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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알렉세예프 / E. И. Алексеев [정치·법제/외교]
1843-1918.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관. 러일전쟁 당시 극동총독.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관 소장 알렉세예프는 1895년 7월 25일 서울에 도착했고, 7월 28일 고종을 알현하였다. 알렉세예프는 1899년 8월 관동주 총독 겸 사령관, 태평양 함대 사령관에
알렌 / H. N. Allen [정치·법제/외교]
1858-1932. 의사. 미국 선교사. 주한 미국공사. 1884년 9월 20일 주한 미국공사관의 의사로 파견되어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1890년 7월 주한 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되어 주한 미국공사 실의 부재 기간에는 임시 대리공사를 맡아 외교업무를 수행하였다. 고
애비슨 / Oliver, R. Avison [정치·법제/외교]
1860-1956. 미국인. 고종 어의. 연희전문 교장. 선교사 언더우드의 형향을 받아 한국 선교를 지원하였다. 1893년 부산을 경유하여 11월 1일부터 제중원 의사로 일하였다. 1906년 4월 28일 고종은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와 애비슨에게 훈4등을 특서하고 태극장
애스톤 / Aston, William George [정치·법제/외교]
1841-1911. 19세기 영국 외교관. 일본 한국학자. 1875년 일본 주재 영국공사관의 일본어 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 1883년 3월 조선으로 파견하였다. 1883년 11월 전권공사로 임명된 파크스와 함께 조선으로 파견되어서 조약 교섭과정에 통역으로 참여하였다.
야나기하라 사키미쓰 / 柳原前光 [정치·법제/외교]
1850-1894. 일본 외교관. 정한론을 지지함. 1867년 2월 국사조필어용괘. 참여조역이 되어서 처음으로 국사에 참여하였다. 1870년 7월에 외무권대승이 되었다. 1870년 7월 정한론을 지지하였다. 1871년 4월 4일 전권대사 대장경 다테 무네나리를 수행해서
야마가타 아리토모 / 山縣有朋 [정치·법제/외교]
1838-1922. 근대 일본의 정치가. 군인. 조선문제에 관한 로바노프-야마가타 협정 체결을 주도함. 1873년 육군경, 1878년 참모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883년 내무경, 1885년 제1차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내무대신이 되었다. 1884년 백작 작위를 받
야마자 엔지로 / 山座圓次郞 [정치·법제/외교]
1866-1914. 일본 외교관. 외무성 정무국장. 주한 일본공사관 서기관. 1894년 야마자는 부산영사 대리로 조선에 왔다. 1895년 3월 영사대리로 인천에서 근무하였다. 1899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서울 주재를 명 받았다. 1901년 야마자는 외무성 정무국장으로
양기탁 / 梁起鐸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언론인(1871∼1938).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대한협동회를 조직하였다.《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하고 독립운동에 힘썼다. 상해로 가서 광복운동에 종사하였다. 임시정부 국무령에 추대되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양대박 / 梁大樸 [종교·철학/유학]
1544(중종 3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의병장.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학관으로서 아들 경우와 가동 50명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 해 6월 고경명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고경명을 맹주로 추대하고 유학 유팽로와 함께 종사관으로 활약
양사언 / 楊士彦 [종교·철학/유학]
1517년(중종 12)∼1584년(선조 17). 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희수 아들이다. 형 사준, 아우 사기와 함께 글에 뛰어나 중국의 삼소에 견주어졌다. 아들 만고도 문장과 서예로 이름이 전한다.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 함흥, 평창, 강릉,
양우규 / 梁禹圭 [종교·철학/유학]
1629년(인조 7)∼1714년(숙종 40).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양산욱, 조부는 양효용이다. 부친 양지남과 모친 성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향신의 딸이다. 김성로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후원에 커다란 살구나무 아래 누워 지내면서 ‘
양윤식 / 楊潤植 [정치·법제/법제·행정]
1902년∼1977년. 법률가. 호는 일청(一靑), 본관은 청주(淸州), 서울 출신이다. 1924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변호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광주학생사건에 관련된 사람들과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
양응수 / 楊應秀 [종교·철학/유학]
1700년(숙종 26)∼1767년(영조 43).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양처기와 모친 최휴지의 딸이다. 권집의 문하에서 수학, 중년에는 이재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일찍이 벼슬길을 버리고 오로지 경학과 성리학에 전념하여〈사서강설〉을 남겼으며, 천문학에도 밝아〈혼
양응정 / 梁應鼎 [종교·철학/유학]
1519(중종 14)∼1581(선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담 증손, 할아버지는 이하, 아버지는 팽손, 어머니는 김화의 딸이다. 응태의 아우이다.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공조좌랑, 진주목사, 공조참판,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양재홍 / 梁在鴻 [역사/근대사]
1881-미상.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정동근(鄭東根)·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
양전백 / 梁甸伯 [역사/근대사]
1869∼193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격헌(格軒), 평안북도 선천 출신이다. 26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897년 예수교장로회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선천 북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하였다. 1919
양제안 / 梁濟安 [역사/근대사]
1860-1929. 의병장·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도(碧濤).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76년(고종 13) 병인양요 때 격문을 만들어 척양척왜를 주장하였으며, 1894년 충청북도 진천에 의병총본영을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 훈련시켜, 1895년 이기찬(
양주동 / 梁柱東 [문학]
1903-1977 국문학자.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되었다. 카프문학운동에 맞서 국민문학운동을 전개, 신라 향가를 연구 국어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45년 동국대 교수,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 1958년 연세대
양주삼 / 梁柱三 [종교·철학/개신교]
1879-미상. 목사·사회사업가. 평안남도 용강 출신. 20세에 기독교에 입교하고 상경, 양잠전습소(養蠶專習所)에 다니던 중 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외국유학길에 올랐다.1901년 상해(上海) 중시학원(中西學院)에 입학하여 감리교세례를 받았으며, 1905년 이 학교를
양준명 / 梁濬明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12년 데라우치(寺內正毅)조선총독암살사건 연루 혐의로 일본경찰에 잡혀 1심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19년 2월 신성중학교(新星中學校)교사 때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로 교회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