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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건 / 柳宜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87∼1760). 과거에 나가지 않고 화계에 서당을 짓고 경사·자집을 두루 섭렵하여, 특히 성력 및 역학에 밝아 제자가 점점 많아지자 그 집을 문회실·난실이라 이름하고, 육영과 저술에만 전념하여〈괘변의의 〉를 남겼다. 저서로는《화계집》8권이 있다
유의양 / 柳義養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8∼?). 대사간·공조참판·부총관 등을 지냈다. 집의 때 백관들의 안일함을 논핵하였다.《춘관지》·《영희전지》를 편찬,《동국문헌비고》수정,《국조오례의》를 보집하였다. 저서로《춘방지》·《춘관통고》가 있다.
유의어 / 類義語 [언어/언어/문자]
한 언어 안에서 공시적(共時的)으로 대강 같은, 즉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두 개(또는 그 이상)의 단어들. 유의관계의 성립 여부는 ① 동일맥락 속에서의 교체가능성, ② 반의어(反義語)와의 관계, ③ 지시관계 등에 의하여 판정한다. 우선 복수의 단어가 모든 과학적인 맥
유의정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한글필사본. 이 소설은 전란중의 가족이산이 유씨가와 한씨가의 관계 속에 얽혀 있다. 유의정과 한영이 각각 도사를 만나 몸을 의탁하면서 탁월한 능력도 확보한다. 앞부분과 뒷부분이 누락되어 분명하지 않으나 이러한 능력의 확보는 인물의 사회 복귀
유의칭가자 / 遺衣稱架子 [정치·법제]
국장 발인 의식에 사용되는 가마. 국왕이나 왕비의 부장품을 실은 가마는 소궤채여, 자기궤채여, 악기궤표신궤채여, 변두궤연갑함채여, 유의칭가자, 복완함궤장궤채여, 증옥증백구의명정함채여, 애책채여 등이다. 이 중 유의칭가자는 국왕이나 왕비가 평상시 입던 옷을 실은 가마이
유이양문록 / 劉李兩門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77권 77책. 국문 필사본. 유씨와 이씨 양가문의 관계를 다룬 가문소설로(家門小說), 대하소설이다. 이 작품은 가문소설 가운데에서도 두 가문을 중심 축으로 하는 이른바 ‘양문형(兩門型)’에 속하는 것이다. 표제 그대로 유·이 양 가문에서
유이태설화 / 劉爾泰說話 [문학/구비문학]
조선 숙종 때의 명의(名醫) 유이태에 관한 설화. 「허준설화(許浚說話)」와 함께 ‘명의담(名醫譚)’에 속한다. 「유이태설화」는 영남 지방에서 주로 전승되는데 ‘유이태탕’·‘순산비방’ 등이 있다. 유이태가 어느 곳을 지나갈 때, 어떤 사람이 담장 밑에서 약을 달이는데 약
유인 / 孺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외명부인 문무관처에게 내린 정·종9품 작호. 문무관 정9품 종사랑(從仕郎)·효력부위(效力副尉)와 종9품 장사랑(將仕郎)·전력부위(展力副尉)의 적처에게 봉작된 작호이다. ≪경국대전≫에 정9품과 종9품의 적처에게 봉하여진 봉호로 격하되었다. 이 칭호는 일반백성의
유인석 / 柳麟錫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위정척사론자·의병장(1842∼1915). 이항로의 문하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존화양이사상을 익혔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때에는 개항 반대운동을 전개하였고,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의병항전을 개시하였다. ‘위정척사’·‘존화양이’ 정신에 입각,
유인식 / 柳寅植 [종교·철학/유학]
1865년(고종 2)∼1928년. 한말의 민족운동가·교육자. 1907년 고향에 협동학교를 창설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1911년 서간도 봉천성 유하현 신흥강습소의 민간조직인 경학사의 교무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2월에는 서울에서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가 창
유일단 / 唯一團 [예술·체육/연극]
1912년 발족된 신파극단. 1911년 임성구 일행의 혁신단에 이어 등장한 극단으로 1916년까지 연극계를 주름잡은 대표적인 신파극단의 하나이다. 이기세가 개성좌를 짓고 유일단이라는 문사 극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개성을 극단의 근거지로 삼아서 단원들의 숙소까지 마련하
유일록 / 遊日錄 [문학/고전시가]
1902년이태직(李台稷)이 지은 기행가사. 1책. 국문본. 내용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단인 기사(起詞)에서는 1895년 여름에 공사를 일본에 파견하게 되었는데, 저자가 참서관(參書官)으로 임명되어 떠나게 된 여행동기를 노래하였다. 제2단인 승사(承詞)에서는
유장원 / 柳長源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유관현의 아들이다. 1763년(영조 39) 사마시로 나아갔다. 풍의가 준엄하고 단정하였으며 도량이 넓었다. 덕행을 쌓고 부모에게 효성스러웠으며 친구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만년에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 들어가서 고인들이 전하는 학문의 뜻을 터득하였다. 저서
유장춘 / 柳長春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메이지신궁대회에서 마라톤과 10,000m 육상경기에서 우승한 체육인. 1930년대부터 육상경기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특히 1,000m·5,000m·1만m 등의 장거리 종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다. 1934년 3월 21일 제4회 경영왕복마라톤대회에서
유재건 / 劉在建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법어』, 『겸산필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유창(劉敞)의 후손이었으나 가세가 몰락해 서리계급이 됐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며, 시와 글에 두루 능했고 특히 서예를 잘했다. 전서(篆書)·해서(楷書)에 뛰어났다고 한다. 오
유정 / 惟政 [종교·철학/불교]
1544-1610. 조선시대의 승려. 16세에 직지사 신묵에게 출가하였다. 18세 선과에 급제하였다. 32세에 봉은사 주지가 되었으나 거절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604년에 일본으로 가서 전쟁으로 잡혀간 3천여 명의 백성을 데리고 귀
유종춘 / 柳宗春 [종교·철학/유학]
1720년(숙종 46)∼1795년(정조 19). 조선 후기 문신. 유성룡의 후손, 부친은 나옹 유운이다. 1791년(정조 15) 유성룡의 후손으로서 음직에 천거되어 의금부도사 등을 역임, 수직으로 첨지중추에까지 올랐다. 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풍은군에
유주 / 柳澍 [종교·철학/유학]
1568(선조 1)∼1639(인조 17).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중번이다. 공부를 늦게 시작하였으나, 학업을 크게 성취하여 기재라는 평을 받았다. 1613년(광해군 5)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이이첨과 정인홍 등이 폐모론을 주장하자 포의의 신분으로 감히 입궐
유주목 / 柳疇睦 [종교·철학/유학]
1813년(순조 13) ∼1872년(고종 9). 조선 후기 유학자·의병장. 유성룡의 후손, 증조는 유광수, 조부는 유심춘이다. 1835년(헌종 1) 한성시에, 1842년(헌종 8)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회시에 낙방한 뒤 과거를 단념하고 돌아와 계당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
유중교 / 柳重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832∼1893). 김평묵과 함께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852년 이항로의 명으로 《송원화동사합편강목》을 편수했다. 1876년에는 선공감가감역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1881년 척사위정의 소론이 일어나자 김평묵과 함께 춘추의리론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