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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 / stocking [생활/의생활]
목이 긴 여성용 양말이다.
승복 / 僧服 [생활/의생활]
승려가 입는 의복.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중엽 이후부터 고려 말까지 약 1,000년 동안 중국의 흑장삼과 붉은 가사를 받아들여 전통적인 우리 옷 위에 착용하였다. ≪삼국유사≫ 원종흥법조(原宗興法條)에 보이는 피방포(被方袍)는 가사로 추측되는데, 이는 중국에서 건너온
시복 / 時服 [생활/의생활]
문무백관이 입시(入侍)할 때나 공무(公務)를 볼 때 입던 옷. 시복은 상복과 같이 사모에, 포는 홍포(정3품 이상)였으나 상복에만 있던 흉배(胸背)가 없는 데서 구별되었다. 흉배를 하지 않은 것은 공무집행에 있어서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측된다.
심동신금관조복 / 沈東臣金冠朝服 [생활/의생활]
조선 말기 문신 심동신(沈東臣: 1824∼?)이 입었던 당상관용 조복(朝服) 의(衣)·상(裳)과 부속품 등 8점. 심동신 금관조복은 화·말을 제외한 8점으로 양관 1점, 의 1점, 중단 1점, 상 1점, 수 1점, 패옥(佩玉) 1쌍, 서대(犀帶) 1점, 홀 1개이다.
심의 / 深衣 [생활/의생활]
유학자들이 입던 겉옷. 심의제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예기 禮記≫ 왕제편(王制篇)에 “유우씨가 심의를 입고 양로의 예를 행하였다(有虞氏深衣而養老).”라 한 것이다. 또, ≪예기≫의 옥조(玉藻) 및 심의(深衣)편에 그 형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고, 부분적인
쓰개치마 [생활/의생활]
조선 중기 이후 양반층 부녀자가 사용한 내외용 쓰개. 형태는 보통 치마와 같은 것으로 끈이 달려 있으며, 주름을 겹쳐 잡고 치마허리는 얼굴 둘레를 감싸 턱 밑에서 맞물려질 정도의 길이다. 재료는 옥색 옥양목이나 명주로 만들었으며 계절에 따라 겹으로 하거나 또는 솜을 두
악인복 / 樂人服 [생활/의생활]
악사(樂師)·전악(典樂)·악생(樂生)·악공(樂工) 등과 노래하는 사람의 복식. 악인들은 양인·천민출신이지만 의식(儀式)에 직접 참여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특수한 직분의 사람들이므로, 연주시에는 특별히 공복(公服)과 관복(冠服)의 착용이 허용되었다. 악인의 구분과 의식의
안동김씨묘출토의복 / 安東金氏墓出土衣服 [생활/의생활]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 지월리에 위치한 김첨(金瞻: 1502∼1584)과 그의 딸 안동김씨, 손부(孫婦) 원주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1점, 솜이불 2점이 수습되었다. 여자의 대표적인 포(
안동홍씨수의 / 安東洪氏壽衣 [생활/의생활]
조선 후기 때 사람 홍극가(洪克加, 1670년 사망)의 무덤에서 출토된 복식. 중요민속자료 제40호. 1974년에 안동댐공사관계로 무덤을 이장하던 중 발견되었는데, 출토된 의복은 중치막 1점, 도포 1점, 누비바지 1점, 버선 1족 등 4점이다. 중치막은 조선 중기 사
앵삼 / 鶯衫 [생활/의생활]
조선시대 유생이 생원시나 진사시에 합격하였을 때, 또는 신래(新來 : 과거에 새로 급제한 사람)가 착용하던 예복(禮服). 유생복은 『경국대전』 예전 의장조에 규제된 바로는 치포건(緇布巾)·청삼(靑衫)·조아(條兒)로서, 치포건은 복건(幅巾)이었고 청삼은 난삼(襴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