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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년 / 任大年 [종교·철학/유학]
?∼1695 조선후기 문신. 임백영 현손이다. 집안의 의장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도와주었으며, 흉년이 든 해에는 자기의 전토를 팔아서 이웃과 마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숫자가 수천 명이었다고 한다. 상신 이단하가 인재로 조정에 아뢰어 경양찰방을
임대주택 / 賃貸住宅 [사회/촌락]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 사업자가 건축하여 일정한 임대료를 받고 거주자에게 빌려주는 주택. 우리나라 최초의 임대주택은 1962년 대한주택공사에 의해 건설·공급된 마포구 도화동의 소형 아파트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72년에는 정부가 미분양된 개봉동 주공아파
임도 / 臨道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통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도림현(道臨縣, 또는 助乙浦)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임도로 고쳐 금양군(金壤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현종 때통천의 속현으로 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직촌(直村)이 되었다. 지형은 태백산맥의 찰파현(察破峴) 부근
임동광산 / 林洞鑛山 [경제·산업/산업]
함경북도 길주군 장백면 임동에 있는 운모광산. 이 광산에서 생산되는 운모는 금운모로 백운모에 비하여 열에 대한 안정성이 높아 질이 좋으며 매장량도 풍부하다. 1908년에 포수광산과 함께 발견되었으며, 1909년부터 채굴에 착수하였다. 1910년에 일한운모회사가 설립되면
임득연 / 林得淵 [역사/근대사]
1896-195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安東) 임하(臨河)이다.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유북실(柳北實)·임춘섭(林春燮)·임범섭(林範燮)·임찬일(林燦逸)·김원진(金源鎭)·임동숙(林東淑)·임윤익(林潤益)·박유석(朴有石
임명천 / 臨溟川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학성군 학서면의 산간에서 발원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류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 길이 42㎞. 산간을 동류하다 세천동부근에서 유로를 동남쪽으로 돌리면서 곡저평야를 만들고, 학중면으로 나오면서 넓은 평야를 만든다. 남쪽의 갈파천(葛坡川)이 동류하여 나오면서
임방 / 任埅 [종교·철학/유학]
1640(인조 18)∼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영로 증손, 할아버지는 연, 아버지는 의백, 어머니는 김상의 딸이다. 송시열과 송준길의 문인이다. 1701년(숙종 2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장령·승지·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논어취분』·『사가할영』·『
임백경 / 任百經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0∼1864). 임조용 증손, 할아버지는 임희직, 아버지는 임존상, 어머니는 남속의 딸이다. 1827년(순조 27)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이후 형조판서·비변사당상 등을 역임했다. 1856년(철종 7)에는 동지사로 청나라를 다녀오기도 했다. 저서로
임백윤 / 任白允 [역사/근대사]
188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廣州) 도척(都尺)이다. 1907년(융희 1) 7월 24일 일제에 의해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의병 봉기가 일어났는데, 같은 해 8월 의병을 일으켰던 임옥여(任玉
임벽당김씨 / 林碧堂金氏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임벽당집』을 저술한 시인. 본관은 의성(義城). 별좌(別座) 김수천(金壽千)의 딸이며, 기묘사화 때 고향인 한산(韓山)으로 돌아가 은거한 유여주(兪汝舟)의 계실이다. 시집으로 『임벽당집』이 규장각과 일본인 다카하시[高橋亨]에게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
임병국 / 任秉國 [역사/근대사]
1882-1957. 한말의 의병장. 이명은 민호(珉鎬). 전라남도 보성 출신. 서민출신의 의병장이 출현한 후기 의병운동의 중심지였던 보성에서 안규홍의진에 참가하여 좌우익부장(左右翼副將)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2월 이후 파청대첩(巴靑大捷)·진산대첩(眞山大捷)·원봉산
임병극 / 林炳極 [역사/근대사]
188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도이다. 1917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9년 북간도 대한국민회 군사령부 제2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지나혁명단을 조직하고 병기류 구입에 힘썼다. 1921년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피복과장을
임병주 / 林炳周 [종교·철학/유학]
1872-1943년.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경량(卿亮)이고, 호는 경재(敬齋)이다. 본관은 평택(平澤)이다. 아버지는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 임노련(林魯連)이고, 어머니는 풍천노씨(豊川盧氏) 노석윤(盧錫允)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7세에 글을 읽기 시작하였
임병직 / 林炳稷 [역사/근대사]
1893-1976.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소죽(小竹). 충청남도 부여 출생. 1913년 이승만(李承晩)의 알선으로 미국 오하이오 디킨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재학중 《한국학생평론》을 창간하고 그 편집장이 되어 일제의 한국 강점을 폭로하면서 세계자유 우방에게 독립지원을
임병찬 / 林炳瓚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의 의병(1851∼1916). 독립의군부를 전국 조직으로 확대하여 대한독립의군부로 만들었다. 전국적인 의병운동을 계획하였다. 일제에 의하여 체포되어 거문도로 유배되어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돈헌문집》이 있다.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임봉주 / 林鳳柱 [역사/근대사]
1875-1921년. 독립운동가. 일명 세규(世圭). 경상북도 영주 출신. 1915년 풍기의 광복단과 대구의 조선국권회복단을 통합하여 조직된 대한광복회에 가담하였다. 1916년 권상석(權相錫)·우재룡(禹在龍) 등과 함께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하려다 실패하고,
임성구 / 林聖九 [예술·체육/연극]
1887-1921년. 신파극(新派劇)초창기의 연극인. 서울 출생. 어려서 서당에 다녔을 뿐,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20세 때에 일본공사관이 있던 남산의 종현성당(鐘峴聖堂)뒷문 근처에 살면서 때마침 그곳의 일본인 극장에서 공연되던 신파극이나 가부키(歌
임성남 / 林聖男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국립무용단 초대단장, 국립발레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안무가, 발레교육자.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하여 4학년 때 전주 도립극장에서 있었던 한동인(韓東人) 발레단의 공연을 보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1947년 4월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인 발레단의 공연
임성우 / 林成雨 [역사/근대사]
1889-197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미국 하와이이다. 1914년 6월 하와이에서 박용만(朴容萬)이 창설한 국민군단(國民軍團) 훈련대소대 참위로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하와이에서 조직된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에 오운
임성원 / 林聲遠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우원집』을 저술한 시인. 숙종연간에 여항시인(閭巷詩人)으로 활동하였던 녹사중부주부(錄事中部主簿) 임춘양(林春養)의 증손이다. 중인출신으로 관직을 가지지 못하였으며, 집이 가난하여 실컷 먹고 취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였으나 생업에는 힘쓰지 않고 시인으로 자오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