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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영국 파견 특명전권공사 閔泳煥 해임장 [정치·법제]
고종이 특명전권공사로 영국 수도에 가 있던 민영환의 해임을 영국 군주 및 오인도 후제에게 알리기 위해 작성한 해임장. 고종의 친필 서명과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라고 새긴 국새가 찍혀 있다. 1897년(건양 2) 9월 21일에 작성하였다.
영국공신 / 寧國功臣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인조 때 심기원사건을 다스리는데 공을 세운 이에게 내린 칭호 또는 칭호를 받은 사람. 역모사건을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사람으로서 1등은 구인후·김류 등 2인으로 효충분위병기결책영국공신이라 하였고, 2등의 황헌·이원로에게는 효충분위병기영국공신이라 하였다. 영국공
영귀서원 / 詠歸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현정리에 있는 서원. 1694년(숙종 2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인후(金麟厚)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옥과면 죽림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29년(영조 5)에 유팽로(柳彭老)와 신이강(辛二剛)을 추가 배향하고, 1797년(정조 21
영기 / 令旗 [역사/조선시대사]
전통시대 농민 사이에서 농악을 연희할 때 장식용으로 쓰던 기. 원래는 군사상 군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작은 기였다. 농민 사이에서 쓰이는 영기는 약 60-70㎝의 정방형의 작은 기이다. 약식 농악 연희 때에는 영기 하나를 논두렁에 세워놓고 연희한다. 이러한 작
영남가 / 嶺南歌 [문학/고전시가]
1635년(인조 13)박인로(朴仁老)가 지은 가사. 작자가 75세 때 당시 영남안절사로 와 있던 이근원(李謹元)의 덕치(德治)를 찬양하여 읊은 것으로 『노계집 蘆溪集』에 실려 있다. 전문 56절 114구로 되어 있다. 관청과 촌락이 모두 무사하고, 남녀는 길을 갈 때
영남가단 / 嶺南歌壇 [문학/고전시가]
16세기 중엽 이후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가 활동을 한 집단. 가단은 특정한 시기에 우리말 노래를 창작하고 향유하는 활동을 전개한 집단이다. 영남가단은 16세기 중엽 이후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동일한 신분의 일정한 구성원이 일정한 공간을 바탕으로 시가 활동을 한 집단
영남내륙공업지역 / 嶺南內陸工業地域 [지리/인문지리]
대구광역시를 중심으로 하고 구미·김천·경산·칠곡·영천 등지를 포함한 영남 내륙에 형성된 공업지역. 영남내륙공업지역은 1994년 현재 사업체 수나 종업원 수에 있어 전국의 10%를 넘는 비중을 가지고 있으며, 약 39만 여명의 종사자가 이 지역의 제조업에 고용되어 있다.
영남도 / 嶺南道 [정치·법제/법제·행정]
지명. 고려시대 지방 행정구역인 10도의 하나. 현재 상주·대주(尙州)·강주·용주·계주·선주·길주만 ≪고려사≫ 지리지 등에서 확인된다. 이후 영남도는 영동도 및 산남도와 함께 1106년(예종 1)에 경상진주도로 불렸다. 1171년(명종 1)에는 경상주도와 진합주도로
영남로 / 嶺南路 [지리/인문지리]
한성(漢城)에서 부산에 이르는 조선시대의 간선로. 한성을 중심으로 뻗어 있던 조선 시대 9대 간선로 가운데 하나로 전체 길이는 약 960리였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분포하였던 주요 지선은 29개였으며, 이 도로가 지나는 유곡역(幽谷驛)에서 통영(統營)으로 가는 조선 시
영남루가 / 嶺南樓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규방가사. 밀양의 영남루(嶺南樓)를 찾아 하루를 즐기면서 누각의 풍모를 읊은 경물가사(景物歌辭)이다. 2음보 1구로 하여 모두 80구이다. 음수율은 3·4조가 주조를 이루고, 다음은 4·4조가 부주조를 이룬다. 영남 71주의 여러 명승지 가운데에 특히
