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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문인·학자
안석경 / 安錫儆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삽교집』, 『삽교만록』 등을 저술한 학자. 아버지는 안중관(安重觀)이다. 안중관은 김창흡(金昌翕)의 문인으로 이병연(李秉淵)·민우수(閔遇洙) 등 당시 노론계 인사 및 홍세태(洪世泰) 같은 중인 출신 시인과도 교유한 노론계 학자였다. 1752년(영조 28) 아
안조원 / 安肇源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만언사」를 저술한 유학자. 정조 때 대전별감을 지냈다는 것 외에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 34세에 추자도로 귀양 가서 풀려날 때까지의 비참하였던 모습을 노래한 가사 「만언사(萬言詞)」의 작자이다. 「만언사」는 여러 가지로 그 이름이 전하고 있다. 안조원이 지
안창후 / 安昌後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한설당유고』, 「한설당」, 「명분설」 등을 저술한 유학자. 아버지는 안세헌(安世獻)이다. 효우학행으로 유림의 포상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평생을 한설당에서 글벗들과 시문에 힘썼다. 1747년(영조 23)에 유교적 도덕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생활윤리
오세문 / 吳世文 [문학/한문학]
고려후기「논조수서」,「역대가」,『자오랑중세문가방광명사문장로차운문공』 등을 저술한 문인. 선대는 고창오씨 시조인 한림학사오학린(吳學麟)이고, 할아버지는 직한림(直翰林) 오질(吳質)이며, 아버지는 탁라도(乇羅道) 구당사(句當使) 오인정(吳仁正)이다. 오세공(吳世功)의 아우
오세재 / 吳世才 [문학/한문학]
고려전기 동문선에 수록된 오언율시 2수와 칠언율시 1수 등을 저술한 학자.문인. 선대는 고창오씨 시조인 한림학사 오학린(吳學麟)이고, 할아버지는 직한림(直翰林) 오질(吳質)이며, 아버지는 탁라도(乇羅道) 구당사(句當使) 오인정(吳仁正)이다. 오세공(吳世功)·오세문(吳世
오효원 / 吳孝媛 [문학/한문학]
일제강점기 신명, 숭신, 공옥 등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교육자.문인. 아버지는 당시 관리였던 수양산인 경금옹(慶今翁) 오시선(吳時善)이다. 1898년(광무 2)에는 의성과 이웃 두 군에서 실시하는 백일장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1902년(광무 6) 14세 때 공금을 사
유득공 / 柳得恭 [역사/조선시대사]
1748(영조 24)∼1807(순조 7). 조선 후기의 실학자.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고, 시문에 뛰어난 재질이 인정되어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로 들어가 활약이 컸다. 그 뒤 제천·포천·양근 등의 군수를 거쳐 말년에는 풍
유재건 / 劉在建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법어』, 『겸산필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유창(劉敞)의 후손이었으나 가세가 몰락해 서리계급이 됐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시와 글에 두루 능했고 특히 서예를 잘했다. 전서(篆書)·해서(楷書)에 뛰어났다고 한다. 오
유진한 / 柳振漢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만화집』을 저술한 유학자. 할아버지는 유광천(柳光天)이다. 일찍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아 나이 15세에 경전과 역사서 등에 두루 통달했으며 글을 잘 쓴다는 명성을 얻었다. 처음 배울 때부터 엄한 지도를 받아 밤낮으로 독서를 했으며 태만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유치구 / 柳致球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소은집』,「천군실록」 등을 저술한 문인. 아버지는 유상문(柳相文)이며 큰아버지인 유두문(柳斗文)에게 입양됐다. 어머니는 한양 조씨(漢陽趙氏)이다. 작은아버지인 유낙문(柳洛文)에게 수학했다. 고문(古文)의 형식으로 글을 쓸 때는 거칠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문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