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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춘 / 柳帶春 [종교·철학/유학]
1603(선조 36)∼1691(숙종 17).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언. 성혼·이이의 문인이다. 1642년(인조 20)에 문음으로 예빈시봉사에 임명되었으나 입사하지 않았다. 그는 경서에 정통하고 문장이 능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사후에 국가에서 정문을
유덕장 / 柳德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묵죽화가(1675∼1756).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이정의 묵죽화풍을 이어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정·신위와 함께 조선의 3대 묵죽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유작으로〈설죽〉·〈설죽도〉·〈황강노절〉과 팔폭병풍 등이 있다.
유덕전 / 劉德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필사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본이 유일본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간에 하권이라는 표지로 미루어 분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유덕과 유현, 경태의 삼대에 걸친 가족이산과 남녀이합에 무용과 출세담이 가미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요내용은
유도 / 柔道 [예술·체육/체육]
2명의 경기자가 백색과 청색의 도복을 입고 메치기·굳히기 등의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여 승패를 겨루는 맨손무술경기.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와 자타공영(自他共榮)의 철학을 실현하려는 무예(武藝)로서 신체의 유연성과 근력 양성, 승부법과 정신수양에 적합한 운동이다. 공격
유도원 / 柳道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21∼1791). 학행으로 명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1790년(정조 14) 노인직으로 첨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주석학에 밝았다. 저서로《노애집》·《퇴계선생문집고증》·《일경록》 등이 있다.
유도헌 / 柳道獻 [종교·철학/유학]
1835년(헌종 1) ∼1909년(융희 3). 조선 말기 유학자. 증조는 유종춘, 조부는 유상조, 부친은 유진한. 생부 유진익과 생모 이휘승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이휘존의 딸, 둘째 부인은 황하진의 딸이다. 산림처사로 은거하면서
유동서원 / 酉洞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에 있었던 서원. 1725년(영조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유직(柳稷)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충의사(忠義祠)·상현당(尙賢堂)·신문(神門)·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청(典祀廳)·장서각
유동수 / 柳東秀 [예술·체육/체육]
대한제국기 우리나라 야구 발전에 밑거름이 된 체육인. 개화기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1909년 1월 동경에서 설립된 재일본 한국 유학생 단체인 대한흥학회(大韓興學會)의 설립에 참여하였다. 윤기현(尹冀鉉)·변희준(邊熙駿) 등과 같이 대한흥학회의 운동부를 맡아 모국을 방
유동열 / 柳東說 [역사/근대사]
187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105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망명, ‘대한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하였다. 상해임시정부 참모총장 등을 지내고 민족혁명당을 조직하였다. 광복 후 귀국, 초대 통위부장을 지냈다. 6·25 때 납북되었다.
유동하 / 劉東夏 [역사/근대사]
1892-1918. 독립운동가. 이명은 강로(江露). 함경남도 덕원 출신. 1909년 10월 노령 코트지로의 자택에서 아버지와 안중근(安重根)·우덕순(禹德淳)·조도선(曺道先)·김성화·탁공규(卓公奎)와 더불어 구국혁신을 맹세하는 ‘7인동맹’을 조직하였다. 1909년 10
유두면 / 流頭麵 [생활/식생활]
유두날 만들어 먹는 밀가루 국수. 유두절식의 하나이다. 원래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과 같이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아낸 것을 오색으로 물들여, 세개를 색실로 꿰어서 몸에 차거나 문설주에 걸어서 잡귀를 예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
유둔 / 油芚 [경제·산업]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 유둔은 종이부스러기를 물에 풀어 두꺼운 종이를 만든 다음 들기름을 먹여 만든다. 유둔은 기름을 먹여 만든 두꺼운 종이로 비를 막기 위한 천막이나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까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특히 천막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둔 한 장의
유득공 / 柳得恭 [역사/조선시대사]
1748(영조 24)∼1807(순조 7). 조선 후기의 실학자.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고, 시문에 뛰어난 재질이 인정되어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로 들어가 활약이 컸다. 그 뒤 제천·포천·양근 등의 군수를 거쳐 말년에는 풍
유득일 / 兪得一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12(숙종 38). 조선 후기의 문신. 정 증손, 할아버지는 여해, 아버지는 창, 어머니는 이척연의 딸이다. 박세채의 문인이다. 1677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사성, 대사헌, 이조참판,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유등정 / 柳等井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용천 지역의 옛 지명. 용천 남쪽 15리 지점에 있었다는 문헌상의 기록만 있을 뿐 변화과정은 불확실하다. 위치상으로 해안지방의 남창(南倉) 부근이 된다. 이 지역은 용호봉(龍虎峯)에서 뻗은 두 개의 산줄기가 해안 지역으로 뻗쳐 동서로 감싸고 있었다. 해안지방에
유록전 / 柳綠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활자본. 조선 인조 때의 문관 정몽세(鄭夢世)와 유록(柳綠)의 변화무쌍한 사랑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진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병자호란 때의 혼란상을 잘 그려내 사건전개에 유기적인
유릉알릉예홀기 / 裕陵謁陵禮笏記 [정치·법제]
일제에 의해 격하된 왕족, 종척 등이 1927년 4월 12일 순종과 비 순명효황후 민씨를 합장한 유릉에 가서 참배하는 의식 절차를 적은 홀기.
유림 / 柳林 [역사/근대사]
1894-196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인. 호는 단주(旦洲). 3·1운동 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 의정 의원과 국무위원 등을 지냈다. 광복 후 임시정부 비상국민회의 부의장·독립노동당 당수·대한국민의회 의장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
유림가 / 儒林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초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악장(樂章). 전체는 6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의 끝에는 “아궁챠락(我窮且樂)아 궁챠궁챠락(窮且窮且樂)아 욕호긔풍호무우(浴乎沂風乎舞雩) 영이귀(詠而歸)호리라 아궁챠락(我窮且樂)아 궁챠궁챠락(窮且窮且樂)아.” 하는 엽(葉)이 공통이다. 이
유마경 / 維摩經 [종교·철학/불교]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 구마라습과 지겸, 현장 등이 한역하였다. 그 가운데 구마라습이 번역한 <유마힐소설경>이 만히 읽혀지고 있다. 이 경은 공 사상에 바탕을 두고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대화가 중심적인 내용으로 엮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