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서상우 / 徐相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1∼1903). 종사관으로서 미국·영국과의 수호통상조약체결 때 참여하였다. 갑신정변 직후 전권대신으로 일본과 개화파 인사의 송환을 협상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러밀약설의 진상 규명을 위해 텐진을 방문했고,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철수를 요청하였다
서상천 / 徐相天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역도연맹회장, 대한씨름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본관은 달성,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휘문의숙(徽文義塾)을 거쳐 1923년 일본 체조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귀국하여 휘문고등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일본 체조
서성구 / 徐聖耉 [종교·철학/유학]
1663(현종 4)∼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학자·서예가. 아버지는 숙이다. 1691년(숙종 1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어려서부터 대자를 써서 이름이 났고 혼자서 학문에 힘써 크게 경지에 이르렀으며, 특히 초서에 능하여 일세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저서
서수붕 / 徐壽朋 [정치·법제/외교]
?-1901. 중국 청말 초대 주한공사. 1875년 도원의 직함으로 미일공관 2등 참찬이 되었다. 1898년 안휘휘령지태광도를 제수받고 이어 안휘안찰사로 자리를 옮겼다. 1898년 6월 24일(음력) 청국은 안휘안찰사 서수붕을 3품경당후보로 제수하여 '주찰조선국흠차대신
서승보 / 徐承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4∼1877). 1856년(철종 7)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우도암행어사·승지를 차례로 지냈다. 1864년(고종 1) 이조참의 이후 예조참판·예문관제학·홍문관제학·이조참판·한성부판윤·형조판서에 이르는 등 내외직을 역임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였다
서식 / 徐湜 [종교·철학/유학]
1561(명종 16)∼1644(인조22). 조선 중기의 지사. 아버지는 봉사 충립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고경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병으로 물러났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향 사림들의 추천으로 다시 의병장이 되어
서신보 / 徐臣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1∼1908). 1855년(철종 6) 정시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861년 성균관대사성에 이르렀다. 1865년(고종 2) 이조참의를 거쳐 승지를 지낸 이후, 이조참판·사헌부대사헌·중추원1등의관·장례원경·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서신일 / 徐神逸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신라 말 고려 초의 호족. 이천 서씨의 시조. 아들로는 광종때 내의령을 지낸 필이 있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감사해하면서 “사슴은 내 아들인데 공에게 힘입어 죽지 않았으니 공의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재상이 되게 하리다.”라고 말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
서영보 / 徐榮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59∼1816).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1790년에는 성절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8년 심상규와 함께《만기요람》을 편찬하였다.
서유구 / 徐有榘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64∼1845).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후에 이조판서·대제학 등을 역임했다. 흉년을 극복하기 위해 고구마를 실제보급하기도 하였고, 자신의 농학을 집대성하여 만년에 《임원경제지》를 저술하였다.
서유방 / 徐有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1∼1798). 영조 때 과거 급제하여, 정조 때 승지·대사성·대사간·대사헌 등의 요직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으며, 이후에도 규장각직제학·개성유수·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한성부판윤, 사역원 및 장악원의 제조, 형조·이조·병조·공조의 판서, 강원도관
서유본 / 徐有本 [문학/한문학]
1762년(영조 38)∼1822년(순조 22).조선 후기의 문인. 서호수(徐浩修)의 장남이다. 서철수(徐澈修)에게 양자 간 서유구(徐有榘)와 친형제간이며,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로 잘 알려진 빙허각이씨(憑虛閣李氏)의 남편이다. 동생인 서유구의 「백씨좌소산인묘지
서유영 / 徐有英 [문학/고전산문]
1801(순조 1)∼1874(?)(고종 11(?)).조선 후기의 문인. 달성위(達城尉)서경주(徐景霌)의 6대손으로서, 아버지 서격수(徐格修)와 어머니 안씨(安氏)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숙부 서옥수(徐沃修)의 양자로 들어갔다. 1868년(고종 5) 이후는 유
서응순 / 徐應淳 [종교·철학/유학]
1824년(순조 24)∼1880년(고종 17).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달성부원군 종제의 후손이다. 유신환의 문하에서 심기택·민태호·김윤식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870년(고종 7) 음보로 선공감감역·군자감봉사·영춘현감, 간성군수로 부임하여 임지에서 죽었다. 성긴
서인충 / 徐仁忠 [종교·철학/유학]
1554-1610. 조선후기 유학자. 부친은 희, 모친은 전덕원의 딸이다. 1554년 9월 13일에 태어나 1591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다대진첨사, 부산진첨사를 역임하였다. 1610년 6월 10일 졸하였다. 박세온의 딸과 혼
서일 / 徐一 [종교·철학/대종교]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종교가(1881-1921). 호는 백포(白圃). 1911년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1919년 서로군정서를 개편하여 총재에 취임하였다. 1920년에는 청산리전투를 이끌었다. 대종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저서로는 <삼일신고강의>, <회삼경> 등이
서재만 / 徐在萬 [역사/근대사]
1904년(광무 8) 9월 23일∼1984년 4월 19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이다. 1923년 완도군 청산면(靑山面) 모도리(茅島里) 대모도(大茅島)에서 마을의 개량서당(改良書堂)을 후원하기 위한 배달청년회(倍達靑
서재승 / 徐在承 [종교·철학/유학]
1876년(고종 13)∼1915년. 한말의 의병.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여 탁지부 주사의 직을 사임하고 의병활동에 투신하여 군량모집 등에 활약하였다. 그뒤 1909년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수년간에 걸쳐 항일전을 계속하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영주
서재필 / 徐載弼 [역사/근대사]
현대의 정치가·독립운동가(1864-1951). 호는 송재(松齋). 1882년 3월 별시 문과 병과에 합격하여 교서관의 부정자에 임명되었다. 1884년 12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의 젊은 나이로 병조참판 겸 정령관이 되었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서정권 / 徐廷權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복싱의 신이라 불리며, 미국원정경기에서 세계 6위에 오른 체육인. 1912∼1984. 전라남도 순천 출생.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복싱의 창시자 와타나베 밑에서 수련하면서 무역학교에 다녔다. 1930년 10월 제 5회 전일본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