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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계몽운동 / 愛國啓蒙運動 [역사/근대사]
1905-1910년 사이에 전개된 개화자강파의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양성운동의 총칭. 애국계몽운동은 한말 한국 민족의 국권을 빼앗아간 일본 제국주의의 ‘실력’과 국권을 빼앗긴 한국민족의 ‘실력’의 격차를 객관적으로 인식한 한국인들이 자기 민족의 ‘힘’과 ‘실력’을 양성
양재홍 / 梁在鴻 [역사/근대사]
1881-미상.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정동근(鄭東根)·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
양전백 / 梁甸伯 [역사/근대사]
1869∼193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격헌(格軒), 평안북도 선천 출신이다. 26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897년 예수교장로회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선천 북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하였다. 1919
양제안 / 梁濟安 [역사/근대사]
1860-1929. 의병장·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도(碧濤).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76년(고종 13) 병인양요 때 격문을 만들어 척양척왜를 주장하였으며, 1894년 충청북도 진천에 의병총본영을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 훈련시켜, 1895년 이기찬(
양준명 / 梁濬明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12년 데라우치(寺內正毅)조선총독암살사건 연루 혐의로 일본경찰에 잡혀 1심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19년 2월 신성중학교(新星中學校)교사 때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로 교회목사
양지아문 / 量地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1898년 탁지부 내에 설치되었다. 1901년 전국적인 흉년으로 양전사업이 중단되었고 양지아문은 1902년 지계아문에 통합되었다. 관원으로 총재 3인, 부총재관 2인, 기사원 3인, 서기 6인 등이 있었다.
양창을 / 梁昌乙 [역사/근대사]
190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 정부의 국내주재(國內駐在) 대원(隊員)으로서 천마대(天摩隊)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위원(渭原)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을 담당하였고, 또
양한나 / 梁漢拿 [역사/근대사]
1893-1976. 독립운동가·사회사업가. 부산의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진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비조달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1911년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제1회졸업생이 되었다. 마산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7년간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양한묵 / 梁漢默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2-1919). 1902년 동학에 입교하고, 손병희 등과 함께 이용구로 하여금 진보회를 결성하게 했다. 1905년 귀국하여 헌정연구회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7일 김상규의 집에서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3월 1일 오후
양한위 / 梁漢緯 [역사/근대사]
1883-1949.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0년 8월 나라를 잃게 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뜻을 둔 맹보순(孟甫淳)·양기탁(梁起鐸)·이병옥(李秉玉) 등 10여명과 수시로 회합, 협의하면서 독립운동의 기본방략을 수립하고 그 기반 조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