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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 尹潽善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정치인(1897∼1990).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서울시장으로 발탁되었고, 1949년 상공부장관이 되었다. 1957년 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정부가 물러나면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이
윤보선전대통령생가 / 尹潽善前大統領生家 [생활/주생활]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96호.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인데 1907년 윤치소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집은 후대에 부분적으로 개조되었지만,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잘 갖춘 상류주택이다.
윤복 / 尹復 [종교·철학/유학]
1512(중종 7)∼1577(선조 10).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경, 아버지는 효정이다. 1538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547년(명종 2) 부안현감으로 부임하여 백성들의 굶주림을 보고 구휼에 진력하였다. 그 뒤 전라도사를 거쳐 1552년 낙안군수가 되었
윤봉구 / 尹鳳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681∼1767). 권상하의 문인으로, 한원진·이간 등과 함께 강문팔학사의 한 사람으로 불리며, 인성·물성에 대한 이동을 논한 호락논쟁에서 인물성이론을 주장해 호론에 속했다. 천거되어 대사헌·지돈령·공조판서 등에 이르렀다. 저서로《병계집》이
윤봉길 / 尹奉吉 [역사/근대사]
1908-193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의사. 1932년 4월 29일 일본왕의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켰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잡혀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해 11월 18일 일본에 호송되어 20일 오사카위수형무소
윤봉길의사유품 / 尹奉吉義士遺品 [예술·체육/공예]
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인 윤봉길이 사용하였던 일괄유품. 보물 제568호. 모두 13종 68점으로서 그 가운데 10종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기념관에 보관 중이며, 2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머지 1종은 서울 윤남의 집에 소장되어 있다. 충의사기념관에 소장된 10종
윤봉오 / 尹鳳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8∼1769). 일찍이 왕세제(영조)를 측근에서 보필하였고, 1763년 특진관으로 판돈령부사를 겸하였고, 1768년 기로소에 들어갔다. 저서로는《석문집》 8권이 있다.
윤봉조 / 尹鳳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0∼1761). 유건 증손, 할아버지는 비경, 아버지는 명원, 어머니는 이경창의 딸이다. 1713년 암행어사가 되었으며, 부제학으로 있을 때에 실록도청당상을 겸하여 《경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특히 소차에 능하였다. 저서
윤비경 / 尹飛卿 [종교·철학/유학]
1607(선조 40)∼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고조는 응규, 인함 증손, 할아버지는 홍립, 아버지는 유건, 어머니는 권역의 딸이다.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와 전적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병조참의, 공조참의, 경주부윤,
윤사국 / 尹師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8∼1809). 관찰사 윤경룡의 아들로 뒤에 진사 윤경종에게 입양되었다. 1783년(정조 7)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나이 80세가 되자 숭록대부의 관계에 승진하여 판돈령부사가 되었다.
윤사국시장 / 尹師國諡狀 [정치·법제]
조선 후기의 문신 윤사국(尹師國)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890년(고종 27)에 정기회(鄭基會)가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에서는 주로 그의 관력과 지조 등을 칭양하였으며, 특히 서법에 조예가 깊어 왕실의 중요 문서 등을 서사 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시
윤상 / 尹祥 [종교·철학/유학]
1373(공민왕 22)∼1455(단종 3). 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충의 증손, 할아버지는 신단, 아버지는 선. 1396년(태조 5) 24세의 나이로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해 선산·안동·상주 및 한성 서부 등지의 교수관을 거쳐, 예조정랑 때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
윤선거 / 尹宣擧 [종교·철학/유학]
1610(광해군 2)∼1669(현종 10).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황, 어머니는 성혼의 딸이다. 문거의 아우이며, 증의 아버지이다. 김집의 문인이다. 유계와 함께 저술한『가례원류』·『후천도설』 및 이에 관하여 유계와 논변한 편지를 비롯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윤선내왕중국여조선국합약장정 / 輪船來往中國與朝鮮國合約章程 [정치·법제/외교]
1883년 조인된 조선과 중국 간의 해운 조약. 이 조약에 의한 초상국 선박의 조선항로 개통은 중국의 무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초상국은 한중 간 무역품 운송업을 독점하게 되었고, 중국은 이를 통해 영국산 면제품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의 공산품을 재수출하여 막
윤선도 / 尹善道 [종교·철학/유학]
1587(선조 20)∼1671(현종 12).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 아버지는 유심. 숙부 유기에게 입양됐다. 1628년(인조 6)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해 봉림대군·인평대군의 스승이 됐다. 문집『고산선생유고』에 한시문이 실려 있고, 별집에도 한시문과 35수의
윤성범 / 尹聖範 [종교·철학/개신교]
1916년∼1980년. 개신교신학자. 경상북도 울진 출신. 1934년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 졸업, 1941년 일본 경도의 도지샤(同志社) 신학부, 1955년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6년부터 재직하여온 감리교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로 활동하면
윤순 / 尹淳 [종교·철학/유학]
1680년(숙종 6)∼1741년(영조 17). 조선 후기의 문신·서화가. 두수 5대손으로, 지평 세희 아들, 유의 아우이다. 어머니는 이동규의 딸이다. 정제두의 문인이며 정제두의 아우 제태의 사위이다. 1712년(숙종 38) 진사시에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급
윤순달 / 尹淳達 [역사/근대사]
1914년∼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출생지는 전라남도 강진(康津)이다. 1939년 경성콤그룹에서 박헌영(朴憲永)을 도와 광복 때까지 조선공산당재건을 위해 힘썼다. 1945년 8월 해방 후부터 조선공산당 광주시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6‧25전쟁 때 조선의
윤순지 / 尹順之 [종교·철학/유학]
1591(선조 24)∼1666(현종 7). 조선 후기의 문신. 변 증손, 할아버지는 두수, 아버지는 훤, 어머니는 심의겸의 딸이다. 162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경기도관찰사, 도승지, 개성유수, 한성판윤,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행명집』
윤승경 / 尹承慶 [종교·철학/유학]
1523년(중종 18)~1583년(선조 16). 조선 중기 문신. 증조는 윤훤, 조부는 윤은필, 부친은 윤홍언이다. 모친은 이순민의 딸이다. 부인은 원희윤의 딸이다. 동생은 윤승길‧윤승훈이다. 1558년(명종 13)에 예문관검열에 임명되었다. 1575년(선조 8)에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