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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화답가 / 良辰和答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형식은 2율각(律刻) 1구로 헤아려 모두 83구이다. 음수율은 4·4조가 52구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3·4조가 28구이며, 2·4조, 3·3조, 4·3조가 각 1구씩으로 되어 있다. 좋은 계절을 맞이하여 김소저(金小姐)와 박주사(朴
양씨아미본풀이 / 梁氏─本─ [문학/구비문학]
제주도 무속의 조상본풀이의 하나. 서귀포시 남원읍 예촌(禮村: 지금의 신례리·하례리)의 양씨집안에 계승되는 수호신의 내력담이다. 이들 집안에서 굿을 할 때 심방(무당)에 의하여 불려진다. 현재 1편이 채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예촌 양좌수 집안에
양양 오색리 오색약수 / 襄陽五色里五色樂水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있는 약수터. 천연기념물 제529호. 양양 서쪽 20㎞, 한계령 동남쪽 5㎞ 지점에 위치하며, 설악산 대청봉에서 서남쪽으로 8㎞ 지점에 있다. 약수마을에서 개울을 따라 200m 정도 가다 보면 대구집교라는 다리 밑 너럭바위 위의 암반에서 약
양양 포매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 / 襄陽 浦梅里 白露─繁殖地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포매리에 있는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 천연기념물 제229호. 면적 267,892㎡. 양양에서 남쪽으로 국도를 따라 약 25㎞ 지점에서 서쪽으로 600m, 해안에서는 700m 떨어진 구릉에 번식지인 적송림이 올려다 보인다. 백로와 왜가리는 70∼8
양양가평리주거지 / 襄陽柯坪里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가평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상면의 동북모서리 부분에 진흙더미 속에 묻힌 노지(爐址)가 드러났다. 노지의 구조는 불확실하나 부뚜막과 같은 시설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20∼30㎝, 두께 5㎝ 정도의 네모진 벽돌모양의 돌이
양양곡 / 襄陽曲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이달(李達)이 지은 한시. 봄날의 한가한 서정을 강원도 양양 지방의 풍물에 담아 노래한 시이다. 칠언절구로, 『손곡집(蓀谷集)』과 『국조시산(國朝詩刪)』 권3 등에 수록되어 있다. 1·2구에서는 큰 둑의 서쪽 너른 호수에 해가 지려고 하는데, 꽃 아래 노니
양양광산 / 襄陽鑛山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양군 서면 장승리에 있었던 자철광산(磁鐵鑛山). 지질은 편마암(片麻岩)·섬장암(閃長岩)·변질석회암(變質石灰岩)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접촉광상(接觸鑛床)으로서 대체적인 경사는 50∼70°NE이며, 광맥이 일정하지 않고 변동이 심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소규모로 개
양양국제공항 / 襄陽國際空港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공항로에 있는 국제공항. 양양국제공항 부지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및 한국 공군의 임시 이착륙을 위한 활주로였던 곳이다. 1986년부터 영동지역 관광산업 발전 및 교통편의 개선을 위하여 신 국제공항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하였으며, 1996년 2월 기
양양향교 / 襄陽鄕校 [교육/교육]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임천리에 있는 향교. 고려 충혜왕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 존무사(存撫使) 안축(安軸)이 양양부 구교리(舊校里)에 설립하였다 하며, 조선시대에 와서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682년(
양어 / 養魚 [경제·산업/산업]
물고기의 습성에 맞도록 인위적인 시설과 수단을 가하여 물고기를 기르는 일. 정부 차원에서 내수면 개발을 위해 양어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15년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 앞에 온수성 양식용 도립 양식어장을 시설하여 처음으로 잉어새끼를 생산하여 민가에 배부한
양역 / 良役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역역(力役)징발과 재정확보를 위해 양인 등에게 부과하던 신역의 통칭. 양역의 주된 형태가 군사활동과 관련된 군역이고 군역이 노비 등 천인을 제외한 양인에게만 부과되었기에 흔히 군역과 구별 없이 혼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속오군의 편성으로 군역 부담자
양역이정청 / 良役釐整廳 [정치·법제/법제·행정]
1703년 양역 쇄신을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임진왜란 이후 양인 장정들은 대부분 군포를 바치는 납포군으로 바뀌게 되었다. 숙종초부터 양역변통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마침내 1703년 9월에 이를 전담하는 기구로 양역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이후 1750년(영
양우규 / 梁禹圭 [종교·철학/유학]
1629년(인조 7)∼1714년(숙종 40).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양산욱, 조부는 양효용이다. 부친 양지남과 모친 성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향신의 딸이다. 김성로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후원에 커다란 살구나무 아래 누워 지내면서 ‘
양원 / 良媛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궁의 종3품 내관. 조선 초기 세종 때의 동궁내관제도에 의하면 양원은 세자의 후궁 중 양제 다음의 등급인 정3품이었으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세자의 후궁 중 두번째 서열로 종3품의 품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내명부 내관으로서 품
양위릉청명제홀기 / 兩位陵淸明祭笏記 [정치·법제]
능에서 지내는 청명제의 의식 순서를 적은 홀기. 끝에 작은 글씨로 "단 복장은 흑단령, 모, 대, 흑피화로 한다"고 적혀 있다. 일본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이왕직에서 작성하였다.
양윤식 / 楊潤植 [정치·법제/법제·행정]
1902년∼1977년. 법률가. 호는 일청(一靑), 본관은 청주(淸州), 서울 출신이다. 1924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변호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광주학생사건에 관련된 사람들과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
양응수 / 楊應秀 [종교·철학/유학]
1700년(숙종 26)∼1767년(영조 43).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양처기와 모친 최휴지의 딸이다. 권집의 문하에서 수학, 중년에는 이재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일찍이 벼슬길을 버리고 오로지 경학과 성리학에 전념하여〈사서강설〉을 남겼으며, 천문학에도 밝아〈혼
양응정 / 梁應鼎 [종교·철학/유학]
1519(중종 14)∼1581(선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담 증손, 할아버지는 이하, 아버지는 팽손, 어머니는 김화의 딸이다. 응태의 아우이다.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공조좌랑, 진주목사, 공조참판,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양이목사본풀이 / 梁─牧使本─ [문학/구비문학]
제주도 무속의 조상본풀이의 하나. 제주양씨(濟州梁氏) 명월파(明月派) 집안에 계승되는 수호신의 내력담이다. 이 집안에서 굿을 할 때, 이 수호신의 원한을 풀고 수호를 빌기 위하여 심방(무당)에 의하여 불려진다. 옛날 양이목사가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당시는 해마다 제주
양잠경험촬요 / 養蠶經驗撮要 [언어/언어/문자]
1415년(태종 15) 태종의 뜻에 따라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양잠에 관한 부분을 번역한 책. 불분권 1책. 우대언(右代言) 한상덕(韓尙德)이 이두로 번역하였고, 경상도관찰사인 안등(安騰)이 주선하여 경주에서 간행하였다. 현재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