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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심풍지 / 沈豊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8∼1793). 1771년(영조 47)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기용되었으며, 병조정랑·부수찬 겸 시강원문학 등을 거쳤다. 이후 수찬·교리·대사성·이조참판·대사간·대사성·대사헌·도승지·예조참판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심훈 / 沈熏 [문학]
1901년∼1936년. 소설가·시인·영화인. 1923년 귀국하여 연극·영화·소설집필 등에 몰두하였다. 1925년 조일제 번안의〈장한몽〉이 영화화될 때 이수일역으로 출연, 1926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 연재하기도 하였다. 1933년 장편 〈
심희수 / 沈喜壽 [종교·철학/유학]
1548(명종 3)∼1622(광해군 14). 조선 중기의 문신. 순문 증손, 할아버지는 봉원, 아버지는 건이다. 어머니는 이연경의 딸이다. 1572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헌납, 대사헌, 예문관제학, 이조판서, 대제학, 우찬성,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아오키 슈조 / 靑木周藏 [정치·법제/외교]
1844-1914. 일본 메이지 시대의 외교관. 야마가타 내각의 외무대신. 1873년 기도 다카요시의 추천으로 외무성 1등 서기고나이 되었다. 1874년에는 초대 독일공사가 되었다. 1886년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외무차관이 되었고, 이듬해 자작 작위를 받았다. 189
안경수 / 安駉壽 [정치·법제/정치]
조선 말기의 관료·정치가(1853∼1900). 주일 한국 외교관. 고종폐위사건연루. 개화에 일찍 눈을 뜨고 일본을 오갔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서 주일공사 민영준의 통역을 도왔다. 김홍집 내각의 탁지부협판 등을 지내며 갑오개혁을 추진하였다. 후에 황제양위 미수사건 등
안극함 / 安克諴 [종교·철학/유학]
?∼1641(인조 19).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준이다. 1625년(인조 3) 무과에 급제,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이립과 함께 용천의 소위포에서 후금군의 배후를 위협하는 의병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1641년 최효일·차예량 등과 병자호란의
안달삼 / 安達三 [종교·철학/유학]
1837년(헌종 3)∼미상. 조선 말기 유학자. 매계 이한진을 사사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는 초시에 합격하였다. 당시 제주에 유배 온 면암 최익현과 교유하면서 도덕과 학문을 겸비한 선비로 칭찬을 받았다. 노사 기정진을 사사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장성으로 이사하
안로 / 安輅 [역사/조선시대사]
1635년(인조 13)∼1698년(숙종 24). 자는 성거(聖車),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한엽(韓曄)에게 수학하였다. 일찍이 병자난과 정묘난을 겪은 후 세사(世事)에 관심을 끊고 산림(山林)에 들어가 수신(修身)하였다.
안명근 / 安明根 [정치·법제/정치]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중근의 사촌 동생. 안중근의 감화를 받고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 이승훈·김구 등 신민회 계통의 인사들과 교유하였다. 북간도에 양병학교 설립 계획을 세웠다. 민모가 재령헌병대에 밀고하여 이해 12월 평양에서 붙잡혔다. 그는 10년
안명하 / 安命夏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은사(1682∼1752).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성리학과 예학에 전념하였다. 이황의 학통을 이었으며 저서로《배운록》·《송와집》등이 있다.
안문개 / 安文凱 [종교·철학/유학]
?∼1338(충숙왕 복위 7). 고려 후기의 문신. 1321년(충숙왕 8)에 좌대언이 되었다. 왕을 따라 귀국한 뒤에 첨의참리가 되었고, 1327년(충숙왕 14)에는 왕이 원나라에 있었을 때 충절을 바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으며 순흥부원군의 호를 받았다.1338년 찬
안민학 / 安敏學 [종교·철학/유학]
1542(중종 37)∼1601(선조 34).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아버지는 담이다. 1580년(선조 13)에 이이의 추천으로 희릉참봉이 되었다. 1583년에 사헌부감찰이 된 뒤, 관례에 따라 외직으로 나아가 대흥·아산·현풍·태인 등지의 현감을 두루 거치고, 전주의
안방준 / 安邦俊 [종교·철학/유학]
1573(선조 6)∼1654(효종 5).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중관, 처는 정승복의 딸이다. 중돈에게 입양되었다. 박광전·박종정에게서 수학, 1591년(선조 24) 파산에 가서 성혼의 문인이 되었다. 지평,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편저로 ≪항의신편≫·≪이대
안병찬 / 安秉瓚 [역사/근대사]
1854-1921.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 법부(法部) 주사로 을사오적을 죽일 것과 나라를 바로잡을 것을 국왕에게 상소하였으나 오히려 경찰에 구속되었다. 1909년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의 중심인물 이용구(
안서우 / 安瑞羽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양기재유고』, 『양기재산고』 등을 저술한 학자. 1694년(숙종 20) 문과에 급제하였고, 성묘종사사건(聖廟從祀事件)에 연루되어 30년간 낙척(落拓)하였으며, 태안군수·울산부사를 지낸 뒤에는 무주에 살면서 산수승경을 즐기며 은거생활을 하였다. 작품으로 연시
안석경 / 安錫儆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삽교집』, 『삽교만록』 등을 저술한 학자. 아버지는 안중관(安重觀)이다. 안중관은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으로 이병연(李秉淵)·민우수(閔遇洙) 등 당시 노론계 인사 및 홍세태(洪世泰) 같은 중인 출신 시인과도 교유한 노론계 학자였다. 1752년(영조 28) 아
안세갑 / 安世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3∼1763). 1725년(영조 1) 영조 즉위로 노론이 세력을 잡자, 신임사화 때 노론을 배척한 소론 이광좌·조태억 등이 아직 조정에 있음을 보고 이를 논척하다가 투옥되었으며 곧 풀려나왔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평정되자 선전관으로 임명되
안연석 / 安鍊石 [종교·철학/유학]
1662(현종 3)∼1730(영조 6). 조선 후기의 문신. 경엄의 증손, 할아버지는 헌, 아버지는 중현, 어머니는 장영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경연관이 되어 임금에게 진강 중 민폐를 진언하고 이의 구제책을 주청하였다. 어사 박문수의
안음 / 安崟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22∼1673). 조선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후지, 어머니는 성문준의 딸이다. 김집과 송준길에게서 수학하였다.1650년(효종 1)에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주부, 감찰, 예조·형조의 좌랑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60년을 전후하여 노
안익태 / 安益泰 [예술·체육/현대음악]
1906년∼1965년. 지휘자·작곡가. 평양출생. 1932년 미국 신시내티음악학교로 유학, 신시내티교향악단의 첼로주자로 입단하여 동양인 최초의 주자가 되었다. 1934년 유럽으로 가서 독일·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지휘 및 작곡을 수업, 헝가리 등지에도 여행하고 수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