박사를 거쳐 한성참군·사헌부감찰·함길도평사를 역임하였다. 1467
장면 / 張勉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정치가(1899∼1966). 1917년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 1919년 서울기독교청년회관 영어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36년 동성상업학교 교장이 되었다. 1946년 정계에 입문, 1955년 신익희·조병옥 등과 민주당을 창당하여 최고위원이 되었다. 1
장면부통령 저격사건 / 張勉副統領狙擊事件 [정치·법제/정치]
1956년 9월 28일 민주당 제2차 전당대회가 열리던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장면 부통령이 저격당한 사건. 장면은 왼손에 권총 1발을 맞았을 뿐 암살은 모면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범인이 28세의 제대군인 김상붕이며, 저격동기는 <민주당이 당파싸움만 하는데 실망했고,
장명 / 長命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은율지역의 옛 지명. 이곳에 진이 설치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초에 장명진이 세워지고 황주에 예속시켰다. 원종 때 현을 설치하였다가 충렬왕 때 진으로 환원시켜 서북면에 예속시켰는데, 이는 원나라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1390년(공양왕 2)에 안
장백산맥 / 長白山脈 [지리/자연지리]
중국의 만주 지방 남동부, 우리 나라와의 국경 부근에 펼쳐져 있는 산맥. 압록강(鴨綠江)·두만강(豆滿江)·송화강(松花江)의 분수령을 이룬다. 요동반도(遼東半島)에서 흑룡강(黑龍江)과 송화강의 합류 지점까지 연결되고, 길이는 약 1,300㎞로 대부분의 봉우리는 높이 2,
장백전 / 張伯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한글본·목판본·활자본의 2종이 있다. 이 작품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웅소설로서, 주인공의 일대기에 의한 군담계 영웅소설의 보편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장백의 아버지가 후사가 없으므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농업에 힘쓰는 것과,
장백정간 / 長白正幹 [지리/자연지리]
우리나라 지형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북쪽으로 함경북도의 지형을 두만강유역과 동해안유역으로 갈라놓은 산줄기의 옛 이름.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산맥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장병도 / 長柄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 있는 섬. 2009년 기준으로 인구는 83명(남 43명, 여 40명)이고, 세대수는 33세대이다. 주민 대부분이 전주이씨로 1700년경 전라북도 고창에서 입도하였다고 한다. 취락은 섬 중앙에 있는 장병마을에 집중해 있다. 토지이용 현황은
장복 / 章服 [생활/의생활]
장문(章文)이 장식된 의복. 황제 이하 왕·문무백관이 착용하였던 제복(祭服)의 한 종류이다. 황제나 왕은 대례(大禮) 제복으로 면류관(冕旒冠)에 곤복(袞服)을 입었는데, 곤복에 장식한 문양의 수(數)에 따라 품급(品級)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우리 나라에서 장복이 처음
장복겸 / 張復謙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옥경헌유고』를 저술한 문인. 할아버지는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장개세(張蓋世)이고,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장담(張膽)이다. 54세 때인 1670년(현종 11)에는 흉년이 들어 민생이 어려워지자 조정에 「구페소(救弊疏)」를 올렸다. 상소를 통해 환상(還上) 제
장복서 / 掌服署 [생활/의생활]
고려시대 임금의 옷을 상납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 목종 때 상의국이라 하여 봉어·직장의 관직을 두었고, 문종 때 봉어는 정6품 1인, 직장은 정7품 2인으로 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장복서로 고치고 봉어를 영(令)으로 고쳤으나 직장은 그대로 두었다. 1356
장복추 / 張福樞 [종교·철학/유학]
1815년(순조 15)∼1900년(광무 4). 조선 후기 유학자. 1881년(고종 18) 천거되었고 장원서별제·경상도도사 등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평생 학문만을 탐구하였다. 교유 인물로는 이진상·정삼석·김진우·곽종석·허훈 등이 있는데, 이들과는 학파를 이루어 학문적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