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예술·체육 총 1,83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예술·체육
김소진 / 金少珍 [예술·체육/연극]
생몰년 미상. 한국신극사상 최초의 여배우. 1917년 2월 신파와 창극의 혼합을 제창하고 나선 극단 개량단에 최초의 여배우로서 등장하였다. 원래 기생출신으로 창을 잘했기 때문에 여배우로 뽑혔고, 창극계통에서도 촉망받았다. 우리 신극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여형배우(女形俳優
김수악 / 金壽岳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12호「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읍 출생. 아버지 김종옥은 국악애호가에 한량이었고,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권번의 가야금 선생이었다. 9세에 진주권번에 들어가 김옥민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김
김수온부조묘 / 金守溫不祧廟 [예술·체육/건축]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김수온을 배향한 사당.시도기념물.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목조맞배집 건물. 충청북도 기념물 제48호. 조선 초기의 문신 김수온을 제향하는 사당이다.본래는 1487년(성종 18) 왕명으로 보은읍 종곡리에 세웠는데, 1664
김숙자 / 金淑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경기도 도당굿 도살풀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김숙자의 조부 김석창(金碩昌)은 경제(京制) 명창이었고, 부친 김덕순(金德順)은 판소리, 경기무악, 민속악의 재인으로 화성 재인청과 안성 신청에 속했으며,
김시습 초상 / 金時習 肖像 [예술·체육/회화]
조선시대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의 초상. 보물 제1497호.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72㎝, 가로 48.5㎝.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무량사(無量寺)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金時習)을 그린 영정이다.
김씨괴정본중금보급방향보 / 金氏槐庭本中芩譜及方響譜 [예술·체육/국악]
조선후기 궁중 악사들이 「여민락」·「취타가악」·「방향령보」 등을 수록한 악보. 1책. 사본. 송석하(宋錫夏)의 『현존조선악보(現存朝鮮樂譜)』(1943)에 소개된 내용은 「여민락(與民樂)」·「미후입리(尾後入里)」·「관악보허자(管樂步虛子)」·「미후리(尾後里)」·「취타가악
김억득 / 金億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일제강점기의 국악가.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쌍교동(雙橋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김사문(金士文)이다. 성품이 호협하고 생각이 진취적이며, 창의력이 뛰어나 문예활동이 왕성했다. 전국의 명창, 명기들을 모아 서울에서 협률사(協律社)를 조직하였고, 《
김영길 / 金永吉 [예술·체육/대중음악]
1909-1985년. 일제 강점기 가수·영화배우. 창씨 개명한 이름은 나가타겐지로[永田絃次郞]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이다. 1928년 평양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동경일일신문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서 3년 연속 입상하였다. 1
김영태 / 金榮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초개수첩』·『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저술한 시인.화가·연극평론가·무용평론가.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김옥주 / 金玉珠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시 동래동에서 살았다. 소학교 졸업후 김자진(金子眞)으로부터 검무를 배워 23년간 무용계에 종사하였으며, 1967년 1월「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