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22,135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검색결과
영천향교 / 永川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 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35년(세종 17)에 대성전을 건립하고, 1513년(중종 8)에 군수 김흠조(金欽祖)가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사인(士人)
영춘 / 永春 [지리/인문지리]
충청북도 단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旦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자춘(子春)으로 고쳐 내성군(奈城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때영춘으로 고쳐서 원주(原州)에 속하게 하였다. 1399년(정종 1) 영춘과 영월이 견아상입지형(犬牙相入地形
영춘악 / 迎春樂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 궁중에서 연행(演行)된 당악(唐樂)의 하나. 작자와 지은 연대는 미상이나 당악의 소곡(小曲)에 해당하는 산사(散詞)이므로 송(宋)나라 사람이 원작자였을 것이다. 전형적인 송사(宋詞)의 형식처럼 3·4·5·7자(字)의 장단구(長短句)를 자유로이 연결하였다. 『고
영춘추관사 / 領春秋館事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 춘추관에 두었던 정1품 관직. 정원은 1원이다. 조선시대에는 예문춘추관으로 있었는데 영관사 1원을 두어 시중 이상이 겸하게 하였다. 1401년(태종 1) 7월에 예문춘추관이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될 때에 실록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예문관과 춘추관
영춘향교 / 永春鄕校 [교육/교육]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상리에 있는 향교. 1399년(정종 1)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4년(광해군 6) 남천리로 이건하였으며, 화재로 소실되어 1659년(효종 10) 눌대(訥臺)로
영취산 / 靈鷲山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여수시 적량동·상암동·중흥동에 걸쳐 있는 산. 높이 510m. 『대동여지도』에는 영취산이라는 지명이 전국적으로 8곳이나 된다. 영취산은 불교와 관련된 지명으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王舍城) 주위에 있던 산인데 석가모니의 설법장소로 유명하다.
영친왕영지 / 英親王令旨 [정치·법제]
1901년(광무 5) 2월 영친왕이 경부철도회사의 주식 500주를 소유할 일로 감독 민영철(閔泳喆)로 하여금 대리로 대변하게 하는 문서. 당시 고종황제는 2,000주, 황태자인 순종은 1,000주, 영친왕은 500주를 각각 매수하였다. 1898년 9월 8일 한일양국의
영친왕이은황태자책봉사양상소문 / 英親王李垠皇太子冊封辭讓上疏文 [정치·법제]
1907년(융희 1) 8월 7일 경 순종황제의 이복 아우인 영친왕 이은(李垠)이 황태자의 책봉을 받고 이를 사양하여 올린 상소문. 이 상소문에 대해 순종은 '내가 질병으로 후사를 두기가 어려우며, 조종조의 고사도 있으니 사양하지 말라'는 취지의 비답을 내렸다.
영친왕자사 / 英親王字辭 [정치·법제]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 영친왕(英親王)에게 '광천'이라는 자를 의정하여 지어준 데 대한 자사(字辭) 단자. 《고종실록》에 의하면, 1907년 2월 27일에 영친왕의 정자 망단을 올려 '광천'으로 정했다. 영친왕 이은(李垠)은 1900년 8월에 영
영친왕혼례식폭격대의거 / 英親王婚禮式爆擊隊義擧 [역사/근대사]
일본의 강제적이고 정략적인 한국지배정책의 합리화를 위하여 영친왕 이은과 일본왕실의 딸 이방자와의 혼례식을 파괴하려던 의거. 1920년 4월 28일 영친왕과 이방자와의 혼례식이 일본 동경에서 개최되었는데, 사이토를 비롯한 조선총독부 수뇌부와 친일매국노 이완용 등이 이 혼
영탄법 / 詠嘆法 [언어/언어/문자]
수사법 중 강조법의 하나. 극한 느낌, 심각한 고뇌, 고조된 정감 등을 주로 정서면에 호소하여 감상적으로 표현하는 수법이다. 대개는 ‘아아, 오오, 어머나, 아이구’ 등과 같은 감탄사를 사용하여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증오, 욕망 등과 같은 감정을 강하
영파 / 寧波 [지리/인문지리]
고대 한중 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중국 절강성 동북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고대 이래로 대외무역항인 영파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쪽 출발지 항’ 역할을 하였다. 청대에는 일본과 구리를 거래하기도 하였다. 아편전쟁 이후 상해로 유입된 영파 상인들은 황포강 유역을 기반으로
영평 / 永平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포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양골현(梁骨縣)으로,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에 속하였으나 광개토왕 이후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동음(洞陰)으로 고쳐 견성군(堅城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 동주(東州)에 예속시켰으며, 예
영평 조록나무 / 寧坪― [과학/식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영평동에 있는 조록나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1호. 영평의 조록나무는 개인의 과수원 안에 있는데 나무의 높이 약 14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3m, 수관(樹冠) 지름 12m에 이르는 노거목이다. 땅 위 3m되는 곳에서 줄기가 크게 4갈래로 갈
영평천 / 永平川 [지리/자연지리]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광덕산(廣德山)의 서부 자등현(自等峴)과 광덕현에서 발원하여 군을 흘러 한탄강(漢灘江)으로 흘러드는 하천. 길이 40㎞. 광덕현에서 흘러나온 물은 동쪽의 백운산 물을 합쳐 이른바 영평팔경(永平八景)의 하나인 선유담(仙遊潭)을 만들어 산수가 수려한
영풍 / 榮豊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있었던 지명. 영주와 풍기가 합쳐져 생겨난 명칭이다. 고려 통일 이후 안동부의 관할 지역이 되었는데 신라시대 내령군은 강주(剛州)로, 급산군은 흥주(興州)로, 기목진은 기주현(基州縣)으로 개명되었다. 강주에는 995년(성종 14)에 도단련사(都團練
영풍 / 永豊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안변 지역의 옛 지명. 1001년(목종 4) 이곳에 성을 쌓아 진(鎭)을 설치하여 동계(東界)에 예속시켰다가 뒤에 현을 설치하였다. 조선 초기에 안변군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뒤에 직촌화하였다. 영풍은 고려 초기에 국경지대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였던 곳으로 조선 말
영풍창 / 永豐倉 [경제·산업/경제]
고려시대 부성에 설치되었던 조창. 세곡의 운송을 위하여 적재량이 1,000석(石)인 초마선 6척이 배속되어 있었고, 외관록 20석을 받는 판관이 주재하면서 창고 관리인인 향리와 뱃사공인 초공·수수들의 조운을 지휘, 감독하였다. 이곳에서는 충청남도 서부지역의 세곡을 수
영한사전 / 英韓辭典 [언어/언어/문자]
1891년 스코트( Scott, J.)가 편찬한 영한사전. 이 책은 당시에 나온 다른 책과는 달리 각 장마다 얇은 간지가 끼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언더우드의 ≪영한사전≫(1890)에 이어 나온 두번째의 영한사전이다. 서문에는 사전 편찬의 어려움 및 사전편찬의
영해 / 寧海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우시군(于尸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유린군(有隣郡)으로 바꾸어 명주의 영현을 삼았다. 940년(태조 23) 예주(禮州)로 바뀌었고, 현종 때는 방어사를 두었다. 1259년(고종 46) 위사공신(衛社功臣) 박송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