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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김세용 / 金世用 [역사/근대사]
1907-1966년. 독립운동가. 본관은 공주. 대구 출신. 1940년 4월 중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였으며, 그뒤 광복군으로 귀속되었다. 그뒤,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특과총대원대 한청반(中央戰時幹部訓練第四團特科總大員隊韓靑班)에서 군사
김세용 / 金世鏞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42년(영조 1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좌랑 김학배, 외조부는 개성 선무랑 고이절, 처부는 도이망이다. 적암 김태중·갈암 이현일·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제산 김성탁과 도의로써 교의를 맺었으며, 평생을 처사로 지냈다. 만년
김세탁 / 金世鐸 [역사/근대사]
1874-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鳳洙).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신민회(新民會)회원으로 1911년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복역하던 중 1913년 제2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
김세평 / 金世平 [종교·철학/유학]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증조부는 김광재, 조부는 김경룡, 부친은 진주목사 노암 김종일이다. 1665년(현종 6)에 건원릉참봉을 지냈고 익위위수에 임명되었다. 외직으로 두 고을 다스려 모두 훌륭한 치적을 남겼으며 청백리로 뽑혔다. 숙종 때 훈련원 대장으로 제수
김세필 / 金世弼 [종교·철학/유학]
1473(성종 4)∼1533(중종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첨정 김훈, 어머니는 송학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십청헌집』4권이
김세호 / 金世鎬 [종교·철학/유학]
1806(순조 6)∼1884(고종 21). 조선 후기의 문신. 황주목사 김진교의 아들이다. 경상좌도암행어사로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였다. 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침수지를 고지대로 이주·포항진 복설·해안방비 강화 등에 힘썼다. 그 후 직무 태만과 변흔으로 유배되었다 풀려나
김세환 / 金世煥 [역사/근대사]
1889-1945년.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중앙지도체 48인 가운데 한 사람. 경기도 수원 출신. 보성중학교와 일본 주오대학을 졸업한 뒤 수원상업회의소에 근무하였다. 미국인 선교사 밀리의 후원을 받아, 수원의 삼일남녀학교(三一男女學校)를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전념하
김세흠 / 金世欽 [종교·철학/유학]
1649(인조 27)∼1721(경종 1). 조선 후기의 문신. 김시주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임, 아버지는 주부 김삼기, 어머니는 김광수의 딸이다.1687년(숙종 1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3년 홍문록·도당록에 올랐다. 부수찬·지평 등을 역임하고 1698
김소동 / 金蘇東 [예술·체육/영화]
1911-1988년. 일제 강점기 영화인·작가·평론가. 본관은 함창(咸昌)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상주(尙州)이다. 1947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영화이자 유성영화(有聲映畵) 〈목단등기(牧丹燈記)〉를 감독하였다. 1956년 영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감독하였다.
김소랑 / 金小浪 [예술·체육/연극]
생몰년 미상. 신극 초창기 신파배우. 본명은 현(顯). 1911년 초겨울에 임성구(林聖九)가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했을 때, 창립단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신극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뒤, 혁신단의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1918년 2월 혁신단으로부터 독립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