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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김경남 / 金景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거문고 삼절(三絶)의 한 사람. 한말 거문고의 대가인 김경남·함재운(咸在韻)·이병문(李炳文)을 거문고 삼절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김경남은 가곡반주, 함재운은 〈여민락 與民樂〉, 이병문은 〈영산회상 靈山會相〉에 뛰어났다. 그의 유보(遺譜)인 《금보 琴譜
김경복시장 / 金慶福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무신 김경복(金慶福)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910년(융희 4) 김춘희(金春熙)가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에서는 김경복의 충절을 송나라의 충신 악비에 견주어 찬양하였다. 1910년 8월 김경복에게 '장의(壯毅)'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김경선 / 金慶先 [역사/근대사]
1862-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 서부(西部; 현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이다. 1907년(융희 1) 일본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군인들이 대거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무력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경기도 포천(抱川)에 위치한
김경식 / 金景軾 [역사/근대사]
1870-1940.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한학(漢學)을 공부하다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의 증산교가 흩어진 이후 그 신도였던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세운 증산교 계열의 보천교(普天敎)에 입교(入敎)하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역시
김경천 / 金景天 [역사/근대사]
1888-193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이다. 1913년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리에 김사횡(金仕宖)이 설립한 중화학원(中和學院)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항일의식을 배양시켰다. 1919년
김경태 / 金敬泰 [역사/근대사]
187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김경희 / 金慶熙 [역사/근대사]
1896-195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장환(金章煥)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하다가 쫓기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는 백부 김시우(金時宇
김계선 / 金桂善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대금 명인(1891-1943). 호는 죽농(竹濃). 젓대의 명인이었던 최학봉(崔鶴鳳)을 사사하고 이왕직(李王職) 세악내취(細樂內吹)·이왕직 아악수 등으로 활동하였다.
김계환 / 金啓煥 [역사/근대사]
1909-1930. 일제 강점기 노동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환(金桂煥)이다. 출신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복귀면(福貴面)이다. 1930년 삼림정책의 방향 제시 및 삼림자원 약탈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조직된 삼림조합(森林組合)에 의해 과다한 조합비가 부과되자
김공실 / 金貢實 [역사/근대사]
1871-1930.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의 의병. 1907년(융희 1) 9월 이석용(李錫庸)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그는 동지 20명을 규합하여 이석용 의병 대장의 진영에 입대하였다. 도로부장(道路副將)으로 임명되어 활약하면서, 전라북도 장수(長水), 진안(鎭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