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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잠조합 / 養蠶組合 [경제·산업/경제]

    1910년대 초에 일제가 조선을 잠업원료공급지로 개편하기 위해 만든 조합. 일제는 잠사원료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서 조선에 양잠장려정책을 강압적으로 실시하였고, 이를 담당할 기구로 양잠조합을 각 군과 도(島) 단위로 설치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은 뽕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고

  • 양재의식 / 禳災儀式 [종교·철학/불교]

    불교에서 행하는 천재지변의 소멸을 기원하는 종교의식. 양재를 목적으로 하는 불교의식은 문두루법(文豆婁法), 다라니의 송주 등 밀교의 비법으로 행하여진다. 고려시대에는 양재를 위한 불교의식이 궁전에서 자주 행하여졌다. 그것은 국왕의 정치적 기능이 천재지변에 대응한다는 데

  • 양재천 / 良才川 [지리/자연지리]

    경기도 과천시에서 발원해 서울특별시 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 탄천(炭川)으로 유입하는 하천.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양재동은 쓸 만한 인재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재천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공수천(公需川),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양재홍 / 梁在鴻 [역사/근대사]

    1881-미상.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정동근(鄭東根)·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

  • 양전 / 量田 [경제·산업/경제]

    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한 전지의 넓이를 측량. 양전의 방식은 조세법과 함께 변천하였다. 조선초기 양전법은 세종 26년(1444)에 공법이란 이름아래 전분육등·연분구등의 정액세법으로 변경. 전지의 등급이 여섯으로 세분되는 한편, 척의 길이도 종래 농부의 수지에 의거하던

  • 양전백 / 梁甸伯 [역사/근대사]

    1869∼193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격헌(格軒), 평안북도 선천 출신이다. 26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897년 예수교장로회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선천 북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하였다. 1919

  • 양전편고 / 兩銓便攷 [언론·출판]

    저자 고종(1852-1919). 목활자본. 2권 2책. 책은 구성은 1책은 62장, 2책은 41장이다. 이 책은 1865년(고종 2) 고종의 명으로 편찬된 인사 행정에 관한 법규와 관례를 모은 업무 지침서이다. 제목에 '양전'은 이조와 병조를 합한 것이며, '편고'는

  • 양정온천 / 楊亭溫泉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명천군 양정리에 있는 온천. 명천군의 서쪽 경계는 함경산맥에서 뻗어온 만탑산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산줄기와 나란한 방향으로 화대천이 남동쪽으로 흐르는데, 양정온천은 화대천의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명천읍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곳이다. 온천의 이름은

  • 양정재집 / 養正齋集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문인 김도응(金道凝)의 문집. 1권 1책. 목활자본. 저자가 죽은 지 180년 뒤에 9세손 종협(種協)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심응태(沈膺泰)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7세손 현구(顯龜)와 9세손 용배(容培)·종협의 발문이 있다. 시 94수, 부(賦) 3편

  • 양제안 / 梁濟安 [역사/근대사]

    1860-1929. 의병장·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도(碧濤).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76년(고종 13) 병인양요 때 격문을 만들어 척양척왜를 주장하였으며, 1894년 충청북도 진천에 의병총본영을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 훈련시켜, 1895년 이기찬(

  • 양주 / 楊州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가사내용과 창작동기는 전하지 않으며, 단지 노래의 소용과 불린 장소만이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전하고,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양주는 고려시대의 한양부(漢陽府

  • 양주 / 梁州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삽량(歃良)이었는데, 665년(문무왕 5) 상주(上州)와 하주(下州)를 합쳐 삽량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지명을 한자명으로 고칠 때 양주(良州)가 되었고 헌양(巚陽)을 속현으로 하였다. 940년

  • 양주동 / 梁柱東 [문학]

    1903-1977 국문학자.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되었다. 카프문학운동에 맞서 국민문학운동을 전개, 신라 향가를 연구 국어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45년 동국대 교수,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 1958년 연세대

  • 양주백수현가옥 / 楊州白壽鉉家屋 [생활/주생활]

    경기도 양주군 남면 매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28호. 명성황후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피난할 집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안채의 일곽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원래 사랑채와 별당채가 더 있었다고 하며 안채, 행랑채 밖에 사랑채의 터전이 남아

  • 양주봉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필사본·활자본. 양주봉과 장소저는 어려서 혼약한 사이이다. 간신 왕승상의 참소로 양주봉의 가족이 흩어져 위기에 빠지자, 장소저의 부모도 세상을 떠난다. 장소저는 왕승상 부자의 핍박을 피하여 남장을 하고서 방랑하다가 장군 서운경의 제자로

  • 양주삼 / 梁柱三 [종교·철학/개신교]

    1879-미상. 목사·사회사업가. 평안남도 용강 출신. 20세에 기독교에 입교하고 상경, 양잠전습소(養蠶專習所)에 다니던 중 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외국유학길에 올랐다.1901년 상해(上海) 중시학원(中西學院)에 입학하여 감리교세례를 받았으며, 1905년 이 학교를

  • 양주소놀이굿 / 楊州─ [문학/구비문학]

    경기도 양주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굿 형식의 연희(演戱).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소굿·쇠굿·소놀음굿·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경사굿의 일부로 제석거리에 이어 행해진다. 「양주소놀이굿」은 단순한 농경의례나 무속에서 벗어나 무당과 원마부·곁마부 사이의 대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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