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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서 / 尹興緖 [종교·철학/유학]
1662-1733. 숙종대왕 기사년(1689) 경의로 진사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 지평공 또한 급제로 출신하여 부자가 동년 합격이므로 영예가 고을에 진동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전벽해를 여러 번 겪어 주옥이 물속에 빠져버린 채 거의 50년 동안이나 기구한 운명으로 쓸쓸
윤흥신 / 尹興信 [종교·철학/유학]
?∼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1582년(선조 15) 벼슬이 진천현감에 이르렀으나, 문자를 해득하지 못한다고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외직으로 전출되어 1592년 다대포첨사에 부임하였는데,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변방 수령으로서 앞서서 왜군과 싸우다
윤희구 / 尹喜求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학자(1867∼1926). 유학의 아홉 가지 경서와 제자의 글과 역사책까지 두루 섭렵한 한문학자이다. 장지연과 함께 《대한예전》 편찬에 참여했고, 참상에 올라《증보문헌비고》를 증수했으며,《양조보감》을 편찬했다. 장지연·오세창과 함께 《대동시선》을 교열했다.
율격 / 律格 [문학/고전시가]
장단, 고저, 발음 등 짜임새가 비슷한 말의 토막을 이어붙이는 문학창작의 한 방식. 한국 시가도 단순율격이면서 토막을 이루는 음절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가변적인 점이 남다르다. 음절수를 나타내는 자수를 헤아려 34조, 44조 등의 자수율이 있다고 하는 견해가 한동안
율계서원 / 栗溪書院 [교육/교육]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 효우리에 있었던 서원.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조선시대에 강성우(姜聖遇) 등 지방유림이 율계서사(栗溪書祠)를 율계서원으로 바꾸고 강필동(姜必東)의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
율과 / 律科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형조 소속의 율관을 뽑기 위하여 시행한 잡과시험. 율과는 국초에는 없었다가 뒤에 생겨나서 ≪경국대전≫에 역·의·음양과 더불어 잡과의 4과의 하나가 되었다. 율과는 다른 잡과와 마찬가지로 식년시와 증광시에만 설행되었고 초시와 복시만 실시되었다. 초시는 상식년(
율구미 / 栗九美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안 어귀에 있었던 옛 지명. 1900년 러시아가 이 곳에 극동함대의 석탄저장소와 해군병원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 정부로부터 조차(租借)하기로 협약이 되었으나 1년 만에 일본의 항의로 취소되었다. 이 곳은 조선시대에 마산창(馬山倉)을 위
율리유곡 / 栗里遺曲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김광욱(金光煜)이 지은 연시조. 모두 14수로, 『청구영언』·『해동가요』 등의 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강호가도(江湖歌道) 계열의 전원시가(田園詩歌)이다. “陶淵明(도연명) 죽은후에 ᄯᅩ연명이 나닷말가/밤ᄆᆞ을 녯일홈이 맛초와 ᄀᆞᆺ틀씨고/돌아와 守拙田園(
율시 / 律詩 [문학/한문학]
한시 형식의 하나. 1구의 자수에 따라 5언·7언의 구별이 있다. 1구 5자인 경우는 오언율시, 1구 7자인 경우는 칠언율시이다. 같은 근체시인 절구보다 형식이 까다롭다. 대우(對偶)·성운(聲韻)·자수(字數)·구수(句數)가 모두 엄정한 규율에 맞아야 한다. 율시는 양(
율옹유고 / 栗翁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 중기의 학자 송징 시문집. 불분권 1책. 목판본. 1826년(순조 26) 6대손 재일과 이신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치규의 서문, 권말에 이헌승의 발문이 있다. 내용은 저자의 행장을 먼저 싣고, 논 7편, 책 5편, 전책 1편, 의 1편, 부 1편, 상량
율정집 / 栗亭集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문인 윤택의 시가와 산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율정집(栗亭集)』에 관한 기록은 『고려사』 권106 「윤택열전」과 『용재총화』 권8, 『대동운부군옥』의 「찬집서적목록(纂輯書籍目錄)」, 『해동문헌총록』의 「제가시문집(諸家詩文集)」 등에 보인다. 이색(李穡, 13
율학교수 / 律學敎授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관직의 하나. 육조의 하나인 형조에서는 법률·소송·노예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는데, 이와 같은 업무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형조에는 율학청(律學廳)을 설치하여 종6품직으로 법률에 관한 학문을 가르치는 율학교수를 두었다. 정원은 1인이며, 그 밑에는 종7품의
율학박사 / 律學博士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율령(律令) 사무를 담당한 관직.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992년(성종 11)에 국자감을 설치하면서 그 안에 8품 이상 관직자의 자제와 서인(庶人)이 입학할 수 있는 율학을 두어 율학박사로 하여금 율령을 가르치게 하였다. 정원은 1인이고 품계는 종8품이었으며
율학청 / 律學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법전시행에 있어서의 전문적인 실무와 교육을 맡았던 기관. 형조에 속하였다. 율학은 국가행정의 실시를 위한 법률의 집행과 일반소송의 담당 등 국가운영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태조는 율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형조에서 율령의 실시를 공정하고 엄격히 시행, 율학청
율학훈도 / 律學訓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형조의 율학청에서 율학교육을 담당한 관원. 율학은 국가운영의 기본이 되는 것이라 하여 조선은 국초부터 율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형조에 율학청을 설치하고 교육을 담당할 관원으로 율학교수·율학훈도 등을 두었다.
융기서 / 戎器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전기 군기·융병·기계 등의 일을 맡았던 관서. 토관직 동반관서의 하나이다. 평양부의 경우, 건국초에 좌우군기·군기시·장야시 등이 있었는데, 1434년(세종 16)에 군기서로 합병되었고, ≪경국대전≫이 편찬되던 당시에 융기서로 개칭되었다. 그 관원으로는 감부(勘簿
융복 / 戎服 [생활/의생활]
군사가 있을 때 입는 옷 광의의 개념으로는 갑주·군복 등이 포함되며, 협의의 개념으로는 철릭·광다회·목화·동개·입·환도·병부주머니로 구성된 의복을 뜻한다. 이 융복은 문관이나 무관이 몸을 경첩하게 하여야 할 경우의 복장으로, 왕의 행차에 수행할 때, 외국에 사신으로 파
융희 / 隆熙 [역사/근대사]
1907년부터 사용된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즉위로 연호가 광무에서 융희로 바뀌어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사용되었다. 헤이그특사사건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순종에게 양위되면서, 1907년 8월 12일 새 연호가 선포되고 순종의 융희황
윷노래 [문학/구비문학]
윷을 놀 때 부르는 민요. 유희요(遊戱謠)에 속한다. 내용은 대체로 희망하는 수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과 말판의 말이 빨리 달아나기를 바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사가 ‘도·개·걸·모’를 해학적으로 풀이하여 읊고 있어 어희요의 성격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거의가 개인창
윷놀이 [생활/민속]
윷가락을 던지고 말[馬]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 한자어로는 ‘사희(柶戱)’라고 한다. 2인이 대국(對局)하여 각각 4말을 가지고 29밭이 있는 윷판을 쓰는데, 말 길은 원근(遠近)과 지속(遲速)의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이다. 인원수가 많을 때에는 두 패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