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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영근 / 金永根 [문학/한문학]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유학자.우국지사. 김영근(金永根)은 1865년 전라남도 강진군 신기(新基, 현 칠량면 명주리 신기)에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이 곳에 세거하였으며, 부친 김도순(金道淳)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行龍驤衛)와 금갑도(金甲島) 만호(萬戶)를
김영길 / 金永吉 [예술·체육/대중음악]
1909-1985년. 일제 강점기 가수·영화배우. 창씨 개명한 이름은 나가타겐지로[永田絃次郞]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이다. 1928년 평양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동경일일신문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서 3년 연속 입상하였다. 1
김영득 / 金榮得 [역사/근대사]
1908-1940.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유영(金幽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1927년 9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입하여 1930년 4월경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탄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김영락 / 金榮洛 [종교·철학/유학]
1831년(순조 31)∼1906년(광무 10). 조선 말기 유학자. 이병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노인직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를 받았다. 문집으로 손자 김정준이 편집 간행한《구계집》은 이충호가 서문을, 손자 김재준이 발문을 붙였다. 문집은 시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김영란 / 金永蘭 [역사/근대사]
1896-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평양·순천 등지에서 독립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결사 숭의단을 창립하였다. 1920년 평남 등지에서 민족독립활동을
김영렬 / 金英烈 [종교·철학/유학]
?∼1404(태종 4). 조선 전기의 무신. 1394년에 전서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1395년에 수군절제사로 발탁되었다. 1400년(정종 2)에 지삼군부사로 있을 때에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1401년(태
김영목 / 金永穆 [종교·철학/유학]
1835(헌종 1)∼1910. 조선 말기의 문신. 주요 내직에 임명되다가, 1898년에 궁내부특진관에 칙임관 3등으로 올랐으며, 홍릉제조에 임명, 1899년에 전주 오목대비문 서사관, 인조대왕옥책문의 악장문제술관이 되었다. 1900년부터 2년 동안은 산릉도감 및 천릉도
김영삼 / 金永三 [정치·법제/정치]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 정치가. 경남 거제 출신. 195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장택상 총리 인사담당 비서가 되었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된 후, 제5, 6, 7, 8, 9, 10, 13대
김영서 / 金永西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일명 광오(光五).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명의 만세시위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
김영성 / 金永聲 [역사/근대사]
1867-1959. 한말의 의병장. 전라남도 흥양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