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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이운영 / 李運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94). 1759년(영조 3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저서로《옥국재유고》가 있다.
이원광산 / 利原鑛山 [경제·산업/산업]
함경남도 이원군 차호읍 창흥리에 있는 철광산. 1917년에 자본금 100만원으로 회사가 설립되었고, 1918년부터 철광석의 채굴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적철광(赤鐵鑛)이 산굴되며 함철품위(含鐵品位)가 45∼60%로 우수한 철광산이다. 철산이 해안에서 불과 2㎞밖에 떨어지
이원구석 / 利原球石 [지리/자연지리]
함경남도 이원군 나흥노동자구에 있는 자갈. 이원구석은 나홍만기슭에 길이 800m, 너비30m에 활등처럼 생긴 구역에 분포한다. 나홍만어구의 양쪽에는 바다기슭을 따라 상부원생대 작현통의 굳은 규암층으로 된 수십미터의 낭떠러지가 있다. 상부원생대에 형성된 규암이 나흥 앞바
이원군 / 利原郡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동북부에 위치한 군. 동·남쪽은 동해, 서쪽은 북청군, 북쪽은 단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26′∼128°47′, 북위 40°11′∼40°26′에 위치하며, 면적 447㎢, 인구 6만 4457명(1943년 현재)이다. 1개 읍 3개 면 78개 이로 되어
이원록 / 李元祿 [종교·철학/유학]
1514(중종 9)∼1574(선조 7). 조선 중기의 문신. 추의 증손, 할아버지는 의무, 아버지는 행, 어머니는 이조의 딸이다. 이조정랑으로 재직 중 을사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림이 화를 입자, 당시 권신이던 숙부 이기를 비판하고 이황·정황 등 많은 선비들을 구하였다.
이원만 / 利原灣 [지리/자연지리]
함경남도 이원군 이원면과 차호읍 사이에 있는 만. 함경선이 만안(灣岸)을 따라 달리며 남대천이 만으로 흘러든다. 만의 연안에는 함경산맥의 여맥이 뻗어 있어, 취덕산(鷲德山, 1,001m)·마운령(摩雲嶺)·대덕산(大德山, 1,462m)·궐령(蕨嶺) 등의 산지가 높이 솟아
이원배 / 李元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45∼1802). 이재형의 문인으로 경학에 밝아 정조로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조정으로부터 여러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문집으로《구암집》이 있다.
이원용 / 李源容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 초대이사, 전조선야구대회 심판으로 활동한 체육인. 생몰년 미상. 오성학교(五星學校)와 중앙기독청년회 영어반을 졸업한 야구인으로 오성학교 시절부터 야구선수로서 활약하였다. 1917년 봄에 오성학교와 중앙기독청년회 출신의 야구선수들과 함께 고려야구구락
이원익 / 李元翼 [종교·철학/유학]
1547(명종 2)∼1634(인조 12). 조선 중기의 문신. 정은 증손, 할아버지는 표, 아버지는 억재, 어머니는 정치의 딸이다. 강서·조충남 등과 교유하였다. 키작은 재상으로 널리 불렸다. 1569년(선조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이듬해 승문원권지부정자로
이원익선생영정 / 李元翼先生影幀 [예술·체육/회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원익의 영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이원익은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1573년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575년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1
이원조 / 李源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2∼1872).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정언·경주부윤·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사족들의 사치를 비판하고 백성들의 거듭된 흉년에 의한 어려움을 극간하였다.
이원진 / 李元鎭 [종교·철학/유학]
1594(선조 27)∼1665(현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우인 증손, 할아버지는 상의, 아버지는 지완, 어머니는 이결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 등과 함께 귀양갔다가 인조반정 후 풀려났다. 1630년(인조
이원향교 / 利原鄕校 [교육]
함경남도 이원군 이원면 교동리에 있는 향교. 438년(세종 2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향선동에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599년(선조 32)에 유생 김사영(金士詠)·강탁(姜濯)·강윤조(姜胤祖) 등이 동재
이원호 / 李元鎬 [종교·철학/유학]
1897년(광무 1)∼1930년 7월 21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단천군수와 면담하면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이 일로 김계환·김득수·김을룡·김응철·김창언·심정붕·안경룡·안길현·안병환·유경을·이선식·장종형·최두필·최종협·
이원회 / 李元會 [종교·철학/유학]
1827년(순조 27)∼미상. 조선 말기의 무관. 이기석의 아들이다. 무과출신으로 1864년(고종 1)부터 1868년까지 선전관·금위영천총, 승정원의 동부승지·좌부승지, 좌·우승지, 그리고 태안부사를 역임하였다. 1881년초 군계선함사차정참획관, 같은해 11월 군무사
이원휘 / 李源彙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이승간의 후손이다. 품행이 단정하고 효우가 돈독했다고 전한다. 학문에 뜻을 두고 성담 송환기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다. 학행이 뛰어났다. 스승 송환기가 죽자 그의 행장을 썼다.
이원희 / 李元熙 [종교·철학/유학]
미상∼1888년(고종 25). 조선 말기의 무신. 이익권 아들이다. 여러 무관직을 두루 역임한 뒤 1858년(철종 9)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이듬해 우포도대장 재직중 돈의문에서 발생한 괘서사건의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1869년 형조판서, 어영대장·
이위종 / 李瑋鍾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외교관·독립운동가(1887∼?). 1907년 고종의 밀사로 이준·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다 좌절, 만국기자협회에서 일본의 침략만행을 여론에 호소했다. 후에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
이유 / 李濡 [종교·철학/유학]
1645(인조 23)∼1721(경종1). 조선 후기의 문신. 여 후손, 후재 증손, 할아버지는 형, 아버지는 중휘, 어머니는 김광찬의 딸이다.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병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이유 / 李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36). 1719년(숙종 45) 증광시문과 병과급제 후 장연부사·강화유수·부제학·이조판서·형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725년《선조실록》 편찬과 각사 서리 폐단을 건의, 시정토록 하였다. 1736년 원접사로 발탁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