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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 / 義安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옛 지명. 신라시대에 굴자군(屈自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의안군(義安郡)으 로 고쳐 합포(合浦)ㆍ웅신(熊神)ㆍ칠제(漆隄)를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양주(良州)에 예속시켰다. 1018년(현종 9) 금주(金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감무(監
의암댐 / 衣巖─ [경제·산업/산업]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에 있는 북한강의 댐. 높이 23m, 제방길이 273m, 총저수용량 8000만t, 시설발전용량 4만5000㎾, 유역면적 7,709㎢이다. 호수면은 너비 5㎞, 길이 8㎞의 타원형으로 호수면의 수위는 해발 72m로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은 15㎢
의암별제가무 / 義巖別祭歌舞 [예술·체육/무용]
1868년(고종5) 진주성 촉석루에서 연행되기 시작한 논개 제사용 노래와 춤. 정현석이 1867년(고종4)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이듬해 의기사(義妓祠)를 중건하고, 그해 6월의 좋은 날을 택해서 ‘의암별제’를 유교식으로 거행했다. 제사에는 3인의 제관(祭官) 이하 필요한
의암서원 / 義巖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에 있었던 서원. 1607년(선조 4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유희춘(柳希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9년(현종 10)에 ‘의암(義巖)’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
의암수력발전소 / 衣巖水力發電所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에 있는 발전소. 북한강 본류와 소양강의 합류점에서 약 10㎞ 하류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발전소는 제1차전원개발5개년계획에 따라 당초 화일전력주식회사에 의하여 1962년 3월 착공, 1966년말 준공될 예정이었으나, 여건 변화와 개발규모의
의암유고 / 宜庵遺稿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문인 서경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5년에 간행한 시문집. 6권 2책. 목활자본. 1865년(고종 2) 5대손 영지(榮智)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그 뒤 1928년이왕직(李王職)의 소장본을 등사한 필사본도 남아 있다. 권두에는 1863년(철종 14) 김영
의암호 / 衣巖湖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춘천시에 둘러 싸여 있는 호수. 의암호는 북한강 중류 수계에 있는 인공호이다. 호수면은 너비 5㎞, 길이 8㎞의 타원형으로 수면 면적은 만수위대 15㎢이고 호수면의 수위는 해발 72m이고, 유역 면적은 7,709㎢, 총 저수용량 8,000만t이다. 1967년 4
의약동참 / 議藥同參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내의원 소속의 의관. 약을 진공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1673년(현종 14)에 설치되었다. 정원은 12명으로, 당상관·당하관을 막론하고 어의라 칭했다. 의술에 정통할 경우 양반들이 맡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의원은 어약(御藥) 조제를 맡았기 때문에, 다
의약분업사태 / 醫藥分業事態 [사회/사회구조]
1999년 말부터 2000년 말까지 1년 여 동안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에 따라 진단과 처방은 의사에게 맡기고, 처방된 의약품을 조제하는 것은 약사가 담당하는 제도이다. 구체적으로 환자에 대한 진찰과 처방, 조제를 의사
의약청 / 議藥廳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의약을 관장하였던 임시관서. 평상시에는 내의원과 전의감이 있었으나, 왕과 왕비의 병환이 위독할 때에는 특별히 시약청(侍藥廳)과 의약청을 설치하여 담당자를 궁중에 상주하게 하여 투약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러므로 의약청은 필요에 의하여 그때그때 설치
의양서원 / 宜陽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에 있었던 서원. 1861년(철종 12)에 문청공(文淸公) 남효온(南孝溫, 1454∼1492)·남진(南振)·남용익(南龍翼, 1628∼1692) 등을 제향하기 위해 의령남씨(宜寧南氏)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868
의열단 / 義烈團 [역사/근대사]
1919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당시 만주와 중국 본토지역에 조직된 많은 독립운동단체가 미온적이고 온건한 독립운동을 전개한다고 판단,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의열단은 의거 외에도 제3차 폭탄계획·대구부호암
의열묘도 / 義烈墓圖 [예술·체육/회화]
의열묘역을 중심으로 외반식의 경물 구성에 산세의 보양을 방향별로 실경산수화풍에 가깝게 그린 그림. 18세기 유행한 진경산수화의 미점법을 활용하여 묘사, 정선의 소나무 묘법이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묘역 왼편으로는 전답, 가장자리 쪽에는 가옥 몇 채에 가을 분위기를 보
의열묘산도 / 義烈墓山圖 [예술·체육/회화]
의열묘의 풍수적 지세를 그린 산도의 형식의 그림. 산도는 채색 없이 수묵으로 그리는 것이 관행이었다. 안현(鞍峴)은 태조산으로 하여 아래로 간룡과 감룡의 지세가 굴곡을 이루며, 그 끝 자락에 혈이 위치하는 형세이다. 좌우로는 청룡과 백호가 감싸는데 우측 백호 쪽은 공간
의열비충효록 / 義烈妃忠孝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에서 저자는 비의 효행과 설승상의 충(忠)을 강조하여 두 주제를 하나의 구조 안에 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중의 충심은 효과적으로 형상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간신인 적대자 최훈이 설정되어 이야기가 전
의열소유영빈이씨치제문 / 義烈昭裕暎嬪李氏致祭文 [역사/조선시대사]
1950년 9월 23일에 영친왕 이은(李垠)이 영빈이씨를 위해 치제를 올리려 했을 때 지어진 제문. 제문은 지어진 시점이 한국전쟁 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당시 한·미 연합군은 9월 15일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동월 24일에 서울 서쪽 안산(鞍山)을 점령한 뒤,
의열영빈이씨기제사축식 / 義烈暎嬪李氏忌祭祀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영빈이씨(暎嬪李氏)의 기일(忌日)에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였던 축문(祝文)의 형식을 규정한 글. 글씨가 해정하지 않은 편이고 글을 고치거나 덧붙인 부분이 있으며, 마지막에 "己酉二月二十二日因傳敎改修"라고 부기되어 있고 연호가 "건륭(乾隆)"으로 되어 있어 1789년(
의열영빈이씨축식 / 義烈暎嬪李氏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영전에 중삭제(仲朔祭)를 지낼 때 쓰이는 축문(祝文)의 형식을 규정한 글. 내용은 여느 축식과 마찬가지로 제사하는 날을 맞이하여 술과 제수를 올리니 흠향하시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축문은 1754년(영조 30)에 쓰여진 <선자친화경숙빈최
의열영빈이씨치제문 / 義烈暎嬪李氏致祭文 [역사/조선시대사]
1766년(영조 42) 9월 10일에 광은부위(光恩副尉) 김두성(金斗性)을 보내어 영빈이씨에게 치제할 때 썼던 제문. 영조는 영빈의 삼년상이 끝나고 상복을 벗는 담제(禫祭)를 앞두고 있었기에, 이를 서글퍼하는 마음을 먼저 표현하였다. 그리고 전월에 의례를 치른 일과
의염창 / 義鹽倉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소금의 저장 및 배급을 맡아보던 관서. 고려는 초기부터 전매물로 정하여 도염원(都鹽院)을 설치하고 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국가에서는 공로가 특별히 큰 사람에게 염분을 하사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왕실과 귀족이 사리사욕으로 염분을 점탈하는 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