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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임성주 / 任聖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11∼1788). 이재의 문인이다. 1750년 세자익위사세마가 되고 시직에 승진하였으나 곧 사직하고, 1758년 공주의 녹문에 은거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한 뒤 동궁을 보도하고 지방관을 지내다가 다시 녹문에 은거하여 학문연구로 여생을 보냈
임성칠 / 林成七 [역사/근대사]
1901-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중국 만주(滿洲)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이다. 중국 연길현에 있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도중에 탈출을 시도하여 성공하였으나, 연길현 모루구(母樓溝)에
임소반국 / 臨素半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의 소국.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의 한전(韓傳)에는 우리 나라 고대의 삼한의 여러 소국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름의 한자표기는 본디 우리말의 이름을 당시 중국음에 의하여 표기한 것이다. 임소반국의 ‘임(臨)’자는
임수간 / 任守幹 [종교·철학/유학]
1665(현종 6)∼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선백 증손, 할아버지는 중, 아버지는 상원, 어머니는 정식의 딸이다. 1694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 정언,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돈와유집』이 있다.
임수명 / 任壽命 [역사/근대사]
1894-1924년. 여성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진천 출신. 1912년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할 때 일본경찰에 쫓겨 환자로 가장하여 입원하고 있던 신팔균(申八均)과 1914년 결혼하였다. 그뒤 신팔균과 함께 만주에서 비밀문서의 전달, 군자금의 모금, 독립군후원 등에 힘
임수명 / 林守明 [역사/근대사]
1897-197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임경(林鏡)·임작주(林作柱)이다. 본적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전라남도 여수(麗水)이다. 조부는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최익현(崔益鉉)의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임병찬(林炳瓚)이고, 부친
임숙영 / 任叔英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열의 증손, 할아버지는 숭로, 아버지는 기, 어머니는 정유일의 딸이다. 승문원정자, 박사를 거쳐 주서, 예문관검열과, 부수찬, 지평을 역임하였다. 그가 지은「통군정서」는 중국학자들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고
임승복 / 林勝福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일제 강점기 극작가. 필명은 임선규(林仙圭)이고, 개명한 이름은 임중랑(林中郞)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관동리(官洞里)이다. 부인은 여배우 문예봉(文藝峰)이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공립강경상업학교 3학년을 수료한 뒤, 1931
임시제실유급국유재산조사국 / 臨時帝室有及國有財産調査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제실재산(帝室財産)과 국유재산을 분할, 조사할 목적으로 임시로 설치된 관청. 내각총리대신이 감독하여 제실유재산 및 국유재산을 조사하고, 그 소속을 판정하며 정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1907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궁내부 관리의 재산을 제실재산과 국유재산으로
임실향교 / 任實鄕校 [교육/교육]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에 있는 향교. 1413년(태종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일부 소실되었다가 1854년(철종 5)김성근(金性根) 등이 대성전을 중수하고, 1869년(고종 6)
임씨삼대록 / 林氏三大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필사본. 40권 40책과 39권 39책의 2종이 있다. 임씨집안의 6남매가 각각 배우자와 결연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성현공숙렬기(聖賢公淑烈記)」에서 주인공이었던 임희린이 거듭 등장하면서, 그
임야조사사업 / 林野調査事業 [역사/근대사]
1908년에는 '삼림법'을 제정, 공포하여 국유·민유의 구분에 의하여 대부분의 임야를 국유림화 한 사업. 1911년에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창출된 국유림을 보다 효과적으로 정리, 경영하기 위한 조처로서 '삼림령'을 발포하였다. '조선임야조사사업보고'의 실질적인 목적은
임영 / 林泳 [정치·법제/법제·행정]
1649(인조 27)∼1696(숙종 22).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군수 일유, 어머니는 임천조씨로 석형의 딸이다. 이단상ㆍ박세채의 문인이다. 1665년(현종 6) 사마시에 장원하였고, 1671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에 뽑혔다. 대표적인 관직으로는 대사
임영신 / 任永信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여성 지도자·정치가(1899∼1977).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에 관여하였다. 이후 1948년 상공부장관, 1950년 민의원, 1953년 중앙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 《My Forty Years Fight For Korea》가 있다.
임예환 / 林禮煥 [역사/근대사]
1865-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연암(淵菴).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3월 1일 손병희·오세창 등과 함께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한 뒤 검거되었다. 출옥 후에도 계속 항일운동을 하였다.
임오교변 / 壬午敎變 [역사/근대사]
만주에서 일본경찰이 대종교 간부를 박해한 사건. 1942년 11월 19일 만주 영안현 동경성에서 일본경찰이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하여 사건을 날조, 교주 이하 간부 모두를 검거하여 박해를 가한 사건으로 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한다.
임오군란 / 壬午軍亂 [정치·법제/정치]
1882년 6월 9일 훈국병(訓局兵)들의 군료분쟁(軍料紛爭)에서 발단해 고종 친정 이후 실각한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 정변. 군민의 불평은 대원군과 연결되어 민씨 및 일본 세력의 배척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군민은 대원군의 밀명에 따라 영돈령부사 이최응 등을 살해하고,
임오군란기 / 壬午軍亂記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실기소설. 1930년에 덕흥서림(德興書林)에서 간행한 바 있다. 「임오군란기」는 임오군란의 전말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실기체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임오군란의 시말을 흥미 본위로 기술한 것이다. 말미에서 “임오군란이 대원군의 진무(鎭撫)
임오동조탄일진표리치사전문홀기 / 壬午東朝誕日進表裏致詞箋文笏記 [정치·법제]
익종(翼宗)의 비이자 헌종(憲宗)의 어머니인 신정왕후의 생일을 맞이하여 치사를 올리고 전문과 표리를 올리는 의식 과정을 기록한 홀기. 1882년(고종 19) 11월 13일부터 12월 초6일까지 준비하는 과정을 일기식으로 기록하였는데, 문서명은 홀기이지만 사실상 의주(儀
임용련 / 任用璉 [예술·체육/영화]
1901-미상. 양화가. 일명 임파(任波).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중국으로 탈출, 한때 난징(南京)의 금릉대학(金陵大學)에 다녔다. 1922년 중국인을 가장한 ‘임파’라는 이름의 중국여권으로 미국에 건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