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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이등상강록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필사본. 낙질본. 이 작품은 앞부분이 전하지 않아 전체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남아 있는 부분만으로도 여러 면에서 「구운몽」과 비교할 수 있다.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유사점을 들어보면 불교적 색채가 짙다는 것, 한 남자와 여러 여자
이력서 / 履歷書 [정치·법제]
1908년(융희 9) 3월 주전원에서 관장하는 양화실 원역의 현황을 정리한 문서. 청색인찰공책지에 필사하였다. 제목은 이력서라고 기록되었으나 이력서라기보다는 현황을 정리한 명단 정도로 이해된다. 문서에 따르면 양화실 소속 원역으로는 간사 2인, 감관 4인, 고지기 4인
이로파 / 伊路波 [언어/언어/문자]
1492년(성종 23) 사역원(司譯院)에서 일본어학습을 위하여 간행한 왜학서(倭學書). 1책. 활자본. 모두 22장의 책인데, 장차(張次)는 처음 4장과 나중 18장이 따로 있다. 처음 4장에는 「이로파 사체 자모 각사십칠자(伊路波四體字母各四十七字)」라 하여 일본문자
이륙 / 李陸 [종교·철학/유학]
1438(세종 20)∼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문신. 강 증손, 할아버지는 원, 아버지는 지, 어머니는 정보의 딸이다. 1464년(세조 10) 춘방 문과에 장원 급제해 겸예문에 선발, 성균관직강이 되었다. 예문관응교, 장례원판결사, 공조참의, 병조참지, 형
이륜 / 李倫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1731(영조 7). 조선 후기의 종실. 할아버지는 선조, 아버지는 계, 어머니는 황이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1655년(효종 6) 종실시강에서 입격하여 가자되었고, 오랫동안 사옹원과 종부시를 주관하였다. 그 뒤 종친
이리 / 裡里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익산 지역에 있었던 지명.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서 소력지현(所力只縣)에 속하였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 옥야현(沃野縣)으로 고쳐져 금마군(金馬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초기에 전주에 소속되었고, 1176년(명종 6) 감무가 파견되
이린전 / 李麟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활자본. 필사본. 1916년동창서옥(東昌書屋)에서 발행한 활자본이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이린이 중국에 들어가 절세미인 두소저(杜小姐)를 얻고 과거에 급제하여 승상에까지 오른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에 들어가 입
이마 / 理馬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사복시에 소속된 잡직. ≪경국대전≫에는 명문화되지 않은 것 같다. 그 뒤 조선 후기에 오면 ≪속대전≫에 정원이 4인이고, 품계는 정6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대전통편≫과 ≪대전회통≫에 의하면 품계와 구성원에 차이를 두고 6품이 1인, 8품이 2인, 9
이만 / 李槾 [종교·철학/유학]
1669(현종 10)∼1734(영조 10).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융일, 어머니는 김초 딸이다. 작은아버지 현일에게 학문을 익히면서 권해·손덕승 등 당시의 대유들과 더불어 고경을 강론하였다. 일찍이 아버지와 형의 권유로 과장에 출입하여 향시에는 거듭 합격하였으나
이만각 / 李晩慤 [종교·철학/유학]
1815년(순조 15)∼1874년(고종 11). 조선 말기의 학자. 자는 근휴(謹休), 호는 신암(愼庵)‧암후(巖后),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일찍이 영리(榮利)의 뜻을 버리고 경전과 『주서절요(朱書節要)』를 깊이 연구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성리학에도 조예가
이만경 / 李晚景 [종교·철학/유학]
1691년(숙종 17)∼1776년(영조 52). 조선 후기 효자·의병. 아버지가 중풍이 걸렸을 때, 수 년간 불평 없이 시중을 들었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형을 도와 반란군을 막는 데 공을 세웠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앞장섰다.1
이만경본풀이 / 李萬頃─ [문학/구비문학]
제주도 무속의 조상본풀이의 하나.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성주이씨(星州李氏)집안에 계승되는 수호신의 내력담이다. 이 수호신은 만경령(萬頃令)벼슬을 지낸 조상이므로 이만경이라 일컫는 것이며, 벼슬을 지낸 조상의 내력담이므로 조상본풀이 중 홍부일월[紅牌日月]본풀이의 한가지가
이만도 / 李晩燾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842∼1910). 강화도조약체결에 반대하는 최익현을 지지하다 삭탈되었다. 을미사변 후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을사늑약 때 을사오적 처형을 상소하였다. 경술국치 후 단식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이만부 / 李萬敷 [종교·철학/유학]
1664(현종 5)∼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관징, 아버지는 옥, 어머니는 이동규의 딸이다. 1729년(영조 5) 학행으로 장릉참봉과 빙고별제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저서로는『식산문집』 20책 외에 『역통』3권,『대상편람』1권,『사서
이만손 / 李晩孫 [종교·철학/유학]
1811년(순조 11)∼1891년(고종 28). 조선 말기의 유학자. 이황의 후손이다. 1881년(고종 18)의 만인소의 소두였다. 전 참판 강진규·이만운, 전 승지 이만유 등 상주·안동 지방 유생들이 연서하여 1881년 2월 고종에게 올렸다. 이것이 <영남만인소>이다
이만수 / 李晩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2∼1820). 홍경래의 난 때 평안도관찰사로서 치안관리를 제대로 못한 죄를 물어 파직, 경주에 유배되었다. 후에 빈객·예조판서·수원유수 등을 지냈다. 글씨에 능해 〈양성기적비〉·〈서명선사제비〉 등을 남겼다. 저서로는《극옹집》이 있다.
이만운 / 李萬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23∼1797). 이경갑의 아들이다. 이덕무 등 실학자와 교유하였다. 1782년(정조 6)《문헌비고》의 개정에 참여, 1790년에《증보문헌비고》 초고를 완성하였다. 1796년 서유구 등과 함께 《문헌비고》 재보완 작업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
이만원 / 李萬元 [종교·철학/유학]
1651(효종 2)∼1708(숙종 34). 조선 후기의 문신. 이현 증손, 할아버지는 이성징, 아버지는 이형, 어머니는 최대년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대사간, 이조참의,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만유 / 李萬維 [종교·철학/유학]
1674(현종 15)∼? 조선 후기의 문신. 심 증손, 할아버지는 관미, 아버지는 옥, 어머니는 이동규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울산부사, 사헌부집의,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이만인 / 李晩寅 [종교·철학/유학]
1834년(순조 34)∼1897년(광무 1). 조선 말기 학자. 이황의 후손, 부친 이휘교와 모친 조병주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1877년(고종 14) 제생들에게 강학, 1881년(고종 18) 영남만인소 상소문의 원본을 작성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