영남악부 / 嶺南樂府 [문학/한문학]
1808년(순조 8)이학규(李學逵)가 지은 영사악부시(詠史樂府詩). 「영남악부」의 체재는 자서(自序)와 총 68수의 시편으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시편은 산문으로 된 시서(詩序)가 있어 시 내용을 개괄하고, 그 다음에 본시가 이어져 있다. 시의 형식은 정형체를 따르지 않
영남암행어사여준영봉서 / 嶺南暗行御史呂駿永封書 [정치·법제]
1798년(정조 22). 정조가 여준영을 암행어사로 봉하며 영남지방의 공진을 감찰하라는 문서. 《홍재전서》에 이 내용이 실려 있어 이 문서가 발급된 시기를 알 수 있다. 내용은 영남지방의 공진이 오히려 폐단을 낳자, 암행어사를 보내어 대구, 밀양, 하양, 용궁, 청하,
영남영화사 / 영남영화사 [예술·체육/영화]
1936년 이규환이 대구 친구들의 후원으로 만든 영화사. 첫작품은 자신이 모든 분야를 담당하여 <무지개>, <그후의 이도령>을 발표하고, 그후 손전이 계승하여 <내가 넘은 38선>, <공포의 밤>을 제작 발표했다. 1957년에 김상만이 다시 승계하여 조긍하를 감독으로
영남위유어사봉서 / 嶺南慰諭御使封書 [정치·법제]
1794년(정조 18). 정조가 이익운을 영남 위유어사로 보내면서 내려준 봉서. 이 봉서에는 이익운으로 하여금 위유하는 윤음을 반포하게 함과 동시에 암행어사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질고와 수령들의 근만 등을 염찰하는 등 14개 조목으로 수행해야할 임무를 열거하고 있다.
영남지괴 / 嶺南地塊 [지리/자연지리]
소백산맥의 남동측에 있는 긴 변성암 지괴. 소백산맥에 거의 평행하게 북동∼남서로 연장되어 있다. 그 북동단은 동해안의 울진에서 시작하여 태백산·예천·상주를 지나 소백산맥의 남반부와 지리산·광주·목포를 잇는 선을 따라 총 연장 약 500㎞, 평균폭 약 45㎞의 지대를 이
영남지방 / 嶺南地方 [지리/인문지리]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와 경상남도, 경상북도를 아우르는 별칭. 북부 지역은 산지가 많아 미곡 생산과 함께 각 지역마다 특산물이 다양하고 농업의 지역차가 나타난다. 즉 논농사 지대·밭농사 지대·논밭 혼합농업 지대·원예 농업지대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 남부
영녕 / 永寧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송화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웅한이(熊閑伊)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에 경덕왕이 영녕으로 고쳐 중반군(重盤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 풍주(豊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신주(信州)로 이속하였다. 1396년(태조 5)가화현(嘉禾縣)에 속하였다
영덕대소산봉수대 / 於達山烽燧臺 [경제·산업/통신]
경상북도 영덕군대소산에 있는 봉수대. 경상북도 기념물 제37호. 대소산은 해발 282m의 영덕 동남쪽 해안의 주봉인데, 산의 정상부에 지형을 이용하여 직경 약 20m 되는 넓이의 둘레에 대석을 쌓아 올렸으며, 그 안에 원추 모양의 직경 11m, 높이 2.5m의 봉돈(烽
영덕향교 / 盈德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1914년 향교 자리에 영덕공립보통학교를 신설하면서 향교의 대성전과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게 되자 화개
영도 / 影島 [지리/자연지리]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는 섬. 동경 129°06′, 북위 35°05′에 위치하며, 부산만 남서쪽에 있다. 면적은 14.12㎢이고, 해안선 길이는 30.82㎞이다. 섬 전체가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해당하며, 행정동 11개와 법정동 21개로 구성된다. 1934년 11월과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