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고대 총 1,19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고대
봉사혼 / 奉仕婚 [사회/가족]
혼인의 성립과정에서 신랑이 일정한 기간 동안 신부집에 가서 노력봉사를 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혼인. 봉사혼은 혼인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신랑이 신부집에 일정액의 신부값을 치러야 하는 관습을 가진 사회에서 만약 그러한 신부값을 치를 능력이 없을 때 그 대신에 노력
봉산성 / 烽山城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영주시 부근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10대 내해왕 당시 축조된 성곽. 『삼국사기』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나와 있다. 봉산성을 영주지방의 지명으로 추측하는 것은 『대동여지도』에 영주 동쪽 10리 지점에 봉산이라
봉성 / 峰城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파주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술이홀현(述尒忽縣, 또는 述彌忽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봉성현으로 고쳐 교하군(交河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당시에 교하군은 한주(漢州)에 속해 있었다. 1018년(현종 9) 양주(楊州)에 예속시켰고, 1172년(
봉황문 / 鳳凰文 [예술·체육/공예]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적인 봉황새를 나타낸 장식 무늬. 봉황은 중국에서 닭의 머리에 제비의 턱, 뱀의 목,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등 여러 짐승의 형상을 조합시켜 만들어 낸 새로, 6척의 키에다 몸과 날개는 오색(五色)의 빛이 찬란하고 오음(五音)의 소리를 내면서
부리 / 富利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금산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 또는 富尸伊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순달(淳達)로 고쳐 노산주(魯山州)의 속현으로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이성현(伊城縣)으로 고쳐 진례군(進禮郡)에 예속시켰다가 고려 때인 940년(태조 23
부산북정패총 / 釜山北亭貝塚 [역사/고대사]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북정마을에 있는 신석기·삼국시대 패총 유적. 북정마을은 낙동강 하류 끝 부분에 형성된 삼각주 평야의 서쪽에 있으며 해발 38.8m의 단독 구릉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구릉 전반, 특히 표고 15∼20m에 걸쳐 조가비가 널려 있으며 주로
부성 / 富城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옛 지명. 원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부성군으로 고치고 소태(蘇泰)ㆍ지육(地育) 등을 영현(領縣)으로 두었다. 893년(진성여왕 7) 최치원(崔致遠)이 태수가 되었다. 1144년(인종 22) 현령을 두었고, 1182년(명종 1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 扶餘陵山里寺址石造舍利龕 [예술·체육/공예]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사리감. 국보 제288호. 높이 74㎝, 너비 50㎝. 능산리 절터는 부여 능산리고분군과 나성(羅城) 사이에 있는 절터로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는 백제시대 유적이다. 1995년 발굴조사 당시 이미
부여성 / 扶餘城 [지리/인문지리]
중국 요령성 용안(龍安)에 있었던 초기국가시대 부여의 성곽. 본래 부여의 옛 성이었는데 고구려에서 그대로 부여성이라 하였다. 보장왕 때 당태종의 침입을 안시성(安市城)에서 막기는 하였으나 백암성(白巖城)ㆍ비사성(卑沙城)ㆍ신성(新城) 등 10여 개의 성을 당에게 빼앗겨
부여쌍북리북요지 / 扶餘雙北里北窯址 [예술·체육/공예]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연화문 와당·인각명와조각 등이 출토된 가마터. 충청남도 기념물 제41호. 면적 331㎡. 전에는 이 부근에서 백제시대의 석제 불두(佛頭)가 발견된 바 있어 절터로 알려져오던 곳인데, 이곳에서 건축공사를 진행하던 중 백제시대