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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육진방언 / 六鎭方言 [언어/언어/문자]
두만강 중류와 하류에 위치한 함경북도 회령(會寧)·종성(鐘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에서 쓰이는 방언. 육진(六鎭)이라는 말은 조선조 세종이 이 지역을 개척하고 여섯 진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다. 육진의 하나인 부령(富寧)은 이 방언권에서 제외한다. 육진방
육창 / 陸昌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아로현(阿老縣, 또는 加位ㆍ何老ㆍ谷野ㆍ葛草縣) 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갈도현(碣島縣)으로 고쳐 압해군(壓海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육창으로 고쳤고, 유비니도(有比尼島)ㆍ조
육현가 / 六賢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종 때 주세붕(周世鵬)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전 6장. 작자가 풍기군수로 있을 때인 1541년(중종 36)에서 1544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다. 작자의 저서 『무릉잡고(武陵雜稿)』 별집과 『죽계지(竹溪誌)』에 수록되어 있다. 「육현가」는 도학 형성에 크게
육혈포강도 / 六穴砲强盜 [예술·체육/연극]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의 제2회 공연 작품인 탐정극. 신파극이란 용어가 광고에서 최초로 쓰였던 작품이며 신파극 중 가장 인기를 모았던 작품으로 푸에도 여러 번 재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이미 1908년 일본 신파극단이 공연한 바 있는 <피스톨강도 청수정길>을 현식단 단
육화대 / 六花隊 [예술·체육/무용]
조선 초기의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고려사』악지에는 보이지 않고,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에 그 춤의 절차가 전한다. 따라서 성종조 이전에 창제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 400여 년 동안 보이지 않다가 1901년 7월의 진연(進宴)에서 재연되었다.당악정재
육회 / 肉膾 [생활/식생활]
쇠고기의 살코기를 얇게 저며 양념에 날로 무친 회(膾). 동양 삼국 중에 특히 우리 나라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어우야담 於于野談≫에 “임진왜란 때 중국 군사 10만 명이 오랫동안 우리 나라에 주둔하였다. 그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회를 잘 먹는 것을 보고 더럽다고
육효자전 / 六孝子傳 [문학/고전산문]
박건회(朴健會)가 편술한 고전소설집. 회동서관(滙東書館)에서 간행하였다. 초두에 ‘박건희 편술’이라 밝혔으며, 전래의 6편 효행담을 엮은 일종의 단편소설집이다. 장회(章回) 소설처럼 횟수로 하여 6편을 엮고 있다. 제1회는 김효증(金孝曾)의 효행담이다. 제2회는 이해룡
윤가묵 / 尹家默 [종교·철학/유학]
1806년(순조 6)∼1890년(고종 27). 조선 말기 학자. 과거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와 성리학의 성명도설 연구에 힘썼다. 1855년(철종 6)에는 사도세자를 추존할 것을 건의하는「의리소」를 지어 간우 이인중과 함께 서울로 갔다. 유고로
윤각 / 尹慤 [역사/조선시대사]
1665(현종 6)∼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익상이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비변사낭관·도총부도사·초계군수 등을 역임하고, 전주영장을 거쳐 전라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1710년 해구의 발호가 심해지자 대신 이이명의
윤개 / 尹漑 [종교·철학/유학]
1494(성종 25)∼1566(명종 21).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구몽, 아버지는 이손, 어머니는 윤백연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홍문관저작, 이조좌랑, 형조참판,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윤계 / 尹堦 [종교·철학/유학]
1622(광해군 14)∼1692(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 두수 증손, 할아버지는 휘, 아버지는 면지, 어머니는 경섬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예조좌랑, 황해도도사, 한성판윤, 조참찬, 공조판서, 광주유수 등
윤계 / 尹棨 [종교·철학/유학]
1583(선조 16)∼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우신 증손, 할아버지는 섬, 아버지는 형갑, 어머니는 황치경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 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
윤계겸 / 尹繼謙 [종교·철학/유학]
1442(세종 24)∼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승례 증손, 할아버지는 번, 아버지는 사흔이다. 1457년(세조 3) 음보로 세자우참군에 처음 제수되고, 그 뒤 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의빈부경력,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호조참판, 강원도관찰사,
윤광계 / 尹光啓 [종교·철학/유학]
1559(명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효정 증손, 할아버지는 행, 아버지는 화중, 어머니는 이희양의 딸이다. 15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601년 주서·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1603년 호조정랑으로서 지제교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
윤광안 / 尹光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7∼1815). 유 증손, 할아버지는 서교, 아버지는 동미, 어머니는 이보순의 딸이다. 경상도관찰사 때 주자와 송시열을 배향한 영양의 운곡서원의 사당을 헐고, 영정을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1808년 암행어사 이우재의 탄핵으로 사문난적으로 몰려
윤광집 / 尹光緝 [종교·철학/유학]
1710년(숙종 36)∼1761년(영조 37) 4월 22일. 조선 후기의 유생. 자는 학유(學有), 본관은 파평(坡平), 출신지는 충청남도 이산(尼山: 현 논산군(論山郡))이다.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가학(家學)을 계승하였다. 가법(家法)을 지키면서 학문에
윤구 / 尹衢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경, 아버지는 효정이다. 1513년(중종 8)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가독서를 하였으며, 다음해 주서에 이어 홍문관의 수찬·지제교·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15
윤근수 / 尹根壽 [종교·철학/유학]
1537(중종 32)∼1616(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계정 증손, 할아버지는 희림, 아버지는 변, 어머니는 현윤명의 딸이다. 영의정 두수의 동생이다. 김덕수·이황의 문인으로 1558년(명종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용된 뒤 홍문
윤급 / 尹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7∼1770). 이재·박필주의 문인으로, 예문제학·대사헌·좌우참찬·판의금부사·한성판윤, 형조·예조·이조·형조의 판서 등을 역임했다. 영조의 탕평책을 반대하며, 자주 파직·좌천되기도 했다. 글씨에 뛰어나 독특한 서체를 이룩하였고, 저서로는《근암집》
윤기현 / 尹冀鉉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 초대이사, 전조선야구대회 심판으로 활동한 체육인. 1889(고종 26)∼?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재학중이던 1909년 1월변희준(邊熙駿)·장순익(張淳翊)·유동수(柳東秀)·윤교중(尹敎重)·어윤빈(魚允斌) 등과 함께 동경유학생들로 구성된 대한흥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