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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원봉 / 金元鳳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1898∼?).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폭탄제조법을 습득하는 등 일제와의 무장투쟁노선을 분명히 하여 6년여에 걸쳐 의열단 단장으로 대규모암살계획 및 경찰서·동양척식주식회사 등에 대한 폭탄투척사건 등을 배후에서 지휘 조종하였고, 1
김원행 / 金元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02∼1772). 1722년(경종 2) 신임사화 때 본가의 할아버지 김창집이 노론 4대신으로 사사되자 벼슬할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어머니 배소에 따라가《맹자》 ·《율곡집》·《우암집》등을 탐독하였다. 1725년(영조 1) 본가의
김위 / 金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09∼1788). 1750년(영조 26)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이조좌랑·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갈수헌문집》이 있다.
김유 / 金楺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19(숙종45).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극형, 아버지는 관찰사 징, 어머니는 이의길의 딸이다. 박세채·송시열의 문인이다. 1683년(숙종 9) 사마시에 합격, 경학으로 추천받아 창릉참봉에 등용되었으며, 정랑을 거쳐 1699년 증광문과에
김유경 / 金有慶 [종교·철학/유학]
1669(현종 10)∼1748(영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자진, 아버지는 진사 두징, 어머니는 윤필은의 딸이다. 1710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 대사간, 대사헌, 형조참판, 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김유기 / 金裕器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김천택(金天澤)이 그를 일러 “세상에 명창으로 이름이 알려졌다.”고 말한 바와 같이 당대를 대표하는 창곡의 명인이다. 자세한 전기는 알 수 없으며 기록들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박영돈본(朴永弴本) 『해동가요』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영언선(永
김유연 / 金有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9∼1887). 1844년(헌종 10) 증광문과에 급제, 초계문신에 발탁되었다. 이후 한성부판윤,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866년(고종 3) 함경도관찰사 시절 변경방비 및 국경통상 등의 문제를 처리하였다.
김유정 / 金裕貞 [문학]
항일기의 소설가(1908∼1937). 12세 때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 1929년에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였다. 1935년 단편소설《소낙비》가 조선일보,《노다지》가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김유하 / 金有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문교부 체육과 장학위원, 올림픽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함경남도 함흥 출생. 덴마크 체조를 국내에 소개한 신체조 및 여성체육운동의 선구자이다. 함흥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를 거쳐 일본 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54년에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김유희 / 金有喜 [종교·철학/유학]
1787년(정조 1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한익, 조부는 김항주, 부친은 김노창이다. 1819년(순조 19) 식년시에 진사 3등 35위로 입격하였다. 1820년(순조 20) 6월에 원릉참봉, 1821년(순조 21) 9월에 금부도사에 임명, 1822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