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정치·법제 총 2,79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정치·법제
동별영 / 東別營 [정치·법제/국방]
조선 말기 훈련도감의 본영.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의동에 있었다. 훈련도감의 본영은 1594년(선조 27) 서부 여경방(餘慶坊)에 세워져 300여년간 사용하였으나, 고종 초에 동별영으로 옮겼다가 1882년(고종 19) 훈련도감이 혁파되면서 폐지되었다.
동부승지 / 同副承旨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승정원의 정3품 당상관직. 정원은 1인이다. 통정대부로 다른 승지들과 품계는 같았으나, 앉는 순서는 서벽(西壁)의 말석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서벽의 승지로서 직을 옮길 때 동벽의 승지에 비하여 약간의 차별이 있었으나, 후기에는 이러한 차별도 거의 없어지게 되
동산별감 / 東山別監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액정서에 소속된 대전별감. 대전별감은 왕의 시중과 호위를 담당하던 하례로서 42인이 지정되어 있었는데, 정조 때 그 중 2인으로 하여금 창덕궁 내의 건양현을 담당, 관리하게 하였다. 이들을 보통 ‘동산별감’이라 불렀다.
동서재장 / 東西材場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목재를 관장하던 관서. 동재장과 서재장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장(場)이란 국가에서 경영하는 산업장의 관부를 의미하며, 또 그 명칭으로 보아 목재와 관계가 있는 듯하므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목재의 저장과 조달을 관장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관원으로는 문종
동서활인원 / 東西活人院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빈민의 질병구료사업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1401년(태종 1) 고려의 제도를 본받아 동서대비원을 설치하였던 것을 1414년 동활인서와 서활인서로 개칭하였다. 그 뒤 1466년(세조 12)의 관제개혁 때 활인서로 통합, 관습적으로 동·서로 나뉘어
동수국사 / 同修國史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사관의 관직. 사관의 재상직은 한림원의 3품 이하 관직이 겸하는 수찬관들이 사관으로서 시정을 기록하고 실록을 편찬하는 일을 지휘·감독하였을 것이다. 1308년(충선왕 복위) 사관이 예문춘추관으로 되었다가 1325년(충숙왕 12)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 동
동영 / 東營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어영청의 한 분영. 어영청의 본영은 서울 남소문 동쪽에 있었는데,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신영(新營)·남소영(南小營)·동영·집춘영(集春營) 등을 설치하였다. 공해(公廨)의 하나는 선인문(宣仁門) 밑에, 다른 하나는 경희궁 개양문(開陽門) 밑에 있었다.
동정직 / 同正職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의 산직. 문반 정6품 이하와 무반 정5품 이하, 남반·이속·향리·승관 등에 설정되어 있었다. 같은 산직으로 문반 5품 이상, 무반 4품 이상에 두어진 검교직과 상하관계를 이루면서 하나의 산직체계를 구성하였다. 특히, 초입사직으로 활용되어, 음서를 통하여 입사
동지경연사 / 同知經筵事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경연청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 고려말 1390년(공양왕 2) 정월에 열린 경연에서 처음으로 동지경연사의 직함이 나타나는데 이때는 2인이 정원이었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국왕 자신이 경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1418년(세종 즉위년)에 지사·시강관과
동지공거 / 同知貢擧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예부시의 시관. 지공거의 보좌역으로 정원은 1인이다. 972년(광종 23)에 둔 적이 있으나 곧 폐지되었고, 1083년(순종 1)에 다시 두어 이후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다. 1315년(충숙왕 2) 지공거가 고시관으로 개칭됨에 따라 동고시관으로 바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