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총 22,135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검색결과
영종대교 / 永宗大橋 [지리/인문지리]
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장도)과 중구 운북동(영종도)을 연결하는 다리. 2009년 10월인천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영종도 및 인천국제공항을 내륙 지역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민자 고속도로의 비싼 통행료(2010년 기준 승용차 편도 통행료 7,500원)로 인해 지
영종도 / 永宗島 [지리/자연지리]
인천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섬.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8㎞정도 떨어져 있다. 동경 126°31′, 북위 37°29′이며, 면적 125.7㎢, 인구 74,448명(2019년 3월 현재)이다.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연도로 나와있는 섬이다. 1973
영주 / 永州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옛 지명. 신라의 절야화군(切也火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임고군(臨皐郡)으로 고쳤으며 영현(領縣)으로 도동(道同)ㆍ임천(臨川)ㆍ장진(長鎭)ㆍ신녕(新寧)ㆍ민백(黽白)이 있었다. 940년(태조 23) 도동ㆍ임천을 합쳐 영주라고 하고, 99
영주 / 英州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길주 지역의 옛 지명. 1108년(예종 3) 윤관(尹瓘)이 여진을 몰아낸 다음 몽라골령(蒙羅骨嶺) 아래에 성을 쌓고 안령군영주방어사(安嶺軍英州防禦使)를 설치하였다. 그 뒤 1109년 성을 철거하고 그 땅을 여진에게 다시 돌려주었으나, 공민왕 때 수복하고 139
영주 / 迎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영변 지역의 옛 지명. 1429년(세종 11)연산(延山)과 무산(撫山)이 합쳐 영변대도호부가 되기까지 영주는 독립된 현으로 존속하였다. 영주는 본래 고려의 밀운군(密雲郡, 또는 安朔)이었는데, 970년(광종 21) 연주(延州)로 고쳐 지주(知州)로 삼았고, 성
영주 / 靈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의 흥화진(興化鎭)이었는데, 1030년(현종 21) 주(州)로 승격하여 방어사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를 폐하고 의주에 내속시켰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에 있어 국방상의 요지였다. 백마산성(白馬山城)에서
영주 / 寧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안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식성군(息城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중반군(重盤郡)으로 고쳤다. 고려 태조 때 팽원군(彭原郡)으로 고쳤으며, 931년(태조 14) 안북부(安北府)를 설치하였고, 983년(성종 2) 영주안북대도호부(寧州安北大都護府)라고
영주대동상점사건 / 榮州大同商店事件 [역사/근대사]
1916년경상북도 영주의 대동상점내에 조직된 항일비밀결사에서 벌인 항일운동. 여기에서 경상북도일대 각급 학교에 항일선전유인물을 제작, 배포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다가 발각되어 주모자 최형일 등 10여 명이 영주경찰서에 붙잡혀 신문을 받았으며, 2개월간 고문 끝에 석방되
영주재방일기 / 瀛洲再訪日記 [문학/고전산문]
조선 후기에 민우룡(閔雨龍)이 지은 비망록. 단책. 필사본. 여기에는 제주도로 출행하기 이전인 1776년 11월 이전에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그 뒤에 제주도로 들어가는 노정(路程)과 항정(航程), 그리고 그간의 천후(天候)와 가는 길에 얽힌 인정과 세태를 담았다.
영주향교 / 榮州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향교. 1368년(공민왕 1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학덕 있는 사람의 신주를 모시는 것)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433년(세종 15)에 군수 반저(潘渚)가 중수하고, 1577년(선조 10)에
영중추부사 / 領中樞府事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중추부에 두었던 정1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1466년(세조 12) 종래의 중추원을 중추부로 개편하면서 처음 두었고,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에 의한 관제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의 중추부는 형식상 서반의 최고관부로 편제되었을 뿐 일정한 소관사
영지 / 靈芝 [과학/식물]
다공균과에 속하는 적지(赤芝)와 자지(紫芝)의 자실체(子實體:버섯). 근래에는 약효가 우수하다고 하여 각처에서 인공재배를 하고 있어 널리 퍼지고 있다. 성분 중에는 수용성의 단백질을 비롯하여 알칼로이드와 다당류를 함유하고 있다. 동물실험의 결과를 보면 중추신경계통에 작
영지무 / 影池舞 [예술·체육/무용]
조선 순조 때 창작된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 6명이 영지(影池)를 가운데 두고 3명은 영지 앞에 3명은 영지 뒤에 서서, 서로 마주보면서 춘다. 영지의 그림은 순조 무자 『진작의궤 進爵儀軌』에 전하는데, 그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사방 6척 정도의 크기로 네모진
영진군 / 營鎭軍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지방의 요새지인 영·진을 지키던 군대. 조선 초기 ≪경국대전≫에 의하면 당시 외방의 군사체제로 육수군과 기선군이 있었다. 이 육수군에 들어가는 군대로는 번상숙위하는 시위패·영진군 등이 있다. 그러나 지방 수호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영진군이었다. 영진군은 13
영천 / 榮川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내사군(奈巳郡)이었는데, 신라의 파사이사금 때 신라 영토로 되어 군을 설치하였다. 757년(경덕왕 16)에 내령군(奈靈郡)으로 고쳐 삭주(朔州) 소속의 군이 되었다. 940년(태조 23) 강주(剛州)로 고쳤으며 1018년(
영천곰굴 / 令泉―窟 [지리/자연지리]
충청북도 단양군 매포읍 영천리에 있는 석회동굴. 지질은 고생대의 대석회암통에 속한 영월층군(寧越層群)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약 4, 5억년 이전에 생성된 것이다. 동굴이 있는 지역일대는 남한강의 지류인 매포천(梅浦川)과 안동천(安東川) 등이 개석하고 있으며 선사시
영천댐 / 永川─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와 노항리에 있는 낙동강 지류인 금호강의 용수댐. 높이 42m, 제방 길이 300m이며, 총저수용량은 9640만t이다. 1974년 10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해발고도 150m에 위치한다.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뒷산과
영천비음기 / 靈泉碑陰記 [문학/고전산문]
고전산문. 영천(靈泉)은 장릉(莊陵)의 제정(祭井)으로, 서영보(徐榮輔)의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3책에 《영천입석기(靈泉立石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1791년(정조 15) 찬술되었다.
영천서원 / 寧川書院 [교육/교육]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있는 서원. 1619년(광해군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처순(安處順)·정환(丁煥)·정황(丁熿)·이대유(李大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6년(숙종 12)에 ‘영천(寧川)’이라고 사액되어 선현 배향과
영천어은동유적 / 永川漁隱洞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어은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분묘 유적. 출토유물 및 발견상태 등으로 미루어 움무덤[土壙墓]계통임이 확실하다. 유물은 한(漢)의 일광경(日光鏡)을 비롯해 방제경(倣製鏡), 팔찌, 호형(虎形)ㆍ마형(馬形)띠고리, 장식단추, 사슴머리[鹿頭], 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