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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유행어 / 流行語 [언어/언어/문자]
어느 한 시기에 널리 쓰이다가 안 쓰이게 된 단어나 구절(句節)로서 신어(新語)의 일종. 대개 단명인 것이 특징이나, 일부는 보통어로 자리잡아 오래 쓰이기도 한다. 독특하고 신기(新奇)한 표현, 그 시대를 풍자하는 의미나 해학성 등으로 인하여 널리 애용되는 것이 특징인
유향소 / 留鄕所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초기에 악질 향리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로잡기 위해 지방의 품관들이 조직한 자치기구. 고려 말기에 향리 신분으로서 군공으로 첨설직을 얻거나, 조선 건국과 더불어 중앙관계에 진출해 관원이 된 자들은 중앙에 머무를 필요성이 없어졌을 때 향촌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들
유허일 / 柳虛一 [종교·철학/원불교]
1882년(고종 19)∼1958년. 원불교의 교무. 1932년에 박중빈 제자가 되었고, 그 이듬해 출가하여 전무출신이 되었다. 원불교 중앙총부 학원교무·공익부장·교감·예감·총무부장·순교감·교정원장 등을 역임, 1935년에는 수위단원에 피선되었다. 66세 때 재단법인 원
유현시 / 柳顯時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67∼1752). 45세 때 생원시에 장원하였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후진교육에 힘썼는데, 66세에 안동부의 추천으로 안동부내 도훈장이 되었고, 1749년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만년에 《심경》, 《근사록》을 연구하였다. 저서는《호와유고》가
유형석 / 柳瀅錫 [역사/근대사]
1914-1973.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강계 출신. 강계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1932년 안동현립소학교(安東縣立小學校) 및 봉천초등학교(奉天初等學校) 등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항저우(杭州)의 중국항공학교에 입학하려 하였으나 거절당하
유형원 / 柳馨遠 [종교·철학/유학]
1622-1673. 조선 현종 때의 실학자. 1654년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야인으로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학문적 관심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 있었다. 실사의 문제와 부편적 인도로서의 천리를 문제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저서에 <반계수록
유호서원 / 柳湖書院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서원.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행장에 따르면, 유호서원(柳湖書院)은 채응린(蔡應麟, 1529∼1584)과 곽재겸(郭再謙, 1547∼1615)을 제향하기 위해 1784년(정조 8)에 지묘동에 건립한 유호리사(柳湖里祠)에서 출
유호인 / 兪好仁 [종교·철학/유학]
1445(세종 27)∼1494(성종 25). 조선 전기의 문신·문장가. 음의 아들, 김종직의 문인이다. 1462년(세조 8)에 생원, 1474년(성종 5)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봉상시부봉사를 거쳐, 1478년 사가독서한 뒤 1480년에 거창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유홍기 / 劉鴻基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개화사상가·개화운동가(1831∼?). 개화사상가. 개화운동 지도자. 1869년 한성판윤와 더불어 개화사상의 동지가 되었다. 1870년 초부터 박규수의 사랑방에서·김윤식·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의 양반 자제들에게 개화사상을 교육하였다. 당대의 뛰어난 청년
유화 / 柳和 [종교·철학/유학]
1691년(숙종 17)∼1757년(영조 33). 조선 후기 문신. 증조부는 유희사, 조부는 유영회, 아버지는 유동민이다. 외조부는 소명국이다. 유화 집안은 대대로 사관 벼슬을 지냈다. 1732년(영조 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전적, 예조정랑, 보령현감, 통
유화기몽 / 柳花奇夢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활자본. 목판본·필사본은 발견되지 않고 1918년에 보급서관(普及書館)에서 발행한 활자본만 전한다. 영웅소설의 일종으로, 주인공의 출생과정이 특이한 10회 장회소설(章回小說)이다. 이 작품은 1회부터 5회까지는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탄생과
유황 / 兪榥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55(효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군수 영 증손, 할아버지는 대의, 아버지는 성증, 어머니는 준의 딸이다. 1633년 상운찰방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 지평, 예조정랑, 이조참의, 부승지,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유황점 / 硫黃店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각 군문이 유황을 채굴하기 위해 설치한 광업소. 국방 무기와 관련되어 각 군문이 설치하고 감관을 파견해 경영하는 관영형태의 성격을 지닌 유황의 채굴 및 조달을 맡은 광업소이다. 유황은 ‘석류황(石硫黃)’ 또는 ‘황(黃)’이라고도 하며, 의약·공업약품·화약원
유회상양민 / 諭會商兩民 [정치·법제]
1898년(광무 2) 11월 26일 고종황제가 만민공동회와 황국협회의 보부상에게 해산을 촉구하는 칙어. 박정양(朴定陽)이 내각을 의정부로 개혁하여 내정을 강화하자, 이것을 두려워한 보수세력이 공화정을 수립한다고 무고하였다. 마침내 고종황제는 황국협회를 만들어 이들 세
유효공선행록 / 柳孝公善行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2권 12책. 국문 필사본. ‘유공선행록(柳公善行錄)’·‘유효공전(柳孝公傳)’·‘유효공현행록’ 등 30여 종의 이본이 있다. 작품 내용은 이본 간에 큰 차이가 없으나,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12권의 「유효공선행록」을 선본
유효립 / 柳孝立 [종교·철학/유학]
1579(선조 12)∼1628(인조 6). 조선 후기의 모반자. 잠 증손, 할아버지는 자신, 아버지는 희견,어머니는 이현의 딸이다. 희분의 조카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4년 사헌부정언·병조정랑, 이듬 해 필선, 1616년 수찬
유후조 / 柳厚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8∼1876). 고종 때 이조참판, 공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주청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그곳 서양인들의 동정을 알렸는데, 병인양요 때 아들 주목에게 의병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였다. 1872년에는 판중추부사로 퇴관하였다.
유희경 / 劉希慶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촌은집』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종7품인 계공랑(啓功郎)유업동(劉業仝)이고 어머니는 허씨(許氏)이다.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으로 나가 싸운 공으로 선조(宣祖)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
유희량 / 柳希亮 [종교·철학/유학]
1575(선조 8)∼1628(인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수천 증손, 할아버지는 잠, 아버지는 자신, 어머니는 정유길의 딸이다. 1608년(광해군 즉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설서·정언·전한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정랑·교리·수찬을 역임, 지평·
유희분 / 柳希奮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수천 증손, 할아버지는 잠, 아버지는 자신, 어머니는 정유길의 딸이다. 159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조좌랑이 되고, 1599년 수찬 재임 때 유성룡을 탄핵했다가 민몽룡의 논척으로 파직되었다.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