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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 / 李人稙 [문학/현대문학]
1862-1916. 신소설작가, 언론인, 신극운동가. <국민신보>, <만세보> 주필, <대한신문>을 창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언문일치 신소설 작가로 <혈의 누>를 발표, 신연극운동의 선구자로 <은세계>를 원각사 무대에 올렸다. 작품 <귀의 성>, <치악산> 등이
이인철증시문서 / 李寅轍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 궁내부특진관 이인철(李寅轍)에게 '효헌(孝憲)'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자혜애친왈효 행선가기왈헌'이라 적어 효헌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6일 순종은 57명에게 시호를 내렸다.
이인행 / 李仁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8∼1833). 1790년(정조 14)에 응제대책으로 온릉참봉에 발탁되었고, 벼슬이 세자익위사익위에 이르렀다. 서연에 입시·진강하여 동료들로부터 진강관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저서로는《신야문집》이 있다.
이인혁 / 李寅爀 [종교·철학/유학]
1634년(인조 12)∼1710년(숙종 36). 조부는 이시발, 부친은 이경휘이다.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직으로 공조좌랑에 제수되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된 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94년(숙종 20)
이인환 / 李寅煥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699(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대건 증손, 할아버지는 시발, 아버지는 경휘, 어머니는 심대복의 딸이다. 166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정언·수찬 등을 지냈다. 지평·부수찬을 거쳐 1675년(숙종 1) 암행어사가 되었으며,
이일 / 李鎰 [종교·철학/유학]
1538(중종 33)∼1601(선조 34). 조선 중기의 문신.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해 경성판관 등을 거쳐 1583년(선조 16) 전라좌수사·경원부사를 지냈다. 지중추부사, 비변사당상, 훈련원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증보제승방략』이 있다.
이일영 / 李一榮 [종교·철학/유학]
1773∼1833. 조선후기의 문신. 부친은 이집두, 어머니는 권세모의 딸이다. 1805년 명릉참봉에 임명된 이후의 관력을 서술하고, 평소 박식하고 재능이 출중하였음을 강조했다.
이자 / 李耔 [종교·철학/유학]
1480(성종 11)∼1533(중종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색의 후손, 이예견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해 사헌부감찰을 지냈다.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뒤 이조좌랑, 의성현령을 역임하였다. 1519년
이자성리서 / 李子性理書 [종교·철학/유학]
유가류(儒家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 판종은 필사본(筆寫本)이다. 규격은 27.7×17.3cm이다. 표제는 이자성리서(李子性理書)이다. 조선시대 이이(李珥)가 쓴 책이다. 서문(序文)은 이도중(李度中), 발문(跋文)은 박기직(朴基稷)이 지었다
이잠 / 李潛 [역사/조선시대사]
1561(명종 16)∼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무신. 보 7대손, 태빈의 아들이다. 무과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의 막료로 있었는데, 적개의병장 변사정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청하자 부장이 되었다. 신상필벌을 강화하고 사졸과 고
이장곤 / 李長坤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신지 증손, 할아버지는 호겸, 아버지는 승언, 어머니는 이래의 딸이다.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 1502년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교리,
이장백전 / 李長白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한문 필사본. 책 표지에는 ‘丁香傳(정향전)’이라 쓰고 ‘附李長白傳(부이장백전)’이라 기록하고 있다. 안에는 「일석화(一夕話)」·「정향전(丁香傳)」·「이장백전(李長白傳)」이 합철되어 있다. 『조선학보(朝鮮學報)』 90집에 전권을 영인으로 소
이장장가 / 李璋長歌 [문학/고전시가]
1532년에 이장(李璋)이 조정의 신하들을 비방하여 지은 시가 작품. 『중종실록』 권74, ‘28년 3월’ 기사 등에 실린 「이장장가」는 다음과 같다(기사별로 표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괄호 속은 차자표기를 성호경이 당시의 한국어로 옮긴 것임). “鄭光弼 細筆奴(
이재 / 李栽 [종교·철학/유학]
1657(효종 8)∼1730(영조 6).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현일, 어머니는 박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 휘일과 숭일에게 배웠다. 1700년(숙종 26) 유배에서 풀려나자 안동군 금수에서 살았다. 벼슬은 주부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하
이재 / 李梓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57(효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해수 증손, 할아버지는 권, 아버지는 성신, 어머니는 권질의 딸이다. 163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예문관에 들어갔다. 1649년(효종 즉위년)에 호남지방의 암행어사를 거쳐 이듬해에 집의에 올
이재 / 李縡 [종교·철학/유학]
1680(숙종 6)∼1746(영조 22). 조선 후기의 문신. 유겸 증손, 할아버지는 숙, 아버지는 만창, 어머니는 민유중의 딸이다. 김창협의 문인이다. 1702년(숙종 28)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가주서·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예문관검열, 형조참의, 병조참의, 동
이재간 / 李在簡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3∼1789). 벼슬은 교리·헌납·부수찬·사간·응교·필선 등을 역임하여 주로 언관 계통의 관리로서 활약하였다. 정조 즉위 후 이조참의·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으며, 양전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1789년 흉언사건에 연루되어 반역죄로 처형당하
이재관 / 李在寬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화가(1783∼1837). 화원으로 태조의 어진을 모사해 등산첨사가 되었다. 화조·초충·물고기·구름은 물론 초상화에 특히 뛰어났다. 영모화는 일본에서도 유명했다. 대표작〈송하처사〉·〈미인사서도〉·〈월하신선도〉·〈총석정〉등이 있다.
이재난고 / 頤齋亂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 황윤석의 유고. 50책 6,000장. 황윤석은 다산정약용보다 1세대쯤 앞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1829년(순조 29)에 후손 수찬과 당시의 전라도관찰사 조인영에 의하여 간행된 ≪이재유고≫ 12권 7책과 이 유고가 간행된 지 114년 뒤인 1
이재면 / 李載冕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의 정치가(1845∼1912). 흥선대원군의 장남, 고종의 형이다. 임오군란 때 무위대장으로서 사태수습에 힘쓴 후 호조판서·지삼군부사·훈련대장 등을 겸했다. 흥선대원군의 재집정한 후 제1차 김홍집내각 때 궁내부대신을 지냈다. 흥친왕에 책봉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